먹는 게 아니라 애완용이라고요!
어머니께선 근심스럽게 말씀하셨다.
“야생으로 살았는데, 로또가 아파트에 잘 적응하것나?”
여기서 로또는 대박 로또가 아니고 12살 된 수컷 반려견 이름이다. 떨어져 사시는 어머니께서 무릎 인공 관절수술을 하게 되었는데, 3-4개월 이모네서 요양하기로 해, 아들인 제가 로또를 돌보기로 한 것이다.
로또 이 녀석은 본래 용인 우리 동네 유기견이었다. 3개월 정도 된 검은색 바탕에 가슴과 귀에 황금색 털이 난 녀석을 키우기로 한 거다. 산자락에 터가 넓은 시골로 데려갔다. 적적하신 어머니께 위안이 되고, 넓은 산야를 뛰어다니는 게 개에겐 더 행복할 것 같아서였다. 그런데 큰 개만 키우시던 어머니는 로또를 보더니 시큰둥하셨다.
“숏다리에 쪼맨한 게, 한 그릇도 안 되겠네.”
“아이 참. 엄마, 먹는 게 아니라 애완용이라니까요.”
“새끼도 못 낳은 수놈이네.”
걱정과 달리 로또는 어머니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다. 한 달 뒤 어머니의 전화가 왔다.
“야야, 고놈 무지 똑똑하데이. 산책 가자고 지가 개 줄을 물고 나한 테 온 데이. 집을 얼매나 잘 지킨다고. 한번 본 사람은 짖지도 않애. 말귀를 얼매나 잘 알아듣는지 몰라. 저번에는 멧돼지랑 싸워서 이겼데이.”
그리고는 개 이름을 검둥이에서 ‘로또’로 개명했다. 로또 당첨된 것처럼 복덩어리란 뜻이다. 로또는 그렇게 산천을 맘대로 뛰어다니며 짝을 만나 자손도 번성시켰고, 어머니께 기쁨을 주며 멀리 떨어진 저 대신 아들 노릇을 톡톡히 했다. 그런데 이제 로또가 13년 만에 다시 고향으로 돌아오게 된 것이다. 어머니께선 신신당부했다.
“로또는 매 놓으면 절대로 똥오줌을 안 싼데이. 그라고 이놈 바람둥이데이. 발정 난 암컷 쫓아다닌다고 며칠씩 안 들어와서 잡으러 다녔데이. 마실에 가믄 이놈이랑 똑같이 생긴 강아지들이 수두룩해.”
어머니는 수술 후에 퇴원을 하셔서 이모네 가시고, 저는 로또를 데려왔다. 야생에서 살아온 로또의 파란만장한 아파트 적응기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소변 시트를 깔고 베란다에 가뒀는데, 산책 가려고 현관문을 열자마자 복도에 실례를 하고 말았다. 집안에서는 절대 대소변을 보지 않기에 꾹 참고 참다가 그만 실례를 한 것이다. 대소변을 참다가 혹시 병이나 걸릴까 싶어 하루 두 번 산책을 시켜야 했다. 맞벌이하는 우리 부부에겐 여간 성가신 게 아니었다. 그래도 하루 종일 혼자 갇혀 있다가 20-30분 산책 나간다고 좋아서 펄떡펄떡 뛰는 모습을 보면 너무 가여워서 마누라는 아침, 나는 저녁으로 나눠 산책을 시켰다, 마침 단지 앞에 나무가 우거진 작은 동산이 있었다. 밖에 나온 로또는 내가 숨이 찰 정도로 눈밭을 말처럼 뛰고, 습관처럼 다리를 들고 나무마다 소변으로 영역 표시를 했다. 땅도 파고 낙엽 위에 데굴데굴 구르며 쌓인 스트레스를 풀었다. 로또는 어머니 말대로 정말 똑똑했다. 한번 간 길은 절대 잊지 않았고, 몇 번 주의를 주자 사람을 봐도 짖지 않았다. 무서워하던 엘리베이터도 자기 집처럼 드나들며 빠르게 적응했다. 언제부턴가 로또와 대화하며 산책하는 재미가 쏠쏠해졌다.
한 가지 애로사항이 있다면, 산책을 마치고 단지로 들어갈라치면 요놈이 버티며 풀썩 주저앉는 것이다. 밖에 더 있겠다고 아이처럼 떼를 쓰다니. 그날도 단지 입구에 도착했는데, 별안간 ‘깽’하는 비명과 함께 뒷다리를 들고 아파했다. 날카로운 무언가에 찔리거나 벤 것이 틀림없다 싶어 살펴보려고 만지려 하니 오지도 못하게 뿌리쳤다. 바짝 긴장하고 가축병원에 가려는 데, 퇴근한 주민들이 우르르 몰려오자 멀쩡하게 걷는 게 아닌가. 살펴보니 피도 나지 않았다. 난 갸우뚱했다. 설마... 꾀병? 난 흥분해서 마누라에게 떠벌였다.
“와, 꾀병 연기를 하더라니까. 내가 깜빡 속았다고. 인간을 속이다니, 이 정도 지능이면 영장류 아냐? 완전 개 똑똑, 아인슈타인이라니까. 얘 학습지 시켜야 하는 거 아냐?”
내 말을 듣고 있던 마누라는 저를 보며 눈을 끔뻑이다가 이렇게 혀를 찼다.
“내가 딸 바보, 아들바보는 많이 들어봤는데, 우리 집에 개 바보가 사는 줄은 미처 몰랐네. 쯧쯔.”
개 바보면 어떤가. 내 눈에 콩깍지지. 그렇게 ‘개부심’으로 하루하루 뿌듯할 무렵, 일이 터지고 말았다. 온라인 주민 카페 게시판에 민원이 올라온 거다.
“104동에 자꾸 개 짖는 소리가 나요. 공동생활하는 데 매너 좀 지켜주세요.”
식겁했다. 난 로또를 앉혀놓고 훈계를 했다.
“너 사람이 없으면 짖는구나. 여긴 시골 하곤 달라. 절대 짖으면 안 된다고. 쫓겨나.”
로또는 꼬리를 축 내렸다. 그런데 며칠 뒤에 또다시 민원이 올라왔다.
“여전히 개 짖는 소리가 나네요. 주민회의 안건에 올리겠습니다. 적발되면 모종의 조치를 취하겠습니다.”
나는 로또에게 호통을 쳤다.
“이놈아, 짖지 말라니까. 너 쫓겨나면 어디로 갈래? 다시 길거리에서 살래?”
로또는 귀를 축 늘어뜨린 채 말없이 제집으로 들어갔다.
휴일 오전이었다. 어디서 개 짖는 소리가 들렸다. 난 후다닥 로또에게 달려갔다.
“너 정말 그럴... 가만!”
로또는 입도 벙끗 안 하고 가만히 앉아 있었는데 또 개소리가 들리는 게 아닌가. 위층 강아지였다. 범인은 로또가 아니었던 것이다.
“미안타. 잠시나마 널 의심해서.”
로또는 앞발을 제 무릎 위에 턱 걸쳐놓았다. 용서한다는 표시가 틀림없었다.
그날은 전날 온 비로 땅이 질척했다. 맨땅인 앞동산을 피해 아스팔트가 잘 포장된 공원으로 갔다. 산책 도중 로또 친구를 만났다. 스카프를 매고 말끔한 차림에 머리가 희끗한 멋쟁이 아주머니가 눈처럼 하얀색 포메라니안 강아지를 안고 벤치에 있었다. 털이 말끔하게 정리되어 얼굴이 조막만 하고, 알록달록한 신발에 레이스가 달린 빨간색 치마를 입고 있어서 한눈에도 암컷이란 걸 알 수 있었다. 로또는 꼬리를 치며 거침없이 다가갔다. 아주머니는 도도한 말투로 물었다.
“애 이름이 뭐예요?”
“로또요.”
“로또? 호호, 독특하네. 우리 애는 코코인데. 코코 샤넬. 품종은 뭐예요?”
“품종요?”
나는 우물쭈물하다가 답했다.
“잡종... 아니 엄마는 검은색이고, 아빠는 황금색이오.”
“호호호, 말씀이 참 재미있으시네. 옷도 안 입고 춥겠다. 미용실도 안 가고...”
로또를 얕잡아보는 말투에 슬며시 화가 났지만 꾹 참았다. 대화를 하다 보니 아주머니가 우리 집 위층에 산다는 걸 알게 됐다. 매너 없이 짓던 바로 그 개가 코코였던 것이다. 그런데 로또가 습관대로 다리를 들어 벤치 다리에 영역을 표시하는 게 아닌가.
“어머 저게 뭐야! 대소변은 집에서 해결해야지 밖에서 무슨 짓이야. 교육을 어떻게 시켰기에 저래요?”
대놓고 로또를 험담하다니. 어이가 없었다. 야생견이 다 그렇지 뭐. 하지만 난 아무 대구도 안 했다. 이웃지간에 공연히 얼굴 붉힐까 봐. 무거웠는지 아주머니는 코코를 땅에 내려놓았다. 코코가 땅에 앉자 아주머니가 질색을 하며 야단을 쳤다.
“얘, 어딜 땅바닥에 털썩 주저앉니! 엄마가 그렇게 가르쳤어? 근본 없는 개처럼 굴지 말거라.”
왕실 공주 교육이 이렇게 엄격할까. 혀를 내둘렀다. 반면 로또는 할배 나이였지만 피가 끓는 야수 같은 남자, 남자였다. 로또는 코코에게 다가가 냄새를 맡았고, 코코는 약간 겁먹은 표정이었다. 이때 나와 아주머니는 동시에 비명을 지르고 말았다. 로또가 코코에게 껄떡대는 게 아닌가. 난 기겁을 하고 목줄을 당겼고 아주머니는 놀라서 코코를 번쩍 안고는 맹비난을 퍼부었다.
“숙녀에게 무슨 짓이에요! 넘볼 걸 넘봐야지. 불결해.”
“죄, 죄송합니다.”
아주머니는 코코를 안고 가면서 들릴락 말락 중얼거렸다.
“아주 근본이 없어. 개는 주인을 담는다더니.”
아니, 혈기왕성한 수캐 본능이 그런 거지, 어디 내가 그런 겁니까? 졸지에 치한이 된 나는 폭발하고 말았다. 그녀의 뒤통수에 쏘아붙였죠.
“104동에서 매일 짖는 게 바로 코코죠. 주민 게시판에 올릴 겁니다. 아파트 살면서 기본적인 매너는 지켜야지, 원. 개는 주인을 닮는다더만.,.”
아주머니는 달아나듯 총총걸음으로 사라졌다. 난 로또에게 타일렀다.
“야, 아무 암컷에게 찝쩍거렸다간 너 전자발찌 찬다. 시골 하곤 다르다고.”
로또는 겸연쩍은 듯 입맛을 쩍쩍 다셨다.
로또의 아파트 적응기는 순탄하진 않지만, 그래도 슬기롭게 헤쳐 나가고 있다. 그리고 로또가 어미가 블랙 포메라니안과 골드 포메라니안의 혈통인 것을 알아냈다.
걱정이다. 어머니께서 요양에서 귀가하면 로또를 달랠 텐데. 미운 정 고운 정 다 들어서, 벌써 이별이 걱정된다. 그래도 답답한 아파트보다야 뻥 뚫린 산천이 로또에겐 더 행복하지 않겠나.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꾀병이 아니라 탈골 증상이 있었다. 로또는 4월 1일 어머니 곁으로 돌아갔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