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내가 쓴 안경이다
난 용인 모 기업 재건축 현장에서 일하고 있다.
근무하다보니 동네에 이런저런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동네에는 평택 소재 모 제지업체 창업주의 가옥이 있다. 얼마 전 돌아가신 창업주는 여러 일화를 남겼다.
하루는 회사에서 급히 출장을 가려고 운전기사를 찾으니 회사에 없었다. 용인 창업주의 집에 와 있다는 것이었다. 이유를 물으니 나이가 드신 사모님께서 일이 있어 모셔다 주고 가는 길이라고 했다.
사장은 만사를 때려치우고 집으로 달려가 마누라에게 불같이 호통을 쳤다.
“당신이 차가 필요하면 운전기사를 고용하면 되지, 왜 함부로 회사차를 쓰는 거야?”
사모님이 변명을 하자 사장은 강수를 뒀다.
“공사를 구분 못하는 마누라랑 못 살아! 그러려면 이혼 해!”
사모님이 싹싹 빌고 다시는 회사에 종이 한 장 얻어가는 일이 발생하지 않았단다.
기업 내에는 임원이 머무는 작은 별채가 있다.
휴일이나 연휴 기간에 임원이 들러서 종종 숙박을 하고 간다.
연수원은 24시간 경비가 근무하고 있었다.
연휴 첫날 야간에 차량 한 대가 닫힌 쪽문에 조용히 접근했다.
경비가 나가보니 임원이었다.
사전에 전혀 연락도 없이 혼자 온 것이다.
양손에는 편의점에서 파는 도시락과 음료수가 들려있었다.
모두가 퇴근한 뒤라 시중들 사람이 없던 터라 경비원은 적잖이 당황하자 임원이 말했다.
“난 오늘 여기서 자고 갈 테니, 신경 쓰지 말고 근무하세요.”
다음날 아침, 임원이 나가고 청소 직원이 별채를 청소했다.
그런데 욕실은 물기가 조금 남아 있을 뿐 말끔했고, 싱크대도 청소를 하여 깨끗했고 행주를 빨아서 펴서 걸어놓은 것을 발견했다.
침실도 마찬가지였다. 청소 직원은 청소할 것이 없어 깜짝 놀랐다고 했다.
내게 이 일화를 전해준 분은, 임원 정도면 상위 0.1%인데, 보통 사람처럼 평범하게 사는데 놀랐다고 했다.
놀라기는 나도 마찬가지였다. 그 정도 돈과 지위이면 의식주의 뒤처리하는 사람이 따로 있다고 생각한 내 선입견이 깨졌기 때문이다.
부자에 대한 증오? 박탈감과 자괴심? 컴플렉스?.... 어디서 그런 편견이 생겼을까?
갑질 하는 드라마, 영화, 언론, 소설, 신문?
만약 내가 그런 지위였으면 어땠을까? 과연 손수 의식주를 해결하는 즐거움을 누렸을까? 분업(分業)을 내세워 남을 부리는 권세를 누릴 확률이 더 높을지 모른다.
그러고 보면 편견은 남의 탓이 아니다. 세상은 내가 쓴 안경이다. 이미 내 마음속에 내재된 수용체가 그러한 편견을 선호해 받아들였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