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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탁발승 이야기

삼시 세끼 한 끼라도 게을리하지 않겠다

by 김영수



벌써 25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나는 경기도의 한 도축장에서 소, 돼지 도체의 육질을 판정하는 등급판정사 일을 하려고 버스를 타고 서울에서 출퇴근하고 있었다. 어느 날 한적한 곤지암 터미널에서 또드락 또드락 청량한 목탁소리가 들렸다. 살펴보니 정갈한 법복 차림에 반들반들하게 삭발한, 요즘 같으면 아이돌 타입의 훤칠한 외모에 내 또래의 젊은 스님이 종이박스 불전함을 앞에 놓고 목탁을 치며 절을 하고 있었다. 대낮엔 버스가 거의 빈차로 다닐 정도로 한가한 시골 버스 종점에서 땀을 흘리며 정성껏 절을 올리다니, 지나가는 사람도 없는데 불전함이 찰리가 없었고 당일 식량도 충당할 수 없는, 이른바 인건비(?)도 안 나오는 미련한 탁발이 아닐 수 없었다. 주변 상가 주인들도 드러내고 말은 안 했지만 속으론 끌끌 혀를 찼으리라.

그 스님을 다시 만난 건 몇 년 뒤 용인 장터에서였다. 나는 용인으로 이사해서 인근에 도축장으로 출퇴근하고 있었다. 사람이 가장 많이 모이는 장터 신호등 앞에 자리를 깔고 불전함에 절을 올리고 있었다. 이제야 탁발을 하는 요령을 깨달았나 싶었다. 수십 배를 하다가 허리가 아플 쯤이며 무릎을 꿇고 또드락 또드락 목탁만을 쳤다. 그리곤 다시 절을 올렸다.

서울에서도 불전함에 절을 하는 탁발 스님을 자주 봤지만, 이 분은 뭔가 달랐다. 신호등이 빨간 불이든 파란 불이든, 사람이 있든 없든 사력을 다해 절을 하고 목탁을 쳤다. 행인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하려는 목탁이나 절과는 달리 자기가 부끄럽지 않게 오직 스스로 정성을 다하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얼굴은 거뭇하게 그을리고 광대뼈가 나올 정도로 많이 야위어 있었다. 저 노력이면 공사판 막일을 해도 먹고살겠다 싶었다. 나는 적은 돈을 불전함에 넣고 돌아섰다. 뒤에서 ‘나무 관세음보살’하는 답사가 들렸다.

그 후로 장날에 여러 차례 같은 자리에서 만났다. 그리고 한 동안 또 모습이 보이질 않았다. 그 탁발승을 다시 만난 건 몇 년 뒤 성남의 모란장이었다.

모란역 지하철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서 돌아보니, 글쎄 스님이 상가 주인과 언성을 높이고 있는 게 아닌가. 상가 주인은 장사가 안 되니 저리 가라 하고 쫒고, 스님은 여기 자리에 임자가 있냐며 맞고함을 쳤다.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몰골이 수척해 있었다. 남들은 자비로워야 할 스님이 싸움이나 한다고 핀잔을 했을지 모르지만 순간 나게 겹치며 떠오르는 사람들이 있었다. 어린 시절 서울 변두리 무허가촌에서 살 적에 보금자리가 철거당하려 하자 독기 어린 언행으로 필사적으로 저항하는 거주민들의 모습이었다. 내 눈엔 자리를 빼앗기지 않으려는 스님의 저항이 그만큼 절실해 보였다. 남에게 전도를 하려는 목적이 아니라 스스로 진실하게 살려는 몸부림이었다. 조용한 산사에서 명상이나 즐기시지 왜 저렇게 삼시 세 끼가 위태로운 탁발승을 택하셨을까? 내 가슴이 무거웠다. 그렇게 또 한동안 잊고 지냈다.

나는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모 불교신문사에서 일하게 되었다. 총무원장님이 계시는 본당인지라 쟁쟁한 스님들 오갔다. 이상하게도 예전에 만났던 그 탁발 스님과 자꾸 대비되는 것을 왜일까? 그때 솔직히 느낀 점은 이랬다. 속가와 유사하게도, 설하는 법문이 스님 당신이 처한 상황을 그대로 반영한다는 점이었다. 지식이 많은 스님은 경전 해설 법문이, 유복한 스님에겐 속 편한 법문이, 고뇌가 많은 스님에겐 무거운 법문이 나왔다.

인연은 질겼다. 몇 년 전 인터넷 신문사로 옮겨 일할 때다. 어딘가로 가는 버스 안에서 또다시 스님을 만난 것이다. 짧은 머리는 하얗게 세어 있었고 삼복의 농부만큼이나 거무튀튀하고 주름진 얼굴에 허리가 살짝 굽은 중늙은이가 되어있었다. 낡은 장삼에 등짐을 맨 그 특유의 눈매가 아니었다면 그냥 지나쳤을지도 모른다. 때 묻은 불전함과 둥글게 말은 돗자리를 붙잡고 꾸벅꾸벅 졸고 계시는 걸 보니 어디론가 탁발을 나서는 중이셨는가 보다. 갑자기 눈물이 핑 돌았다. 반가움이었을까, 연민이었을까?

지금도 종교 이야기가 거론될 때마다 이 탁발 스님이 언뜻언뜻 그러나 선명하게 마음속에 나타난다. 그렇게 고된 탁발을 택하신 건 삼시 세끼에 목숨을 걸어 한 끼라도 게을리하지 않겠다는 스스로의 다짐이 아니었을까. 이 스님이야 말로 대중 앞에서 한마디도 설법을 하지 않았어도 온몸으로 보여준 하늘 아래 스스로 청정함이야말로 이미 나에겐 충분한 설법이었다.

아마 지금도 두 다리가 성하시다면 탁발을 다니고 계시겠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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