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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점의 오류

뒷북 결과론의 함정

by 김영수

조선 조정의 시기와 질투 속에서도 고군분투하여 왜적을 물리쳤지만 결국 유배를 당하고 백의종군해야 했던 이순신 장군. 정유재란이 터지자 원균이 퇴패하고 다급해진 조정에서는 이순신에게 복귀 명령을 내린다.

만약 이때 이순신 장군이 이렇게 반응했으면 조선은 어떻게 되었을까?


“더 이상 욕심을 버리자. 권력욕, 명예욕에 불과할 뿐이야. 욕망을, 집착을 버리자!”


에디슨은 전구를 발명하기 전, 무려 1,700번의 실험에서 실패를 했으며, 3,500개의 가설을 작성했다. KFC 치킨의 사나이 콜로넬 샌더스는 당시 생소한 메뉴를 들고 거지 취급을 받으며 1009군데의 식당과 식품 대리점을 찾아다니는 불굴의 욕망으로 성공했다. 위인, 성공한 사람들은 유행하는 말로 불굴의 집착, 욕망의 끝판왕이다.


‘좋은 글’이란 명목으로 SNS에 다음과 같은 글이 올라왔다.


『욕심 때문에 사람 죽입니다. 명예 때문에 사람 죽입니다. 권력과 욕망 때문에 사람 죽입니다. 욕심, 명예, 권력, 욕망 그게 다 죽음을 재촉하는 길입니다. 뉴스를 보면 그 답이 보입니다. 욕심 때문에, 명예 때문에, 권력 때문에, 욕망 때문에 벌어지는 사건, 매일 뉴스에서 그 해답을 말하고 있습니다...』


글은 보기 좋을지 모르지만 내 생각엔 비현실적이다.

지금 하는 일이 과연 욕심인지, 집념인지 알 수 있을까? 명예욕인지 자긍심인지, 권력욕인지 책임감인지 지금 당장 알 수 있을까?


시간이 지나서 결과가 나와야 명확히 알 수 있다. 성공하면 집념이요, 실패하면 집착이다. 즉, 위의 ‘좋은 글’은 뒷북 결과론이란 것이다. 답안지 보고 오, 엑스 판단하는 것만큼 쉬운 일이 있을까?


현안은 늘 문제지만 있을 뿐이다. 그런데 ‘좋은 글’이라고 되어있다. 이런 시점(時點)의 오류는 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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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 ‘허드슨강의 기적’에도 그러한 장면이 나온다. 이륙하자마자 새떼와 충돌하여 양쪽 엔진이 정지해서 허드슨강에 불시착하여 기적적으로 155명의 탑승객 전원이 구출되지만, 백전노장의 기장은 감사팀의 조사를 받는다. 컴퓨터 시뮬레이션 결과 근처 공항 활주로에 충분히 불시착할 시간이 있었는데 판단 실수로 강에 추락했다는 것. 기계가 아닌 사람이 조종간을 잡은 시뮬레이션에서도 같은 결과가 나오자 기장은 궁지에 몰린다. 이때 기장이 묻는다. 실험 조종사들이 몇 번 연습을 했는가? 불시착을 알고 착륙 연습을 했는가? 그렇다는 대답이 나왔다. 기장은 그렇게 낮은 고도에서 새떼 충돌로 두 개의 엔진이 동시에 멈추는 사례는 대응 매뉴얼에 없었기에 이에 대처하는 시간 몇십 초가 소요됐으며 실험에서는 이 시간이 생략되었다고 일갈했다. 즉 컴퓨터 건 실험 조종 사건 이미 결과를 알고 준비하고 들어가 갈등하고 판단하는 시간 없이 조종한 것이다. 판단 시간을 더 넣고 실험하자 비행기는 활주로에 착륙하지 못하고 지상에 충돌하고 만다. 철저한 과학이라도 지금 현안에 대해 인간이 판단하고 대처하는 시간을 계산하지는 못했다. 현실은 바로 지금 현안의 연속이다.


사실 나는 수십 년 동안, 근래까지 시점 오류의 글들을 구분하지 못했다. 진리, 정의, 선의를 언어 속에서 찾았다. 눈앞에 닥친 현안에 틀로 대입해서 판단하려 했다. 그런데 이상하리만치 빈번하게 어긋났다.

뭐가 잘못되었을까?

문득 글, 정보는 과거의 그림자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절감하게 되었다. 지나간 과거를 현재의 틀로 가두려 하다니. 현실은 현실에게 물어야지 과거에게 물어보다니!

지금 읽어보면 삶에 대한 많은 지침들이 과거를 해석한 결과론이다. 현시점으로 다시 읽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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