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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했다, 로또야

너와 같이 걷던 그 길, 참 행복했다

by 김영수

새벽같이 너에게 줄 사료를 가지고 어머니 집에 갔었다. 반갑게 뛰어나올 줄 알았던 네가 안보이더구나. 설마 했지만 그래도 목청껏 네 이름을 불렀다.

로또야!

망연자실 눈물이 고인 어머니께서 비보를 전하더구나.


“갔다. 어제 가버렸다고...”


아, 하루만 더 일찍 올걸... 일주일 전부터 곡기를 끊고 자꾸 어디론가 가서 풀숲에 쓰러진다고 해서 혹시나 하고 달려왔는데... 내가 도착하면 벌써 알고 대문으로 달려와 다리에 매달려 온몸으로 반기던 네가, 이제 뒷산에 소박한 돌무덤이 되었다니...

로또야! 로또야!

불러도 이젠 대답이 없구나...

13년 전인가. 동네 아이들이 유기견인 너를 안고 있을 때, 네가 나를 보고 빙긋 웃었지.

개가 웃네!

웃으며 만난 그날이 너와 나의 첫 만남이었지.

콘크리트 빌라보다야 마음껏 뛰놀 수 있는 산천이 더 났겠다 싶어, 시골에 계신 어머니께 데려갔지. 남들에겐 말할 수 없는 가정사로 홀로 시골에 계셨던 어머니에게 너는 장남이었다. 전화드릴 때마다 개가 참 똑똑하다며 네 칭찬을 하셨다. 옛날 사람처럼 개를 축산으로 키우던 어머니는 네 이름만큼은 ‘로또’라고 지어주셨다. 길렀던 다른 많은 개들은 검둥이, 누렁이, 점박이... 겨우 이름을 달았지만 너만은 ‘로또’라고 하셨어. 굴러들어 온 큰 복덩이라고 하시면서 말이야.

로또야, 1등 복권에 당첨된들 어찌 너 보다 많은 행복을 안겨주었겠니.

아버지께서 돌아가시고 어머니께서 다시 서울 변두리 집으로 들어오면서 너도 같이했지. 용맹하게 외딴집을 지키고 적적하신 어머니의 친구가 되었지. 로또야, 나 대신 아들 노릇을 해줘서 정말 고맙다.

7년 전, 어머니께서 왼쪽 무릎 수술을 하시고 3개월이나 집을 비울 때, 너는 홀로 꿋꿋하게 집을 지켜냈다. 내가 가끔 가서 사료에 참치 통조림을 비벼주면 다 먹지 않고 꼭 절반을 남겼지. 배가 덜 고픈가 싶었지만, 알고 보니 같이 있는 다른 개가 먹도록 남긴 네 배려였다는 걸 알았다. 나는 감탄, 아니 너를 존경했다. 먹이를 두고는 개들이 아귀다툼하는 게 보통인데 어린 개와 사료를 나누다니! 너는 수컷임에도 불구하고 네 새끼들을 참 잘 돌보았지. 사랑으로 놀아주는 네 모습이 선하다.

작년 12월 어머니께서 다시 오른쪽 다리를 수술하게 되었는데, 엄동설한이라 너를 기꺼이 내 아파트에 데려왔다. 하지만 걱정이 앞섰다. 산야를 마음껏 뛰놀던 네가 과연 아파트에 적응할 수 있을까? 하지만 역시 너는 영물(靈物)이었지. 절대 짖으면 안 된다고 타일렀더니 그토록 용맹하던 네가 4개월 동안이나 거짓말처럼 한 번도 짖질 않았으니까. 냄새난다고 베란다에만 있으라고 했더니 방에는 발도 들여놓지 않았다. 대, 소변도 집에서 보지 않고 꼭 밖에서 산책할 때만 해결했다. 산책을 나가면 너는 참 좋아했지. 하루 종일 혼자 갇혔다가 관절이 성치 않으면서도 눈밭을 질주하며 좋아하고,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공원이며 앞산 산책로를 활보했잖니. 너와 같이 걷던 그 길, 참 행복했다. 하지만 내외가 직장을 다니기에 아침, 저녁으로 하루 두 번 산책이 너무 힘들어서 짧은 코스만 돌고 들어가려 하면, 네가 안 들어간다고 목줄을 당기곤 했지. 지금 생각하면 너무도 후회스럽구나. 같이 오래오래 걸었어야 하는데....

아파트에서 훌륭하게 적응한 4개월 동안 정이 너무 들었다. 어머니께서 재활을 마치고 너를 다시 불광동으로 보내는 날, 우리 내외는 가슴이 너무 허전했다. 텅 빈 베란다에 네가 있는 것 같고, 밥 먹으면 빠끔히 바라보던 너, 너와 함께 했던 산책로, 엘리베이터에 온통 네 환영이 보였다. 다시 제 집으로 돌려보내는 것뿐인데도 말이야.

4월 1일 너를 어머니 집에 돌려주고 나는 청계천 애완동물 거리로 달려갔다. 그리곤 슈가 글라이더 한 마리를 분양받았지. 뭐라도 키우지 않으면 그 헛헛한 가슴을 채울 수 없었기 때문이란다. 단 4개월을 같이했는데도 이러한데, 13년을 너와 함께하고 손수 묻으신 당신의 지금 심정은 오죽하겠니... 어젯밤을 뜬 눈으로 지새우신 어머니의 푸석한 얼굴이 걱정된다.

5월 달에 마지막으로 너를 보았더니, 네 코가 윤기가 없이 논바닥처럼 갈라지고 얼굴이 부어있어서 걱정을 했었다. 아파트에서 나와 함께 있었으면 좀 더 오래 살 수 있었을까? 네가 좋아하는 건조 간식을 더 먹였다면... 너와 함께한 시간은 정말 행복했고 행운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4개월은 아마도 마지막 가는 길에 하늘에서 배려해 주신 이별여행이었나 보다.

네 돌무덤에 추모하고 아파트로 돌아와, 조금 전에 너와 함께했던 산책로를 걸었다. 그동안 네가 생각날까 봐 애써 외면했던 길이지만, 오늘은 걷고 싶더구나. 한발 한발 너와의 추억을 기억하며 눈물로 걸었다... 마지막 가는 길에도 로또는 네게 사랑과 이별은 시작과 끝의 한 몸이란 걸 새삼 일깨워주는구나. 로또야, 네 사진이며, 동영상을 정리하면서 너무 보고 싶구나. 꿈에라도 한번 꼭 들러주렴.

로또야! 네가 웃으며 나와 만났듯, 우리 다음에도 웃으며 다시 만나자.

로또야! 고맙다... 행복했다...

2018. 6. 17. 김영수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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