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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영수 Dec 05. 2021

마지막 문자

엄마의 마지막 선물

  2003년 2월 18일 대구. 

  수학여행을 앞둔 고등학생 그녀는 입이 삐죽 나와 있었습니다. 다른 친구들은 수학여행에 가져할 새 가방이며 신발을 산다며 용돈을 받아와서 자랑하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평소 참고서조차 제대로 사지 못하는 용돈을 주는 엄마가 미웠습니다.      

  방과 후, 수학여행 용품을 사는 친구들을 따라나섰습니다. 친구들이 재잘거리며 물건을 고르는 동안 그녀는 이것저것 눈요기만 해야 했지요. 

  이때 휴대전화 벨이 울렸습니다. 엄마였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화가 치밀어 전화를 받지 않았습니다. 30분 후 다시 전화벨이 울렸지만 역시 무시했습니다. 그녀는 성가신 듯 아예 배터리를 빼버렸습니다. 그렇게 신나게 친구들과 돌아다니다가, 한번 쓸 건데 굳이 살 필요 없이 옆집 언니들 꺼 빌려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엄마에게 화풀이한 게 슬며시 후회되었습니다.       

  그녀가 돌아온 집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일 나간 엄마가 아직 돌아오지 않은 모양이었습니다. TV를 켰는데 자주 타고 다니는 대구지하철에서 큰 화재가 발생하여 수백 명이 넘는 사상자가 속출하는 지옥 같은 장면이 멈추질 않았습니다. 그녀는 왠지 불길한 예감이 들어 휴대전화를 켰습니다. 엄마에게 전화했지만 받지 않았습니다. 


  엄마가 보낸 문자 두 통이 있었습니다. 첫 번째 문자를 열었습니다. 


  “용돈 넉넉히 못 줘서 미안해. 쇼핑센터 들렀다가 집으로 가는 중이야. 신발하고 가방 샀어.” 


  그녀는 눈물을 흘리며 두려워 떨리는 손으로 두 번째 문자를 열었습니다. 


  “미안하다. 가방이랑 신발 못 전하겠어. 돈가스도 해주려고 했는데... 미안... 내 딸아... 사랑한다.” 


  그녀는 그렇게 엄마의 마지막 문자를 받고 말았습니다.     


-2003년 2월 18일 대구지하철 참사 추모식 사연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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