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행복독립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여름 Jan 26. 2022

1%가 주는 힘


2018 러시아 월드컵이 열리고 있는 여름. 


축구하는 것뿐만 아니라 보는 것에도 흥미를 붙이게 된 이안이에게 이번 월드컵은 여러 가지로 의미가 크다.

대한민국과 독일의 마지막 조별예선이 있던 밤, 늦은 밤부터 시작하는 경기였지만 전반전만 보게 해 달라는 이안이의 간청에 그러라고 했다. 대한민국과 독일과의 경기는 축구 문외한인 나도 질게 뻔한 시합으로 예상되었던 경기다. 모두들 1%의 가능성이라고 예상했지만 이는 차마 0%라고 할 수는 없으니 지어낸 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었다. 독일은 국제 랭킹 1위인 팀인 데다가 앞선 예선 2경기에서 우리나라는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는 경기력을 보여주었었다.


이안이에게 물었다. 너는 1%의 가능성만 있는 일에 도전할 수 있겠냐고. 아이의 대답은 정말 아이다웠다.


"당연하죠"


어쨌든 보는 게 더 스트레스요, 정신건강에 해로울 것 같은 경기는 시작되었고 이안이는 약속대로 전반전이 끝나자마자 누울 준비를 하였다. 그때까지 경기는 0대 0 무승부. 오, 생각보다 선전하는데?

누워서 잘 준비를 하던 이안이가 갑자기 일어나 기도를 했다.  '우리나라가 이기게 해달라고 기도했어요.'라고 말하는 아이에게 내일 아침 기도가 응답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어떻게 말해줄까 잠깐 고민하며 나도 잠이 들었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휴대폰을 켰다. 독일과의 경기 2:0  아, 2골 먹고 졌구나 하고 덮으려는 순간 뭔가가 이상해서 다시 기사를 보는데... 헉! 이럴 수가, 우리가 이겼다고? 그것도 두 골이나 넣어서? 대박이야, 대박!!


아이가 일어날 시간이 될 때까지 기다렸다가 잠이 덜 깬 아이의 귓가에 대고 말했다.


"이안아, 너의 기도가 응답되었어. 우리가 독일을 이겼어."


나는 아이가 환호성을 치거나 혹은 잠이라도 확 깨서 오늘 아침은 깨우는 수고를 덜 수 있을 거라고 기대했다. 그러나 이안이의 반응은 덤덤했다. 그러고는 되물었다.


"멕시코는요?"


"아, 멕시코는 졌어. 그래서 우리가 아쉽게도 16강에는 못 가." (멕시코의 결과에 따라 우리나라 16강 진출이 결정되었다.)


한동안 아쉬운 표정을 하는 이안이가 말했다.


"아, 내가 멕시코는 기도를 안 했구나."


그렇구나, 그래서 멕시코가 졌구나.. 하하하하

어린아이와 같지 않으면 천국을 볼 수 없다는 말 정말 맞는구나. 1%라도 있으면 포기하지 않는 것, 기도할 수 없는 상황에도 기도하고 믿는 것... 오늘 너에게서 큰 깨달음을 얻었다. 사랑한다, 아들아.





한동안 침체기를 겪었다. 내가 하는 일에 '왜?'라는 질문을 던졌지만 이렇다 할 답을 얻지 못하고 있었다. 상의 피곤과 지침을 딛고 일어설만한 동기가 되어 주는 일이 없었다.


3년을 미뤄 둔 여행사진을 모아 포토북을 만들었다. 천진난만하게 웃고 장난치는 아이들이 정지된 사진 속에서도 에너지를 뿜어 내고 있었다. 지나간 추억은 여전히 힘이 남아 있어 나를 살짝 설레게 했다.


지난 추억 모음 속에서 내가 쓴 글들을 보았다. 사진으로도, 영상으로도 담을 수 없는 그날의 기록들이 바람처럼 날아가버린 기억을 소환해 띄엄띄엄 사라진 부분까지 꼼꼼하게 채워주었다. 그러네. 그런 거네. 모습을 사진으로 남기듯 생각은 글로 남겨두는 것이다. 새 해가 되어 늘어난 나이만큼 멀어져 잊혀지고 있는 내 삶들을 부지런히 기록해 두지 않으면 나는 이 세상에 살았어도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릴 것이다. 1%의 가능성, 1%의 이유... 계속 생각을 했다. 그리고는 1% 나아진 마음으로 결론을 내렸다. 99%의 욕심과 위선을 숨긴 수많은 이유 말고 누군가에게 기억되고 싶은 1%의 순수함을 믿고 나를 기록하는 일을 주저하지 말자고.


매거진의 이전글 양심의 무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