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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행복독립

우리가 음악을 하는 이유

얀이(중1)

by 최여름

'입이 방정이지...'

나이가 들수록 말을 조심해야 된다. 얀이가 6학년 때 나는 동료 교사에게 이런 말을 했다.

"얀이가 장난이 심하고 말을 잘 안 듣는 거 같아도 나한테 화를 내거나 짜증은 잘 안 부렸던 것 같아. 진짜 성격이 좋은 건지 그냥 참고 있는 건지 한 번씩 걱정이 되기도 해."

이 말을 후회하기까지는 정말 오래 걸리지 않았다. 중학생이 되자 어느 날 목소리가 중저음으로 바뀌더니 그 좋던 아이의 성격도 변했다. 한 번도 화를 안 내서 걱정했던 나를 비웃듯 우리 집의 시한폭탄이 되어 수시로 뻥뻥 터졌다. 동생을 보기만 해도 으르렁 거리고 나한테 대들고 말만 하면 짜증을 냈다. 그러다가 또 한없이 수다스러운 아들로 변하기도 하고 진지한 모범생이 되기도 하고 하루에도 캐릭터가 몇 번이나 바뀌는지..

특히나 얀이와 많이 다퉜던 것들은 샤워하거나 잠자기, 가방 미리 챙기기 등 정말 입에 담기도 민망한 사소한 것들이었다. 공부하라는 잔소리는 강심장이 아니면 하지도 못한다. 나도 어지간하면 스스로 할 수 있게 기다려 주고 싶다만 시켜서 하는 거 정말 싫어하면서 안 시키면 또 안 한다. 이건 정말 비슷한 중딩을 키워 봐야만 공감할 수 있다. 이 시기를 지나보지 않은 사람은 그냥 입을 다물라.

그날도 10시가 넘어가는데도 소파에 앉아 휴대폰만 보는 아들에게 이제 씻으라고 했다가 사달이 났다. 어떤 때는 대답만 찰떡 같이 하고는 움직이지 않아서 속을 뒤집더니 이 날은 자신의 마음을 얼굴로 다 표현했다. 세상 짜증 섞인 말과 표정으로 내 이성을 안드로메다로 날려 버렸다. 와, 진짜 자기 필요할 때는 나를 부려먹는 것을 너무도 자연스럽게 하더니 말 몇 마디 했다고 나를 벌레 보듯이 본다. 순간 냉큼 아이를 들어 집어던지고 싶은 마음을 애꿎은 빨래통을 걷어차는 것으로 대신했다. 너무 화가 나서 뭐라도 집어던지지 않으면 내가 폭발할 것 같았다. 결혼하고 아들 둘을 키우면서 몰랐던 내 모습을 많이 발견하지만 사춘기 아들을 키우니 나에게 폭력성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됐다.

내 폭발 원료는 억울함이었던 것 같다. 내가 너 필요하다면 지각도 불사하고 기다려 준 게 몇 번인지, 너 교복이랑 체육복 추가 구입한다고 공장까지 찾아가고 너 학교에서 필요한 것들 빠짐없이 챙겨주고 매일 일기예보 보며 우산 챙겨, 잠바 챙겨, 읽을 책 떨어지면 매번 새로 채워 주고... 그것뿐인가, 내가 직접 먼저 읽어보고 괜찮은지 확인하고.... 그만하자, 내가 생각해도 구질구질하다.

어쨌든 자기 필요할 때는 맘껏 부려 먹다가 싫은 소리 조금 하면 온갖 성질 다 부리는 것이 그날따라 받쳐 올랐던 것 같다. 예전에 내가 화를 내면 깨갱하고 숨 죽였던 큰아들은 이제 없다. 누구의 말이 더 정당하든 우리는 서로 억울한 관계가 되었다. 얀이도 나도 뜨겁게 달궈진 돌덩이를 안은채 밤을 보냈다.

다음 날 아침이 되었지만 서로의 관계는 어젯밤과 다를 게 없었다. 아무리 화내도 금방 돌아서서 헤헤거리고 웃던 아들도 이젠 없어진 것이다. 말도 섞기 싫고 쳐다보기도 싫었는데 그건 얀이도 마찬가지인 듯했다. 동료 선생님의 아내가 사춘기 아들과 싸워서 서로 일주일간 말도 안 하고 지낸다는데 그게 내 일이 될 수도 있겠다 싶었다.

늘 학교까지 태워 줬는데 그날은 (얀이의 표현을 빌리면) 아들을 버리고 갔다. 내가 그렇게 가면 남편이 데려다 줄 줄 알았는데 남편도 그냥 걸어가게 했단다. 이 추운 날 무거운 가방을 메고 그 오르막길을 걸어가게 하다니 싸운 아들보다 남편이 더 미웠다.

그날 저녁에는 악기 레슨이 있었다. 일주일에 한 번 얀이, 레야, 그리고 나까지 3명이서 밴드 악기를 배우러 다닌다. 얀이는 일렉기타, 레야는 드럼, 나는 베이스를 한 공간에서 같이 배운다. 퇴근하는 길에 얀이를 태워가야 하는데 그때까지도 우리 사이는 냉랭했다. 나도 아이들과 관계가 나빠지는 것을 못 참아서 내가 심했던 부분은 바로바로 사과를 하는 편인데 이번에는 빨래통 걷어찬 것을 사과하기 싫었다.

레슨 시간이 되었고 각자 자기 악기를 연습했다. 그리고 레슨이 끝나갈 무렵 선생님이 합주를 해보자고 했다. 두어 달 동안 얀이는 캐논변주곡 슬의생 버전을 연습하고 있었는데 이 곡이 기타 위주의 곡이라 초보인 얀이에게는 꽤 어려운 도전이었다. 게다가 얀이의 사춘기는 악기실에서 먼저 시작된 것 같았다. 5학년 말부터 악기를 배우기 시작했는데 얼마 전부터 하기 싫은 표를 얼마나 내던지 그렇게 하려면 때려치워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랐다가 내려가기를 수차례 반복했다. 진지하게 그만해도 된다고 말했지만 그건 또 싫은지 온갖 똥 씹은 표정을 지으면서도 꾸역꾸역 따라왔었다. 그렇게 힘겹게 조금씩 캐논변주곡의 문 앞에까지 왔더랬다. 그동안 했던 것에 비해 꽤 어려웠는데도 얀이는 어느새 악보를 다 외우고 더듬거리면서도 끝까지는 갔다. 그리고 드디어 드럼, 베이스와 합주날이 온 것이다.

레슨 선생님이 기타 반주를 해주고 그분 아들이 키보드를 메워주어 연주를 시작했다. 얀이의 손이 점점 빠르게 움직였다. 중간에 조금씩 틀려도 멈추지 않고 연주를 이어갔다. 선생님의 신호에 따라 드럼 비트가 빨라졌다. 나도 옆에서 베이스로 따라갔다. 약간의 아쉬움이 남았던 첫 번째 합주가 끝나고 한번 더 연주를 시작했다. 레야의 드럼이 더 힘을 받아 스피드를 올렸고 얀이는 조금 전보다 더 안정되고 능숙하게 연주를 했다. 드럼이 4비트에서 8비트로 바뀌고 화려한 필인이 들어가면서 가슴이 고동치기 시작했다. 얀이는 조금의 수줍음도 없이 기타를 현란하게 튕겨 대기도 하고 밀어 올리기도 하며 드럼에 밀리지 않고 제 페이스를 끌고 나갔다. 실제 영상을 보면 부족한 것 투성이지만 그 순간만큼은 일류 연주자의 마음과 다를 게 없었고 우리는 그동안의 연습량을 보상받듯 전율을 느꼈다.

잘했어, 잘했어, 너무 멋졌어! 정말 이 순간을 바라고 그동안 꾸준히 아이들을 데리고 다닌 것 같았다. 우리가 연주한 음악은 우리 스스로를 흥분시키고 또 정화시켰다. 연주가 끝나고 나는 얀이를 크게 안았다. 너무 멋지고 너무 예쁘고 너무 기특했다. 웬일로 얀이도 밀어내지 않고 그대로 있었다. 약 하루를 괴롭게 했던 애증의 갈등은 특별한 액션 없이도 이렇게 음악으로 녹아내렸다. 돌아오는 길엔 얀이가 또 수다쟁이 모드로 돌아왔다. 차 안에서 연주한 곡을 좀 들어보려고 하는데도 어찌나 자기 얘기만 조잘조잘 대는지, 친구 얘기, 유튜브 얘기 생각나는 대로 주제도 없이 까불거렸다.

"아, 좀 조용히 좀 해라. 음악 좀 듣자."

"아, 엄마~"

돌아오는 차 안에서 또다시 투닥거렸지만 이 날 음악이 준 감동과 화해는 우리 둘 다 잊지 못할 것이다.

이 날의 기억이 아이에게는 어떻게 남아있을까 궁금할 때가 있다. 아마도 이 놈의 사춘기가 끝날 때까지 나는 대답은커녕 짝사랑의 서러움만 쌓고 있겠지만 어쨌든 그날 이후 우리는 조금씩 조심하며 산다. 아이는 아이대로 나는 나대로 한 발 물러서기 연습을 한다. 아직은 열 발 스무 발은 더 물러 나야 하겠지만 '제가 알아서 해요.'라는 말이 '신경 끄세요'가 아니라 '저도 이만큼 컸어요.'라는 말로 들리던 어느 날 나는 아이가 독립을 준비하고 있음을 어렴풋이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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