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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여름 Mar 11. 2022

벚꽃이 피길 바라며..

2022. 3. 10.

새로 발령 받은 학교의 우리 반 학생은 2명이다.

그중 한 명이 아직 오지 않아 복도에서 멍하니 후문을 바라보며 기다리고 있었다.

보라(가명)가 같이 나와 내 옆에 섰다.

"저기 저 나무가 무슨 나무인 줄 아니?"

교문 밖에 서 있는 가로수를 보며 내가 물었다. 아마도 벚나무이지 싶다.

"몰라요."

"혹시 봄에 흰 꽃이 피던?"

"몰라요."

하긴, 아이일 때 나도 시골에서 자랐지만 매일 보는 나무나 꽃에 별 관심이 없었다.

일단 사진을 찍어 보는 나를 보더니 보라가 무안한 듯 말했다.

"그네에서 찍으면 진짜 예쁘게 찍을 수 있어요."

"그래? 그럼 거기서 기다리자."


운동장을 가로질러 그네 있는 곳으로 갔다. 아이가 자신 있게 소개한 만큼 내심 멋진 포토존을 기대했는데... 별게 없다. 그냥 이곳도 가지만 남은 나무일뿐이었다. 대충 봐도 여기보다 예쁜 곳이 학교 곳곳에 있다. 

"음. 좋네."

사진은 찍어 보지만 영혼 없는 내 마음을 읽었는지 보라가 그네를 타며 말한다. 

"해 있을 때 찍으면 정말 예뻐요."

"그래.."

내 반응이 안타까운지 보라가 제 폰을 가져와 나에게 사진을 내민다.

아이가 말한 해 있을 때란 노을을 말하는 것이었다. 

"와~" 

내 반응에 진심이 조금 더 담겼다.


아이가 기억하는 멋진 장면은 내가 보는 것과는 다른 것 같다. 봄에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는 것은 기억 못 해도 누군가와 저녁에 나와 그네 타며 찍은 노을은 두고두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기억되었다. 좀 있으면 커다란 꽃망울을 터뜨릴 것 같은 화단의 목련은 그게 있었는지도 기억 못 하지만 지난해 따 먹었던 블루베리 나무는 신나게 소개를 한다. 

같은 곳에 있어도 우리는 늘 다른 것을 보고 다른 것을 느끼며 나에게 의미 있는 것을 기억한다. 이 짧은 산책으로 이제 보라는 목련나무를, 나는 블루베리 나무를 새롭게 기억하게 될 것이다. 


왜 이 사소한 이야기를 나는 기록하고 싶어 졌을까. 아마도 이 아이들에게 나도 그네에서 보는 노을처럼, 달콤한 블루베리 나무처럼 기억되고 싶어서일까.



저 나무에 벚꽃이 피면 꼭 아이들과 사진을 남겨야겠다. 내년 겨울에는 무슨 나무였는지 기억할 수 있도록.


보라가 기억하는 풍경. 아마도 아이는 그때의 공기와 기분을 함께 떠올리며 사진을 보겠지. 그래서 더 아름답겠지.


결국 결석한 친구로 인해 오늘 하루는 내가 선생님도, 친구도 되어 주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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