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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나온 Sep 02. 2024

오래된 그림이 전해준 말

오래된 그림이 전해준 말


 작년 여름, 가족과 함께 거진에서 4박5일 여름휴가를 즐겼다. 휴가를 마치고 나오며 우리는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또 다른 곳으로 떠나고 있었다. 남편이 그곳을 가겠다고 했을 때, 굳이 가야 할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딱히 반대하지도 않았다. 그렇게 먼 줄은 차마 몰랐기 때문이다.   

   

 동해 최북단에서 고속도로를 따라 남쪽으로 남쪽으로 계속 내려간다. 아이들은 가는 곳이 어디인지도 몰랐다. 자다 깨기를 반복하며 다섯 시간이 넘는 길 끝에 드디어 목적지에 도착했다. 찌뿌둥한 몸을 이끌고 숲길을 한참 걷자 탁 트인 공간이 나왔다. 남편이 외쳤다.      


" 자, 봐봐! 여기가 진짜 반구대 암각화야!"      


 눈앞에 넓은 천이 흐르고 그 뒤로 돌벽을 드러낸 낮은 산이 보인다. 국보 285호 '울산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이다. 신석기부터 청동기 사이에 새겨진 것으로 추정되는 우리나라 최초의 회화작품이며, 전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고래 사냥 그림이 새겨진 절벽이다.   

   

 사실 우리는 이미 반구대 암각화 전시를 보고 왔다. 방학 숙제로 국립중앙박물관의 암각화 그림을 따라 그리는 것이 있었기 때문이다. 박물관 1층의 선사·고대관에서 제일 먼저 마주하게 되는 것이 반구대 암각화 사진이다. 전시된 실물 크기의 사진에는 암각 그림을 흰색으로 도드라지게 표시해서 무엇을 그렸는지 형태를 쉽게 알아볼 수 있었다. 아들은 고래와 고래잡이배, 그리고 사람 얼굴을 따라 그렸다. 그것을 지켜보던 남편은 내심 아쉬웠나 보다. 사진이 아니라, 진짜 암각화를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다. 아들에게 '진짜'를 보여주고 싶은 그 마음이 다섯 시간 넘는 장거리 운전으로 울산까지 오게 했다.   

   

 암각화와 관람자 사이에는 대곡천이 흐르고 있다. 그 때문에 박물관 사진처럼 그림을 가까이서 볼 수는 없다. 당연히 하얀 윤곽선 따위는 찾아볼 수도 없고, 자연 풍화에 의해 예전엔 선명했을 암각도 흐릿해지고 있었다. 대신 성능 좋은 망원경이 설치되어 있다. 이미 먼저 온 사람들이 망원경으로 암각화를 보고 있었는데, 아들 둘이 안 보인다며 안타까워하자 한 커플이 망원경을 양보해 주었다.    

  

 두 아이가 서로 먼저 보겠다고 망원경 앞에서 실랑이를 벌였다. 힘에서 밀린 둘째가 찡얼대는 걸 아랑곳하지 않고 첫째는 망원경에 얼른 눈을 댄다. 그래도 안 보인다고 투덜대자, 아빠는 다가가 이리저리 각도를 맞춰준다. 곧 아들은 무언가 보인다며 소리를 질렀다. 어서 와 엄마도 보라며 보여준 화면에는 엄마 고래가 새끼 고래를 업고 헤엄치는 모습이 선명히 보였다. 아들이 박물관에서 따라 그렸던 그림이었다.  

    

 흥분해서 소리를 높이는 첫째를 보며 둘째는 더 울상이다. 아이 아빠는 이제 동생에게 양보하라고 첫째에게 말했다. 첫째는 아직 다 보지 못했다며 입이 뾰로통했지만 결국 동생에게 자리를 내주었다. 망원경을 차지한 둘째의 얼굴에 흥분의 미소가 감돈다. 아빠는 조금이라도 더 자세히 보여주려고 초점을 맞추고, 무엇을 그린 그림인지 설명하느라 바쁘다. 첫째는 바닥에 주저앉아 신발에 모래를 털며 아직 못 찾은 그림이 많다며 투덜댄다. 암각화의 그림보다도 그들의 닮은 듯 각기 다른 눈썹과 눈동자, 볼록한 볼의 움직임을 흥미롭게 바라보았다. 흐뭇하게 지켜보다 휴대전화를 들어 사진을 찍었다. 찰칵.    

  

 그들이 돌벽을 파내고 바위에 새겨 남기고자 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SNS에 쇼핑한 물건이나 여행 사진을 올리듯 사냥의 업적을 남기고 과시하기 위한 것은 아니었을까? 어느 집 아빠가 사슴을 잡았대. 아이고 우리 집 아빠는 호랭이를 잡아 왔어. 그 시대 아낙과 아이들이 으쓱대며 했을 자랑을 상상하니 피식 웃음이 나왔다. 우리 아이들도 학교에 가서는 그런 자랑을 하겠지? 우리는 서울 박물관도 가고, 울산에 가서 진짜 암각화도 봤다. 또 피식 웃다 남편의 진지한 옆모습에 미안한 마음이 들어 얼른 웃음을 삼켰다.  

    

 어느 순간부터인지 사진첩에는 내 사진이나 남편 사진은 없고 아이들 사진만 가득하다. 그러나 이 사진은 유독 남편의 모습이 마음에 들었다. 사진 속 남편의 얼굴을 확대해 들여다보았다.    

  

 고작 11살, 8살 먹은 아이들이 수천 년 전 암각화를 본들 눈앞의 국보가 어떤 가치를 지녔는지 얼마나 알겠는가. 그럼에도 400km를 운전해 찾아와, 망원경의 초점을 맞추고 그림을 찾아 주는 아빠의 마음은 어떤 것일까.      


 남편의 옆모습과 수천 년 전 어느 아버지의 모습이 겹쳐 보인다. 절벽 앞에 서서 고래를 조각하는 사내의 내면은 마냥 고요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들숨에는 다음 날 바다로 떠나 마주해야 할 거대한 파도와 미지의 고래에 대한 두려움이 들이칠 것이다. 날숨엔 고래를 잡고야 말겠다는 의지와 동료들의 안전을 지키겠다는 책임감을 다졌을 것이다. 큰 고래를 몇 번이나 잡았다는 자랑스러움은 아들에게 주고 싶은 '진짜'가 아니다. 여러 번 목숨을 잃을 뻔한 위기를 극복한 아버지는 아들에게 사냥의 정보와 기술, 지식과 지혜를 빠짐없이 알려주고 싶었을 것이다. 믿어 의심치 않는 자랑스러운 아들임에도 행여나 조심하라고 일러준 것을 잊고 서두르다 다치지는 않을까 걱정하는 마음. 자신을 빼닮은 아들이 자신보다 더 멋진 어른으로 성장하길 바라는 마음. 자신보다 더 용맹한 사냥꾼이 되어 무리를 더욱 풍요롭게 만들기를 바라는 마음. 그런 아비의 마음들이 간절한 맹아가 되어 그다음 아비에게로, 또 그다음 아비에게로 전해지는 것은 아닐까. 겹겹이 쌓여 신체에 각인된 오래된 진심이 무엇일지 나는 감히 내 아이의 아버지를 통해 가늠해 보는 것이다.   

   

 아이는 이 모든 걸 머리로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영혼으로 느낄 것이다. 세월이 흘러 아들이 지금의 우리 나이가 되어 열혈 부모 노릇을 한다고 설치면, 너는 네 아비에 비할 바 못 된다며 이날의 사진을 보여주리라.      

 사진은 돌에 새긴 의지와 결심을 전해주지 못한다. 그래서 진짜 중요한 것은 돌에 새기듯 마음에 새겨야 한다. 내가 받은 것은 무엇인가, 내가 새기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 내가 전해줘야 할 것은 무엇인가. 그런 진짜 고민을 해야 할 나이가 되었다고, 거친 비바람과 물살에도 만년 가까이 살아남아 내 눈앞에 다다른, 오래된 그림들이 말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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