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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나온 Sep 03. 2024

반지에 담긴 마음

  

 나는 그를 언제나 학사님이라고 불렀다. 처음 대화를 나눌 때부터 학사님이었고 그 후로도 수년을 학사님이라 부른 터라 그가 부제가 되고 신부가 되었어도 학사님이라는 말이 자꾸 튀어나왔다.


 얼마 전 그의 소식을 들었다. 주임신부가 되었다는 소식이었다. 본당 사목 활동을 얼마나 잘하는지 소문이 자자하다며, 엄마는 그가 미사를 집전하는 모습을 유튜브에서 찾아 보여 주셨다. 영상 속에서 마주한 그의 모습은 예전의 모습에서 조금은 살이 빠진 듯 보였고 내가 아는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로 신성한 목소리에 진지한 모습이었다. 그러나 강론 모습을 보니 여전히 동글동글한 웃음과 특유의 유머가 빛나고 있어 낯선 마음이 좀 풀렸다. 


 그를 보고 있자니 그해 겨울이 남긴 잊히지 않는 마음이 다시 떠올랐다.


 이십 대 중반이었을 때다. 나는 초등부 교리교사를 하고 있었고, 그는 겨울방학이라 신학교에서 나와 성당 사목을 돕고 있었다. 그날은 같이 크리스마스 예술제를 준비하고 회식을 했다. 노래방에 갔는데 그는 노래도 잘 부르고 심지어 춤도 잘 췄다. 신학교에 틀어박혀 기도하고 묵상하는 사람이 어떻게 우리보다 최신 유행가를 더 잘 아는지 신기해하면서도 다들 흥에 겨워 연말의 유흥을 만끽했다. 


 집으로 돌아가던 방향이 같았던 우리는 둘 다 기분 좋게 취기가 올라 아쉬웠던 지라 잠시 벤치에 앉아 이야기나 더 나누다 들어가자고 하였다. 영화 밀양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신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신부님이나 수녀님께 할 수 없는 질문, 독실한 엄마에게는 할 수 없는 질문들을 그에게는 할 수 있었다. 나의 고민과 그의 고민이 때로는 진지하게, 때로는 에라 모르겠다는 식의 농담으로 오간 것 같다. 그에게 신학교에서 무엇을 배우냐고 물었는데 묵언 수행 때 짐 싸서 나올 뻔했다 하여 박장대소를 하다가도 진심으로 그가 나올까 봐 걱정했던 밤이었다. 


 술에 취한 푸른 밤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오락가락했다. 추위에 손을 녹이려 호 하고 입김을 부는 순간 그가 내 손가락의 묵주반지를 발견했다.      


 “못 보던 반지네요?”

 “네. 엄마가 기도 하라고 사 주셨어요.”     


 함께 내 손에 낀 반지를 내려다보았다. 그 반지는 회전 묵주반지인데, 바깥 반지의 홈 안에 안쪽 반지가 포개져 있어 손으로 돌리면 돌기를 돌리면서 묵주기도를 할 수 있는 금반지였다. 


 “반지 좀 구경할게요.”     


 손가락에서 반지를 빼 건네주니 그가 묵주반지를 몇 번 돌려보다 말했다.  

   

 “반지가 잘 안 돌아가는데?”

 “그렇죠. 기도를 잘 안 하니까. 하하”

 “아이고. 기도 하지 않는 묵주반지가 뭔 소용이 있어요? 이건 제게 주시죠. 크리스마스 선물이다 생각하고.”     

 그러더니 내 반지를 냅다 자기 주머니에 넣는 것이다. 엥? 아니, 곱게 취했나 싶었더니 이렇게 말간 얼굴로 삥을 뜯는 것인가? 어이가 없어 그의 눈을 한참 바라봤다. 그러나 그는 앙글앙글 웃기만 할 뿐 내 반지를 돌려줄 생각이 없어 보였다. 그거 나름 고가의 반지인데……. 하지만 그러는 이유가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의아하긴 했지만 아깝다고 생각하지 않았고, 순순히 그에게 반지를 주었던 것 같다. 


 크리스마스가 지나고 설이 지났다. 개학이 다가왔고 그는 다시 신학교로 돌아갈 때가 되었다. 교리교사 회합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려는데 그가 나를 불러세웠다. 그러더니 자기 새끼손가락에서 내 반지를 빼서 건네는 것이다. 나는 씨익 웃으며 반지를 받아 내 검지에 꼈다. 그리고는 무심코 반지를 돌리다 펄쩍 놀랐다. 가슴이 뻐근해졌다. 반지가 휭휭 잘 돌아가는 것이었다. 


“자매님을 위해 기도했어요.”     


 얼마나 많은 기도를 하면 반지가 이렇게 잘 돌아갈까. 나는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몰라 붉으락푸르락했다. 뭉클하고 울컥하면서도 이걸 받아도 되나 싶었고 주위에 누가 없나 두리번거렸다. 그런 내 반응을 보며 그는 재밌다는 듯 웃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묵주반지를 돌리며 그의 기도가 어떤 의미였을지 생각했다. 라디오 주파수를 맞추듯 사랑의 스펙트럼 중 어느 지점에 위치한 기도였을지 생각했다. 생각을 오래 한 것은 아니었다. 그는 신학교로 돌아갔고, 일상은 재미있는 일로 가득했고, 나는 여전히 기도와는 거리가 멀었으니까.   

  

 나이를 먹을수록 기도의 무게를 느꼈다. 겨울이 깊을수록 돌려받은 반지가 떠올랐다. 누군가에게 비난받아 악에 받칠 때도 나를 위해 기도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나를 겸손하게 하고 나를 지킬 수 있게 했다. 반지를 돌려받던 그 순간은 머리로 신을 이해하고자 했던 얼음 같은 내게 신의 섭리가 은밀히 스미는 따뜻한 순간이었다.     


 유튜브에도 나오고, 좋은 신부님이라고 소문도 자자하다니 그는 많은 이의 사랑을 받는 유능한 사제가 된 듯하다. 나는 나자렛 시절 예수를 알고 있는 사람의 기분이다. 그래서 더욱 그를 위해 기도한다. 내가 받은 반지처럼 말간 웃음을 띠고, 순정한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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