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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나온 Sep 04. 2024

혼합물의 분리


    

이 글은 2008년 6월, 실경력 3년이 채 되지 않은 어느 저경력 교사와 초등학교 4학년 아이들의 과학 수업 이야기이다.   

  

교육과정상의 본 수업은 물과 식용유의 혼합물을 분리하는 방법을 배우고, 실험을 통해 물과 식용유를 직접 분리해 보는 활동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교사는 조금은 무모하게, 하지만 성공하지 않더라도 의미 있을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본 차시 수업을 재구성하였다.    

 

당신의 11살에 수업에 임하는 마음은 어떠했는가?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을 초등학교 4학년 과학 수업으로 초대한다.           


1. 문제로의 초대

     

수업을 시작하며 교사는 2007년 12월에 일어난 태안 기름 유출 사고 동영상을 보여주었다.      

까만 기름을 온몸에 뒤집어쓴 물새, 기름 속에서 괴로워하며 팔딱이는 짱뚱어, 기름띠를 이룬 모래사장의 처참한 모습이 펼쳐졌다.      

생계와 삶의 전부였던 바다를 어떻게든 살려내야 했던 어민들은 제대로 된 방제복이나 방제 도구도 부족하여 집에 있는 삽이며 양동이를 끌어모아  기름을 퍼내고 닦아 내었다. 그러느라 얼굴과 온몸에는 시커멓고 역겨운 기름투성이였다.  발을 동동 구르며 흡착포로 해안의 기름을 닦아 내다가 이내 울음을 터뜨리는 아낙, 이제 다 키워서 내다 팔 일만 남은 전복이 모두 폐사한 것을 바라보며 망연자실한 어부의 깊은 주름이 보인다.


 뉴스가 이어져 나온다. 기자는 오일볼이 형성되어 바다 및 토양으로 침투할 것이고, 가라앉은 오일볼은 봄철 기온이 높아지면서 수면 위로 떠 오를 것이라 말한다. 수면 위로 떠 오른 오일볼은 햇볕을 받아 터지면서 반경 수 Km에 걸쳐 기름막을 형성하고 독성물질은 휘발되어 공중으로 퍼질 것이라고 한다.     

전국 각지, 해외에서까지 모여든 자원봉사자들은 길게 줄지어 서서 바다에서 퍼낸 기름 양동이를 옆으로 옆으로 옮겨 드럼통에 모아 담았다. 방수포가 부족하다는 소식에 전국의 사람들은 헌 옷을 모아 태안으로 보냈다. 한겨울의 차가운 칼바람을 맞으며 헝겊으로 해변 모래와 바위에 묻은 기름을 닦아 내는 무수한 사람들의 행렬을 외신은 기적이라고 표현하였다. 
 
 영상이 끝났다. 교사는 아이들과 영상을 보며 기억에 남는 장면이 무엇이었는지, 어떤 느낌이 들었는지를 나누었다. 그리고 교실을 둘러보며 말한다. 
 
 “이것은 바로 6개월 전에 우리에게 실제로 일어난, 참담하고 슬픈 사고입니다. 아직도 태안의 바다는 몸살을 앓고 있지요. 우리는 사고가 났던 그날로 돌아가, 바다에서 기름을 분리해 낼 것입니다. ”      


    

2. 탐색     


본래 교과서에는 시험관 속의 물과 식용유의 혼합물을 스포이트를 사용하여 분리하게 되어 있다. 그러나 실험실 테이블엔 비장하게 흰색 전지가 깔려 있으며, 시험관이 아니라 태안 앞바다를 축소해 놓은 듯한 커다란 수조가 올려져 있었다. 수조 속 물에는 푸른색 색소를 섞었고, 식용유에는 검정 유성 잉크를 섞었다. 색소를 섞으면 본래 투명한 물과 기름의 층을 뚜렷하게 확인할 수 있으며, 실제 기름 유출 현장과 비슷한 색감을 조성하여 직접 방제작업을 한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교사는 실제 바다와 원유 같은 느낌을 내는 수조를 조성하기 위해 여러 번의 시행착오를 겪었다. 검은 기름이 테이블에 묻으면 잘 지워지지 않기 때문에 미리 흰색 전지를 깔아 놓아야겠다고 생각한 것도 본인이 선행실험을 하며 테이블에 묻은 색소를 지우느라 애를 먹었기 때문이었다.
 
   자율 준비대에는 스포이트 외에도 다양한 실험 도구들이 즐비했다. 실제 기름이 유출된 바다의 방제작업에는 한 가지 방법만 사용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뉴스에서 나오는 유흡착포, 오일펜스, 유회수기, 유화제 등을 구현하기 위해 학생들에게 액체 세제, 키친 타월, 솜, 휴지, 헝겊, 숟가락, 핀셋 등이 추가로 제공되었다. 물론 키친 타월이 유흡착포를 의미한다는 것을 아이들이 알고 실험하지는 못하겠지만, 여러 가지 방법을 시도하고 선택하며 그 과정에서 창의적이고 다양한 사고를 할 수 있기를 의도했다.     

교사 자신도 궁금했다. 아이들은 어떤 방법으로 어떻게 기름을 제거할까?
 
 아이들은 모둠별로 머리를 모아 어떤 방법으로 기름을 제거할 것인지 협의를 한다. 실험 순서를 설계하고 역할을 분담한다. 그리고 교사의 안내에 따라 실험 계획을 모둠 화이트보드에 검은 펜으로 정리했다.


          

3. 문제 해결

     

“여러분의 바다는 지금 이 시각에도 죽어가고 있습니다. 따라서 신속하고 효과적으로 기름을 제거해야 할 것입니다. 제한 시간은 15분, 지금부터 실험 계획에 따라 기름을 제거해 봅시다. 태안의 어민과 자원봉사자들의 마음으로, 파이팅!”      


아이들은 자신들의 계획에 따라 기름을 제거하기 시작했다. 숟가락을 먼저 쓰는 모둠이 있는가 하면 많은 양의 키친 타월을 쫙 덮어버린 모둠도 있었다. 과학 교과서에 나온 방법대로 스포이트로 쪼옥 쪼옥 성실하게 기름을 모아 짜내는 방법을 택한 모둠도 있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각 모둠의 방제 작업의 효율성에 관한 정보가 공유된다. 교사는 이때 실험 계획에서 부적절하거나 더 좋은 방법을 찾았을 경우 처음의 계획을 수정할 수 있다고 말해준다. 수정된 계획, 추가된 실험은 붉은색 펜으로 기록하도록 하였다. 이러면 실험의 처음 계획뿐 아니라 시행착오를 겪고 변화된 계획, 다양한 시도, 사고 과정이 잘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러자 모둠 간 정보교류는 더 활발해졌다. 방제작업에 속도가 붙는다. 검은 기름막이 점차 사라지고 푸른 바다가 드러나기 시작하자 여기저기서 환호성이 터졌다.      

아이들은 나름의 방법으로 바다를 구출해 내고 있었다. 그리고 바다를 구출해 내는 기쁨을 느끼고 있었다. 
      

4. 적용   

  

주어진 15분이 지났다. 기름을 거의 제거하고 파란 물이 드러난 수조가 있는 반면, 여전히 얼룩덜룩한 검은 기름이 둥둥 떠 있는 수조도 있었다. 그래도 모든 모둠이 처음보다는 눈에 띄게 파래진 바다를 만들어냈다는 점은 고무적이었다.      


아이들은 모둠별 수조를 비교해보았다. 돌아가며 어떤 방법을 써서 기름을 제거했는지 발표하고, 질문하였으며 서로를 격려하였다.


 “여러분의 헌신적인 방제작업 덕분에 기름이 많이 제거되고, 바다가 원래의 모습을 잘 찾아가고 있네요. 모두 수고 많았습니다. 그럼 기름을 제거하는 각각의 방법이 어떤 원리로 혼합물을 분리하는 것인지 알아보도록 합시다.”     


교사는 실제 방제작업 사진을 보여주며 물과 기름의 혼합물 분리의 원리를 설명한다.


 스포이트로 기름을 걸러내는 방법은 액체의 무게가 다른 원리를 이용해 위에 떠 있는 액체만 분리해내는 것이다. 실제 기름 유출 상황에서는 유회수기가 이 원리를 사용해 바다에서 기름을 분리해낸다.


 수조 위에 뜬 기름을 키친 타월을 덮어 분리하는 방법은 기름만 흡수되는 원리를 사용한 것이다. 실험에서 키친 타월은 기름도 흡수하고 물도 흡수하였지만, 실제 기름 유출 상황에서 오일펜스와 유흡착포는 이 원리를 이용해 기름의 확산을 막거나 기름을 제거한다.


 기름 제거에 가장 애를 먹은 모둠은 처음에 세제 용액을 뿌린 모둠이었다. 이들은 뉴스에서 유화제를 뿌리는 장면을 많이 보았다고 한다. 그래서 유화제와 비슷한 것으로 생각되는 주방세제를 뿌리면 기름이 없어질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생각처럼 검은 기름은 잘 분해되지 않았으며 오히려 물과 기름이 잘 섞여 기름만 분리해 내는 데 더 어려움을 겪었다. 

교사는 아이들에게 세제를 뿌리면 기름 알갱이가 작아지며, 실제 방제작업에서 쓰는 유화제도 이러한 원리를 이용한 것이라고 알려준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묻는다.     

“세제를 뿌려 기름을 분해하는 것이 혼합물을 분리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아이들은 아니라고 말했다. 바다에 기름이 잘 섞이게 하는 것이지 분리가 아니다. 하지만 우리는 뉴스에서 유화제를 뿌리는 장면을 많이 보아왔다. 친환경 유화제를 쓴다고 하지만 이것은 기름을 분리하는 것이 아니라, 알갱이를 작게 만들어 바다에 섞이게 만들고, 바다의 자정 작용으로 분해되기를 기대하는 방법이라고 설명해주었다.      


교사는 설명하면서도 아이들이 원리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역시 4학년에게 이해시키기에는 너무 어려운 주제였다. 집중력이 흩어지고 잡담이 많아지는 수업 분위기를 잡기 위해 교사는 다음 질문을 던진다.      


“자, 그럼 여러분들이 분리해 낸 기름은 이제 어떻게 할까요?”     


아이들은 ‘폐식용유 통에 버려야 한다.’는 것과 ‘아니다, 이건 너무 시커메서 폐식용유 통에 버리면 안 된다.’는 것으로 나뉘었다. 교사는 다음 질문을 한다.      


“그럼, 기름을 분리해내느라 쓴 기름 묻은 키친 타월은 어떻게 해야 할까?”  

   

아이들은 ‘쓰레기통에 버린다.’ 외에 다른 방안을 찾지 못했다. 교사는 다시 묻는다.  

   

“실제 태안에서 사용했던 흡착포랑 드럼통에 쏟아부은 기름은 그 후에 어떻게 되었을까?”    

 

수거된 원유는 정화작용을 거쳐 일부는 윤활유 등으로 쓰일 수도 있다. 그러나 폐흡착포는 소각이 되거나 땅에 묻힐 것이다. 당장 눈에 보이지 않지만 토양 오염과 대기 오염의 2차 피해가 예상되는 지점이다.  
 

바다를 살려내면 끝인 줄 알았던 수업의 과제에서 우리는 또 다른 문제 상황에 봉착한다. 교사는 이때 속으로 성공했다고 외쳤다. 그가 수업에서 궁극적으로 도달하고자 한 지점, 아이들에게 주고자 한 바는 바로 이것이었다.    

  

마음속에 문제를 안겨 주는 것.   



4. 정리하기      


실험에서 기름을 제거하기 위해 쓴 다양한 방법 중 어느 것도 완벽하게 기름을 제거하지 못했다. 바닷물의 기름은 혼합물의 분리 원리에 따라 제거할 수는 있지만, 완벽히 제거하는 데는 시간이 오래 걸린다. 그동안 생태계는 계속 파괴될 것이며, 그 피해는 인간에게 고스란히 전해진다. 따라서 바다가 오염되지 않도록 주의하고 예방하는 것이 최우선임을 깨닫는다. 하지만 기름 유출만이 바다를 오염시킬까? 우리의 생활 습관이 바다를 비롯한 환경을 오염시키고 있지 않은지도 돌아봐야 한다. 일상생활에서 꾸준히 환경을 보호하는 습관을 실천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결론에 도달하며 수업은 마무리되었다.    


      

5. 돌아보기     


십 년도 더 된 과거의 지도안을 살펴보며 과거의 내가 얼마나 순수하고도 뜨겁던 사람인지를 발견한다. 그 열정이 오늘의 나를 만들었을 것이다. 조금은 식었지만,  여전히 신념을 간직한 조금 더 능숙한 교사로.


온라인 학습의 콘텐츠와 기술이 정점을 찍고 모든 지식이 검색하면 뚝딱 나오는 시대에, 학생 대부분이 학원에서 선행학습을 하는 기형적인 나라에서 '학교의 수업'과 '교사의 존재'는 무슨 의미일까. 

   

이 수업을 설계했던 과거의 나는 삶과 연결된 배움으로 그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고, 현재도 그렇게 생각한다. 대학에 가기 위한 삶과 목표점수에 도달하기 위한 배움이 아니다. 우리에게 당면한 문제를 수업으로 끌어오며 피부로 느끼는 것이 필요하다. 지금 당장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고 하여도 문제를 가슴에 품고 해결하고자 하는 의지와 용기를 경험하게 해야 하는 것이다.      


이 수업으로 인해 그때의 아이들이 여전히 바다를 구출해내고 환경을 보호해야 한다는 의지로 불타고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이러한 수업을 경험한 아이들은 무의식의 어느 한구석에 그때 느꼈을 의지와 용기를 내면화하고 있다고 믿는다.    

  

배움은 과거의 삶과 연결되기도 하고 미래의 삶에 불현듯 연결되기도 한다. 그러니 아이들의 마음에 실마리를 심는 것이다. 그것이 언젠가의 삶과 연결되어 깨달음과 실천으로 꽃피우기를 바라면서 그런 연결의 실마리를 심는 것이 선생님(先生님, 먼저 살아 본 사람)의 의미이다.      


이 수업에 초대된 당신에게 묻는다.


당신의 삶에 이 수업은 어떻게 연결되었는가? 

당신은 어떤 결론에 도달하게 되었는가? 

어떤 문제를 가슴에 품게 되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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