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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나온 Sep 05. 2024

freeway


freeway    


      

 아침 6시 반. 아직 곤히 자고 있는 아이의 엉덩이를 투닥인다. 팔과 다리를 꾹꾹 눌러 의식을 깨운 다음 말랑하고 쫀득한 아이의 몸을 품에 꽉 안는다. 아이를 깨우기 위해서가 아니다. 하루를 시작하는 나를 위해 아이의 달큰한 몸 내음을 한껏 마시는 것이다. 그다음은 끙 소리를 내며 아이를 들어 안아 식탁에 앉혀놓는다. 잠이 덜 깬 채 칭얼대는 아이의 입에 아침밥 한 숟가락을 떠먹이면 아이는 눈도 채 못 뜬 채로 오물오물, 오물오물하다 꿀떡 삼키는 것이다. 그 한 술이 넘어갈 때 해에서 나오는 빛이 아이의 몸으로 들어간다. 아이는 다음 숟가락을 먹기 위해 눈을 뜨고 아침을 맞이한다. 


 그날 아침은 예약 취사를 눌러 놓은 밥솥이 말썽을 부려 아침 준비가 늦어져 버렸다. 그래서 30분이나 늦은 7시에 아이를 업어다 식탁에 앉혀 놓았다. 시간은 없고, 마음은 조급한데 밥을 먹어야 할 아이가 웅얼대며 말한다. 

     

“엄마, 이리 와 봐~”

“왜~ 엄마 지금 엄청 늦었는데.”

“으응~ 엄마에게 보여 줄 게 있는데.”   

  

 아이가 어린이집 가방에서 조그마한 무언가를 꺼낸다. 새 모양의 도자기 피리였다. 그 작고 귀여운 것을 손에 쥐고 웃고 있는 더 귀여운 얼굴에 바쁜 마음이 무장해제 되었다. 피리에 물을 받고서는 기다란 주둥이에 입을 댄다. 조그만 손가락이 꼬물꼬물 움직이자 호로록 호로록 고운 새소리가 났다. 이럴 땐 늑장을 부린다고 핀잔줄 일이 아니다. 아이가 살고 있는 시간은 무한이다. 그러니 어찌 내가 가진 시간이 가난하다고 재촉할 수 있겠는가. 물새피리 소리가 들리는 아침. 이럴 땐 까짓거 나의 시간도 그냥 멈춰 버릴 일이다.      




 나는 매일 안양에서 인천으로 고속도로를 통해 출근을 한다. 일곱 살 아이는 남편의 직장 근처인 부천으로 어린이집을 다닌다. 등원은 아빠와 함께, 하원은 엄마와 함께. 아이도 고속도로를 통해 등 하원을 한다. 


 출근길 고속도로 진입로는 밀리기 마련이다. 이미 이 시간의 느린 속도에 익숙한지라 맘이 그다지 조급하지는 않다. 꽉 막힌 차량의 행렬이 끼어들기를 하며 세 줄에서 두 줄이 되고, 두 줄에서 한 줄이 되는 것. 이럴 땐 시간의 수량이 점점 작아져 0으로 수렴하는 상상을 해본다. 그럼 시간이 멈추고 순간이 되는 지점에 다다르게 된다. 속력을 구하는 공식은 거리 나누기 시간. 시간의 값은 0에 가까워지는데 끈기 있게 앞으로 나아가는 우리의 이동 거리는 계속 늘어난다. 그럼 우리의 속도는 무한대에 가까워질 것이다. 기분이 한결 자유롭다. 


 고속도로에 진입해서도 정체는 계속된다. 고속도로라는 이름 위의 이 느린 속도는 참으로 부조리하다. 그러니 이 시간의 이 장소는 고속도로라 부르지 말고 ‘freeway’라 부르자. 시간을 0으로 두고 마음껏 사유의 자유를 누릴 수 있는 ‘자유의 길’이 더 적합한 이름일 것이다.




 천천히 앞으로 전진하는 행렬은 광명 터널로 향한다. 나는 터널의 얼굴에 관심이 많다. 검은 입을 아- 벌리고 있는 터널의 얼굴은 매일 조금씩 변하고 있다. 그 얼굴이 겨울엔 어두죽죽한 회색이었다면 점차 여리여리한 연두가 되더니 금방 짙은 녹색으로 변했다.    

  

 벚꽃이 서둘러 지고 녹음이 짙어지던 어느 날, 어두운 터널의 얼굴에서 하얀 꽃송이가 핀 것을 발견했다. 그 순간이 얼마나 반갑던지 창문을 내리고 함께 멈춰 서 있는 옆 차의 운전자에게 “저거 보이세요? 하얀 꽃송이가 피었어요!”라고 말하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처음엔 한둘 하얀 나무가 보였는데 하루하루 지날수록 뭉텅이로 피어났다. 아주 빠르게 피어나는 뭉게구름. 왠지 모르게 마음이 울렁였다. 부족한 잠으로 흐렸던 정신이 깨어난다. 꽃이 외치고 있었다. 나도 꽃나무였노라고. 아까시나무였다.      


 특별한 시공간에서만 느낄 수 있는 감각이 있다. 향기는 눈에 보이며, 함성은 멀리서도 와 귀에 닿는다. 멈춘 듯 느린 시공간에 아까시나무의 향기가 스며들어 차 안은 하얀 향기가 가득 진동한다. 아까시나무 일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시간. 벚꽃도 진달래도 지금은 아까시나무의 시간임을 알기에 무대를 양보했다. 아까시나무는 주인공이 되어 파도를 타듯 함성을 지른다. 자신의 순서가 왔을 때, 때를 놓치지 않고 한 아름 치열하게 피는 것이다. 

     

 언젠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아이가 싱긋 웃으며 내게 문제를 냈다. 


 “엄마, 산의 생일은 몇 월 며칠이게?”  

   

 나는 대지의 탄생 순간을 더듬었다. 산의 생일은 화산이 폭발하고 산맥이 솟아오르던 그날일까, 별들이 폭발하고 충돌하다 서로 뭉쳐 행성을 탄생시킨 그날일까. 아니면 대지의 여신 가이아가 탄생하던 순간이라고 해야 할까? 시간이 존재하지도 않았을 것 같은 그날을 몇 월 며칠이라고 해야 할까.  

    

“글쎄? 모르겠는데?”

“헤헤, 4월 5일이야. 그날은 식목일이니까.” 

     

 그래. 땅이 산으로 태어나려면 나무가 필요한 거구나. 그 얘기를 나누던 날은 식목일 즈음이었다. 우리는 집으로 돌아가는 고속도로에서 산에게 생일 축하 노래를 몇 번이고 불러주었다.   

 

 6.25 전쟁 이후 황폐해진 산을 복구하기 위해 정부는 자라는 속도가 빠른 나무를 심어야 했다. 한때 일제의 잔재라 오해를 받기도 했던 억울한 나무. 심지어 아프리카에서나 볼 수 있는 ‘아카시아’라는 다른 존재의 이름으로 불리는 이 하얀 꽃나무의 진짜 이름은 ‘아까시나무’이다. 제 이름으로 제대로 불리지도 못하는 이 나무는 척박한 황무지에서도 빠르게 잘 자라는 우직함이 있다. 그래서 녹화사업을 위해 마을의 과수원 길은 물론 국토의 산과 들 곳곳에 대량으로 심어졌다. 그러니 산의 생일이 언제인지는 논란이 있을지언정 아까시나무의 생일은 분명히 4월 5일이 맞다.      


  하루를 보내고 어린이집에서 아이를 픽업하여 집으로 가고 있다. 아까시나무는 아침보다도 더 많이 핀 느낌이다. 하루가 다르게 번져가는 저 흰색은 본래 잎의 짙은 녹색과 어우러져 마냥 희지만은 않다. 아래로, 아래로 폭포처럼 쏟아져 내리는 흰색. 이 색을 묘사할 합당한 언어를 찾고 싶지만, 나에겐 도무지 방법이 없었다.      

“산이 점점 하얗게 변하는데, 엄마는 저 색깔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어.”

“으응, 산에 크림을 부어 놓은 것 같다고 해. 맨날 맨날 숟가락으로 산에다 크림을 듬뿍 떠서 뿌리는 거야.”

“와아, 그러네! 정말 그러네!"    


가끔 아이에겐 언어의 정령이 들어왔다 나가는 것 같다. 그 정령은 어른보다도 아이와 사이가 좋은 것이 분명하다.  

 

“크림을 점점 많이 뿌리는 것 같아. 저 크림은 맛이 어떨까?”

“으응, 달콤하겠지. 꿀처럼 달콤하겠지? 으헤헤헤. 그럼 저 산에 올라가면 달콤한 크림 폭포가 있겠다.”

“아이고 그렇겠네! 정말 그렇겠네! 그럼 그 폭포 아래에 앉아 있어야겠다. 하하하”

“수영은 못 할걸? 발이 크림 속에 푹푹 빠져 버릴 거야. 으헤헤헤”     


  차는 뻥 뚫린 도로를 시원하게 달리고 있다. 고속도로가 고속도로다운 속도를 가지고 있으니 제 이름값을 하고 있는 셈이지만, 이렇게 아름다운 상상이 자유롭게 오가니 이 길 역시 고속도로라 부르기보다는 ‘freeway’라 부르자. 시간을 0으로 수렴하고 아름다운 상상이 지속되는 거리를 늘이자. 그럼 나는 마법과 같은 행복이 아주 빠른 속도로 달려와 내게 한 아름 안기는 것을 느낄 수 있다. 0으로 수렴한 찰나의 순간이 영원하게 기억될 것임을 확신할 수 있다.    


   

당신의 속도는 어떠한가. 

얼마의 시간을 써, 어느 방향으로, 얼마나 이동하는가. 

앞으로 나가지 못하여 답답할 때, 당신에게도 크림처럼 달콤한 아까시 폭포가 떨어지길. 

당신에게도 마법과 같은 ‘freeway’가 펼쳐지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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