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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나온 Oct 03. 2024

#2. 벌겋게 불타오른다.

참을 수 없이 가벼워 다행인 것 #2

-1편에서 이어집니다.



참을 수 없이 가벼워 다행인 것     


2. 벌겋게 불타오른다.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뒤 사흘 만에 부활했다. 부활초에 불이 켜지고 부활절 미사가 시작했다. 나는 반주자의 임무를 다하느라 예수의 인류 구원을 기뻐하는 성가를 연주했다. 환희에 차 ‘알렐루야’를 외치는 사람들의 노래와 나 사이에는 천국과 지옥 사이에 있는 건너지 못할 강이 흐르는 듯했다. 손가락은 아름다운 성가를 연주하는 것 같지만 실상은 그 강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던 것이다. 


사제와 복사들이 입장하는 중에도 나는 두 아들이 성당에 왔는지를 살피고 있었다. 둘째는 왔는데 첫째가 보이지 않았다.      

‘왜 아직도 안 온 거야? 집에서 출발은 했으려나?’     

그때 성당 뒤편에서 문을 열고 들어오는 첫째가 보였다. 다행이라는 안도의 마음과 함께, 왜 이리 늦었는지 책망의 마음이 동시에 들었다. 그런데 이 녀석이 늦게 온 주제에 성당 맨 앞에 있는 나를 주시하며 뚜벅뚜벅 걸어오는 것이다. 미사에 대한 경건한 마음도, 여러 사람이 있는 곳에서 지켜야 할 정숙함과 예의도 없이 그는 입당 성가를 치고 있는 나에게 와 당당히 손을 내밀었다.      

"엄마, 봉헌금 줘야지."     

뭐라고? 봉헌금을 달라고? 지금 네 어미는 두 손으로 오르간을 치고 있는데 연주를 멈추고 돈을 꺼내 주리? 너는 눈치가 없니? 지금 사람들이 우리를 보고 있잖아. 썩 꺼져버려! 라는 말을 차마 할 수는 없었다. 대신 있는 힘껏 눈을 부라리며 저기 가서 앉으라는 표현을 온 얼굴로 말했다. 다행히 알아들었는지 그는 빈자리에 가서 앉았다. 걱정과 미안함이 쌓이던 마음에 아직 가시지 않은 분노와 새로운 분노가 뒤섞였다. 이런 불온한 감정으로 부활을 연주하다니. 오, 주여. 저를 용서하소서. 사람들이 참회의 기도로 ‘내 탓이오. 내 탓이오. 내 큰 탓이로소이다.’를 외쳤다. 나는 어느 때보다도 있는 힘껏 가슴을 내리쳤다.      

말씀의 전례가 시작됐다. 성경 말씀은 귀에 하나도 들어오지 않고 눈은 자꾸 첫째를 찾고 있었다. 그는 친구와 떠들고 있다. 기가 차서 헛웃음이 나왔다. 내 기분은 엉망진창인데 어떻게 웃고 떠들 수가 있지? 아냐, 그럴 수 있지. 그냥 어린애잖아. 그래도 그렇지. 미사 시간에? 그것도 부활 대축일 마사에? 아냐, 그냥 어린애잖아. 부활 미사가 대축일인지 뭔지 알 턱이 없겠지. 아니 5학년이나 되었는데 그걸 모른다고? 그렇지. 내 잘못이지. 내가 가르치지 못한 거야. 오늘 미사가 끝나자마자 알려주자. 어휴.      

그런데 이상하다. 정적이 흐르고 있었다. 어? 신부님은 팔을 벌리고 멈춰 계신다. 지금 이게 무슨 상황이지? 반주해야 하는 타이밍인가? 나는 얼른 다음 곡의 반주를 쳤다. 그런데 신부님의 눈썹이 움찔거리며 찌그러지는 것이다. 앗 지금 치는 게 아닌가 보다. 얼른 치던 반주를 멈추었다. 그러자 다시 정적이 흘렀다! 아, 어떡해. 지금 치는 거였나 봐. 나는 다시 반주를 치기 시작했다. 그런데 다시 신부님 눈썹이 움찔거린다. 악! 역시 지금 치는 게 아닌가 봐. 나는 다시 반주를 멈추었다. 그런데 또다시 무서운 정적이 흐른다. 식은땀이 흐른다. 지금 무슨 상황이지? 이 곡이 아닌가? 그때 누군가 성가를 부르기 시작했다. 무반주로 사람들이 내가 치려던 곡을 부르기 시작한다. 아……. 최악이다. 

뒤늦게 사람들의 노래에 맞춰 반주했다. 얼굴이 벌겋게 불타올랐다.      


-내일 3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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