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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나온 Oct 02. 2024

#1. 내 입을 막고 산소의 공급을 막아줘

참을 수 없이 가벼워 다행인 것 #1

참을 수 없이 가벼워 다행인 것   

  

1. 내 입을 막고 산소의 공급을 막아줘  

   

드라이기를 켜고 머리를 말리면서 신경질적인 울음소리를 묵묵히 들었다. 소리를 꽥 지르고 싶은 것을 참았다. 성당으로 출발해야 할 시간이 임박했는데 죄를 짓고 싶지는 않았다. 지난주 부활 판공성사에서 “아들한테 소리를 질렀습니다.”라고 고백했는데 이번 주에 가서 또다시 “고해한 지 일주일이 되었습니다. 아들한테 소리를 질렀습니다.”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참자. 오늘은 부활절이다. 나는 참을 수 있다. 머리만 말리고 가서 잘 달래주자.      

둘째가 드러누워 통곡하는 것은 첫째가 격투기 놀이를 하자고 툭툭 쳤기 때문이다. 첫째가 칠 때 둘째는 치지 말라고 웃으며 얘기했다. 그러나 첫째는 예전에도 그렇게 툭툭 치고 재밌다며 격투기 놀이를 한 적이 있었던 터라, 웃으며 말하는 둘째의 말을 어느 정도 긍정의 의미로 받아들였다. 그래서 같이 놀자며 계속 둘째를 툭툭 친 것이다. 둘째는 찡얼대며 "하지 말라고~"를 반복했다. 그 소리를 계속 듣고 있자니, 머리를 말리던 나의 짜증 지수는 점점 높아갔다. 그래도 성당에 늦었으니 우선 머리는 말려야 해. 얼른 말리고 가서 잘 화해 시키자. 내가 그런 생각을 하는 동안 둘째는 추가로 서너 번을 더 맞았고, 결국엔 울며불며 난리를 치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둘째가 다 개어 놓은 첫째의 옷을 발로 찬 것은 고의가 아니었다. 그냥 발버둥 치며 울다 보니 실수로 찬 것이었다. 그러나 첫째는 그것을 실수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내가 장난 좀 쳤다고 네가 감히 내 옷을 발로 차?”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래서 첫째도 둘째의 옷들을 힘껏 뻥 차 버렸다.      

그래, 지금 머리를 말릴 때가 아니구나. 나가자. 나가서 점점 나빠지는 이 상황을 멈추게 해야 한다.      

안방 문을 열고 거실로 나갔다. 눈앞에서 빨래가 걸레짝처럼 날아다녔다. 머리카락에서 물을 뚝뚝 흘리며 엄마가 거실로 나왔는데도 그들은 빨래를 차며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부활절 예수의 희생과 사랑은 온데간데없고 헝클어진 옷가지들이 서로에 대한 비난과 증오를 증명했다. 나는 인내심의 끈이 툭 끊어지고 말았다.      

“그, 만, 해!!!!!”     

서로를 노려보며 아직도 씩씩대는 그들을 보니 열불이 났다. 이게 뭐 하는 거냐고 묻자, 그들은 서로 남 탓만 했다. 너희가 불난 집에 부채질도 하고 기름도 붓는구나. 더 크게 분노하여 그들의 듣기 싫은 언쟁을 눌러 버리겠다는 듯, 미친 듯이 화를 퍼붓기 시작했다. 마치 포효하는 용이 입으로 불을 뿜어내는 것처럼.      

아이들은 놀라 싸움을 멈추었다. 하지만 나는 멈추지 못했다. 멈춰야 한다는 생각이 스칠 때 분노가 멈춰지면 얼마나 좋겠는가. 불을 내뿜으면서 6학년 2학기 과학 시간에 배우는 소화의 조건에 대해 생각했다. 불을 끄려면 탈 물질을 없애거나, 산소의 공급을 막거나, 발화점 아래로 온도를 낮춰야 한다. 누군가 내게 난 불을 끄기 위해 어떤 조처를 해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내게는 타오를 분노가 충분했고, 내 온도는 뜨겁게 달궈져 있다. 방법은 하나뿐이었다.     

‘내 입을 막고 산소의 공급을 막아줘!’     

하지만 내 입을 막아줄 사람은 없었다. 부모는 모름지기 지구에 하염없이 따뜻한 빛과 온기를 주는 태양 같아야 한다. 그런데 그 태양이 분노로 가득 차면 자신이 가진 힘으로 자녀를 태워 버린다. 심지어 분노의 태양은 자기 자신도 태운다. 두 아들은 날뛰는 나를 바라보며 숨도 잘 쉬지 못한 채 쪼그라들고 있었으며 나는 내 내장이 벌겋게 타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엄마는 성당에 먼저 갈 거야! 너희는 알아서 와!!”     

현관문을 쾅 닫고 집을 나왔다. 발걸음이 무거웠다. 참패를 인정하자 비참함이 몰려왔다.


-내일 2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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