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나르 뷔페의 광대와 해골을 떠올리며
우리 집 아이들은 발도르프학교에 다닌다. 발도르프학교의 특별한 교육과정이 여러 가지인데 그중 하나는 5학년 때 서커스를 배운다는 것이다.
4년 전, 첫째가 입학한 첫해의 발표회 때, 5학년 아이들의 서커스 공연을 처음 보았다. 열두 살 아이들이 외발자전거를 타며 저글링을 하는 모습을 본 경이로운 순간의 충격을 잊을 수가 없다. 몇 번을 놀라며 감탄했는지 모른다. 공연이 끝난 후에도 둥글게 돌아가던 공들의 잔상이 계속 떠올랐다. 5학년이 되면 저런 묘기를 할 수 있게 되는구나. 내 아이가 무대 위에서 신묘한 공연을 하는 모습은 얼마나 멋질까. 정말 감동적인 순간일 거야.
아이는 어느덧 5학년이 되었다. 여름이 짙어지던 어느 저녁 식탁에서 아들이 말했다.
“엄마, 근데 있잖아. 체육 선생님이, 우리는 저글링 발표회를 못 할 수도 있대.”
“어? 아니 왜?”
“너무 못해서.”
순간 숨이 덜컥 막혔다. 매해 5학년 아이들은 저글링 공연을 해왔다. 그런데 우리 아이들은 무대에 오를 수 없다니. 수저를 식탁에 탁 내려놓으며 외쳤다.
“아니, 그럼, 연습해야지!”
식탁 정리도 하지 않은 채 저글링 연습이 시작되었다. 아들은 입술에 침을 바르고 공 세 개를 만지작거린다. 빨리 시작하라는 재촉에 공 하나가 공중으로 떠올랐다. 이어서 두 번째 공과 세 번째 공도 공중을 가로질렀다. 낙하하는 공을 하나 잡아내어 기쁜 것도 찰나, 나머지 공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날아가 제대로 잡지 못하고 바닥에 떨어지고 말았다. 지켜보던 내 입에서는 실망한 한숨이 흘러나왔다.
그다음 날도, 또 그다음 날도 저글링을 시켰다. 아들은 실력도 안 되는데 연습하기를 싫어한다. 노력도 안 하면서 안된다고 짜증을 내니 얼마나 화가 치미던지. 꽥 소리 지르고 싶은 것을 꾹꾹 참았다. 다른 아이들 실력은 어떤지 궁금하여 알아보니 우리 아이만 답답한 것은 아니었다. 잘하는 아이들도 있지만 못 하는 아이도 많았다. 어떻게 해야 잘할 수 있는지를 모르니 가르치기도 어려웠다. 대책을 세워야 했다. 급기야 부모들이 의기투합했다. 엄마 아빠가 체육 선생님께 저글링을 배워 아이들을 연습시키기로 한 것이다.
열정 가득한 부모들의 의뢰에 체육 선생님은 감사하게도 시간을 내주셨다. 맞벌이나 육아 때문에 모두 가능한 날을 잡기가 어려워 강의는 평일 저녁과 주말 낮으로 두 번 열어두고 시간이 가능한 때에 참석하기로 했다. 나는 빨리 배워서 빨리 연습시키고 싶은 마음에 첫 번째 강의에 참석하기로 했다.
월요일 저녁 7시. 대부분 마흔을 넘긴 나이 먹은 학생들이 학교 강당에 모였다. 선생님은 본격적인 저글링 수업에 앞서 5학년 아이들이 배우는 서커스에 대해 대략 설명해 주셨다. 5학년 이전에는 즐거운 놀이로서 다양한 신체활동을 하며 몸의 기능을 신장시키고 5학년에는 몸의 균형있는 발달과 리듬을 익히기 위해 서커스를 배운다고 한다. 외발자전거, 저글링, 디아블로, 접시돌리기, 밸런스 보드 등 아이들이 배우는 다양한 서커스 기구들을 보여주셨다. 이 중 아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저글링이라고 한다. 몸의 균형감과 리듬감이 모두 잘 갖추어져 있어야 할 수 있는데, 어릴 때 충분한 움직임을 갖지 못한 아이들일수록 원시반사가 남아있거나 신체에 제약이 있어 저글링을 어려워한다고 했다.
선생님이 먼저 시범을 보여주셨다. 우아하게 던져진 공들이 공중에서 매끄럽게 이동했다. 공들이 서로를 교차하며 유려하게 돌아오고, 손끝에서 다시 잡히는 순간이 반복되었다. 원을 그리며 오르고 내리는 모습이 고요한 우주 속에서 행성이 회전하는 모습과도 같았다. 그 행성을 움직이게 하는 저글러는 공전의 중심에 있는 항성이 된다. 처음엔 세 개로, 다음엔 네 개와 다섯 개의 공까지 돌아갔다. 각자의 경로를 따라 정교하고 정확하게 흘러가던 공이 순서대로 선생님의 두 손에 안착하자 감탄의 환호성이 터졌다. 선생님은 쑥스러운 듯 웃으며 말했다.
“보통 어른들은 한 시간만 집중해서 연습하면 거의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도 다 하실 수 있어요. 이제 각자 연습을 시작해 보시지요.”
그래, 한 시간만 집중하면 되는구나. 자신감이 생겼다. 좋아, 해보자고! 부모들은 집중하여 공을 던지고 잡는 연습을 하기 시작했다. 옆에서 연이 엄마가 시작부터 월등한 실력으로 주변을 놀라게 한다. 어쩜 이리 잘하냐고 묻자, 집에서 연습을 해왔다고 한다. 이런 모범생 같으니라고. 부러움의 눈길을 건네며 사실은 나도 연습했는데 그리 안 되더라는 말은 속으로 삼켰다. 공은 너무 낮게 던져지거나 앞으로 뻗어나가 제대로 잡을 수 없었다. 몇 번이고 다시 시작하기 위해 떨어진 공을 주워야 했다. 집중하려 애쓰는 중에도 몸이 말을 듣지 않으니 당황스럽고 부끄럽다. 급기야 공 한 개를 같은 높이로 던지는 기초부터 연습하기로 했다. 선생님이 다가오시더니 친절히 안되는 이유를 설명해 주셨다.
“저글링은 잘 받는 게 아니라 잘던지는 거예요.”
“손가락을 잘 펴는 게 중요해요. 손가락이 한 번에 쫙 펴지지 않으면 공이 위로 가지 않고 앞으로 나가요.”
“급하게 받으려고 하지 말고 더 천천히. 리듬이 너무 급해요. 더 천천히.”
월요일은 영 진전이 없었다. 이렇게 끝낼 수 없다고 생각한 나는 일요일 수업에도 나갔다. 리듬을 느끼려고 노력했다. 공 한 개를 충분히 연습하니 두 개로 던지고 받는 것으로 발전했고 드디어 세 개로도 연습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발전했다는 기쁨을 느끼기에는 주변 사람들의 발전이 너무 컸다. 내 손끝을 떠난 공들은 여전히 대여섯 번 솟아오르다 엉뚱한 방향으로 튕기기 일쑤였는데 스무 번이고 서른 번도 돌리는 사람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떨어진 공을 주워 몸을 일으킬 때마다 “내가 이걸 해낼 수 있을까?”하는 물음이 몸속에 스몄다. 이마에서 땀이 흐르는데도 몸은 차갑게 얼어붙는 느낌이었다.
잠시 연습을 멈추고 두 손을 들여다보았다. 내 몸은 자유롭지 못하구나. 돌처럼 굳어 삐그덕대고 있잖아. 침을 꼴깍 삼키고 주변을 돌아보았다. 다들 나름의 속도로 열심히 공을 돌리고 있다. 나보다 못하는 이는 없는 것 같다.
탄생에서 시작해서 죽음에서 끝나는 선분이 있다. 우리는 그 선분 위에 나란히 위치한 점들이다. 누구나 시간이 흐를수록 죽음에 가까워진다. 죽음에 가까워질수록 생기가 빠져나가고 돌처럼 굳어진다. 내 몸이 굳어있고 삐그덕대는 것을 보니 나는 저들보다 죽음에 더 가까이 있는 것이 분명하다. 그때 내게 휘몰아친 것은 한계를 느낀 좌절감이었을까? 비교에서 오는 패배감이었을까? 죽음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두려움이었을까.
수업을 마칠 때, 주주네 아빠는 공을 능숙하게 돌릴 수 있게 되어서 점점 기분이 고조되고 쾌감을 느꼈다고 했다. 이참에 열심히 연습해서 외발자전거도 타며 저글링을 해 보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진이네 엄마도 눈에 띄는 발전을 했다. 덕분에 머리가 맑아진 것 같다고 한다. 아주 재미있는 놀거리가 생겨 기분이 좋다고도 한다. 그런데 나는 한 시간 반을 쉬지 않고 연습했음에도 성공하지 못했다. 분명 보통 어른은 한 시간이면 잘할 수 있다고 하셨다. 나는 보통 어른이 아니었다. 의지를 다지고 꾸준히 연습하면 누구나 할 수 있다는 선생님의 격려가 위로가 되지 못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내내 아들을 생각했다. 직접 해 보니 나를 닮아서 잘하지 못했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잘 안되니 연습도 하기 싫었을 마음이 이해되었다.
떠오르는 그림이 있어 집에 돌아오자마자 도록을 찾아 펼쳤다. 베르나르 뷔페의 그림이다. 뷔페는 일생 서커스와 광대 그림을 꾸준히 그렸다. 때론 익살스럽고 천진난만하며 때로는 광기 어린 모습의 광대, 무표정한 모습이거나 매우 비참한 표정의 광대들도 있다. 광대의 눈동자들은나의 내면을 강렬하게 꿰뚫어 보고 있었다. 남과 비교하며 안절부절못했던 나를 알고 있다는 표정으로.
페이지를 더 뒤로 넘겨 해골 시리즈를 찾는다. 뷔페가 파킨슨병으로 더 이상 그림을 그릴 수 없을 지경이 되자 죽음을 주제로 그리기 시작한 25점의 연작들이다.
저글링을 하며 몸이 돌처럼 굳어가던 느낌을 다시 떠올렸다. 오직 그림을 그리기 위해 살았던 화가에게 손이 떨리고 근육이 굳어가는 병은 얼마나 절망스러웠을까. 그러나 뷔페의 해골은 화려한 의상을 차려입고 당당하게 웃는다. 그들은 죽음을 두려워하기는커녕 관객의 불안과 두려움을 실컷 비웃는다.
드디어 보고 싶던 작품을 찾았다.
작품 이름은 ‘죽음-죽음 15 (La mort-La mort 15, 1999)’이다. 그는 어깨를 펴고 머리에 화려한 고깔을 쓰고 있으며 당당히 허리에 손을 올리고 있다. 사지는 죽음이 드리워 뼈밖에 없음에도 벅차게 부푼 가슴을 자랑하고 있으며 복부에는 펄떡이는 장기와 붉은 혈관을 드러내고 있다. 까마귀와 붉은 새가 죽음을 몰고 날아왔지만, 그는 다리를 벌리고 서서 당당한 눈빛으로 죽음을 응시한다. 그리고 씩 웃으며 시원하게 오줌을 갈기는 것이다. 그림에서 두려움은 찾아볼 수 없다. 그는 정말 무섭지 않았을까?
주변의 말과 시선에 불안해하지 않고, 선행학습과 사교육으로 아이를 훼손시키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대안학교를 선택했었다. 현재를 행복하게 살자는 용기로 대안학교를 택했는데 무엇을 불안해하며 무엇을 두려워했던 것일까. 그저 아이의 속도를 존중하고 믿어주면 되었을 것을.
그 후로 며칠이 지났다. 나는 여전히 저글링을 연습하며 좌절하고 있는데 아들이 학교에서 돌아와 가방을 내던지며 외쳤다.
“엄마! 나 오늘 저글링 96개 했어! 신기록이야! 신기록!”
“뭐? 정말이야, 정말? 어머! 잘했다, 잘했어!”
우리는 얼싸안고 방방 뛰었다. 아들은 공 세 개를 꺼내 돌려대며 한껏 자랑스러운 표정을 지어 보인다. 어? 그런데 아들이 저글링 하는 모습을 보니 체육 선생님처럼 안정적이고 아름다운 자세는 아니다. 방향이 틀어진 것이 삐그덕거리고 기이하다. 이 자세로 계속 연습해도 되나 싶다. 하지만 싱그럽게 웃으며 보조개가 푹 팬 강아지 같은 얼굴을 보니 불안이 확 가신다.
나는 내게 스몄던 돌덩이 같은 죽음의 기운에서 고개를 돌리며 아들에게 베르나르의 웃음을 지어 보였다.
결국 해냈구나.
씨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