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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나온 Oct 04. 2024

#3. 까맣게 타버린 재

참을 수 없이 가벼워 다행인 것 #3

-2편에서 이어집니다.


<참을 수 없이 가벼워 다행인 것>


3. 까맣게 타버린 재 

    

영성체가 시작되었다. 나는 무너진 정신을 챙겨 영성체 성가를 연주하고 있었다. 이제 아들을 보지 않으리라. 미사에 집중해야 한다고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당연한 사실이지만 오르간 반주자는 성체를 모실 때 반주하지 못한다. 그래서 성체 성가가 시작하기 전에 미리 성체를 모시거나, 반주 도중 잠깐 연주를 멈추고 성체를 받아 모신다.      

나는 아들에게 불을 뿜어낸 것도 모자라 미사 내내 잡념에 휩싸여 있었던지라 성체를 모시지 못하겠다고 생각한다. 내가 평소와 다르게 미리 성체 모실 준비를 하지 않자, 신부님과 수녀님이 의아해하는 표정을 지었다. 네, 저 지난주에 판공성사 봤는데요, 조금 전에 죄를 지어 성체를 모시지 못해요. 라는 말을 표정으로 말하며 성가 반주를 시작했다.      

부활절이라 더욱 사람이 많았다. 4절짜리 노래를 세 번은 친 것 같다. 그때 아들이 보였다. 이 녀석이 버젓이 걸어 나와 성체를 모시는 것이다! 그러더니 심지어 나와 눈이 마주치고 씽긋 웃는다. 어? 이…… 이게 무슨 상황이지? 그렇게 동생이랑 난리 난리 개싸움을 하고도 성체를 모셨다고? 머릿속이 다시 새하얘졌다. 악보가 눈에 보이지 않았다. 아뿔싸. 그만 반주의 코드를 놓치고 말았다. 불협화음에 사람들이 깜짝 놀랐다. 두 눈을 질끈 감았다 다시 뜨고, 손가락은 얼른 건반의 제자리를 찾아 연주하기 시작했다. 아, 그런데 문제가 또 생겼다. 모든 사람이 성체를 다 모셨는데 성가를 또 시작한 것이다. 울고 싶었다.


모든 사람의 성체 분배를 마친 뒤 신부님이 내게 걸어오신다. 아……. 오지 마셔요. 나에게 성체를 내미신다. 죄인은 반주를 멈추지 못하고 찌그러진 표정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신부님은 고개를 끄덕이고 제단으로 돌아가셨다.      

이제껏 미사 반주자의 가장 힘든 일이 매주 미사에 늦지 않고 참석해야 하는 것으로 생각했다. 그보다 더 힘든 일이 있음을 이제야 알게 되었다. 많은 이가 ‘아, 반주자가 죄를 지었는데 성사를 보지 못했군.’이라고 생각할 터였다. 반주자의 죄가 모두에게 오롯이 드러나는 순간, 나는 외쳤다. 주여, 제 잘못이 너무 커서 공개 처형을 하시는 겁니까.      

한 시간의 미사가 십 년처럼 길게 느껴졌다. 기진맥진해 성당 밖으로 나왔는데 두 아들은 이미 자전거를 타고 숑 집으로 가버린 후였다. 내리쬐는 태양이 뜨겁다. 까맣게 타버려 재가 된 나는 먼지처럼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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