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주라호(Khajuraho) 욕망과 관음증, 성과 속의 미학
개인적으로 누군가가 북인도로의 여행에 관해 조언을 구한다면 아그라, 바라나시, 카주라호는 반드시 방문해보아야 한다고 추천하고 싶다. 숭고하고 퇴폐적인 감각의 도시, 카마수트라의 도시, 그곳이 바로 카주라호이다.
조드푸르와 자이푸르에서의 도시 여행을 마치고 나는 우다이푸르를 거쳐 남쪽인 뭄바이 쪽으로 향할까 하는 고민을 잠시 했다. 하지만 한번 남쪽으로 내려가면 다시 북쪽으로 향하기란 경로가 매우 복잡할 것이라고 여겨졌다. 그래서 북인도 지역을 더 여행하기로 마음을 먹었고, 인도 서부 지역인 캘커타 쪽으로 경로를 정했다. 그리고 첫 번째로 향한 곳이 카주라호였다. 인도 대부분의 도시 여행이 그렇지만 카주라호로의 교통편은 특별히 좋지 않은 편에 속한다. 중간에 버스를 이용해야만 했는데, 버스 편이 많지도 않아서 숨 막히도록 많은 사람들이 버스에 탑승을 했다. 사람으로 가득 찬 버스를 보고 있노라면 쉽사리 버스에 올라 탈 마음은 생기지 않았다.
만일 지하철 1호선을 퇴근 시간에 타본 사람이라면 나는 이렇게 설명할 것이다. 지하철 1칸에 만 명이 들어선 느낌, 바로 그것이 인도의 기차여행이고, 버스여행이다. 발 디딜 틈이 하나도 없는데도 사람들은 계속 몰려들고 신기하게도 그 많은 사람이 다 탑승을 하며, 놀랍게도 그 많은 사람들이 바닥에 앉든 짐칸에 올라가 앉든, 매달려가든 어쨌든 간다. 그리고 그 발 디딜 틈도 없는 사람들 사이로 인도의 전통차인 짜이를 파는 사람들이 오고 간다. 인도에서의 여행은 모든 순간이 기이하다.
버스를 보면서 타야 할지 말아야 할지를 고민하고 있을 때 나는 그를 보았다. 그는 KFC 캔터키 프라이드 할아버지와 같은 모습이었다. 그는 넉넉한 체구의 뿔테 안경을 쓴 서양사람이었다. 그는 인도 사람들과 함께 버스 지붕에 올라 편안하게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인자한 웃음으로 나에게 손짓을 하고 있었다. 지붕으로 올라오라는 무언의 손짓이었다. 그렇다. 여긴 인도다. 인도에서는 6시간 이상 달리는 장거리 버스에도 사람이 매달려 간다. 버스의 뒤에도 그리고 심지어 버스 지붕에도 사람들이 올라가 앉는다. 인도에서는 되는 일도 없고 그렇다고 안 되는 일도 없다. 어떤 것을 상상해도 상상과는 다르다.
나는 쓸쓸한 눈빛으로 KFC 캔터키 프라이드 할아버지에게 "도저히 지붕에는 탈 수 없어요. 6시간이나 가야 하잖아요. 젠장!"이라고 말했다. 버스는 떠났고 그도 떠났다. 버스는 급정거를 하지 않았을까? 인자했던 그는 과연 목적지에 잘 도착했을까?
아마 공포영화의 공식을 대부분 사람들은 알고 있으리라 생각한다. 가지 말아야 할 곳, 하지 말아야 대사, 하지 말아야 할 행동. 그렇다. 나는 하지 말았어야 할 행동을 하고 말았다. 공포와 전율의 밤이 나를 찾아왔다. 그날은 카주라호에 도착했던 첫날밤이었다.
캔터키 할아버지를 뒤로 하고 나는 비교적 한가한 시간에 버스에 올라 카주라호로 향했다. 한 대의 버스를 이미 보낸 터인 데다 버스가 자주 있는 것도 아니라서 카주라호에 도착했을 때는 시간이 이미 늦은 터였다. 주변에 적당해 보이는 숙소를 잡았다. 시설과 가격을 보아 이제는 어느 정도 가격 흥정에도 익숙해져 있던 터였다. 방안은 꽤나 깨끗해 보였다. 숙소에 짐을 풀고 피로를 풀기 위해 샤워를 하기로 했다. 욕실은 단정했다. 하지만 불길하게도 한편에 정체불명의 플라스틱 욕실 바케스가 뒤집힌 채 놓여 있었다. 그렇다. 세상에는 만지지 말아야 할 물건이 존재한다. 뒤집지 말아야 할 물건도 존재한다.
하지만 나는 젊었었고 용기가 있었으며 호기심도 충분했었다. 그래서 그 바케스를 뒤집어 보고야 말았다. 그곳에는 정녕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정체와 그 숫자를 셀 수 없는 수많은 검은색 귀뚜라미들이 바케스에서 쏟아져 나왔다. 검은색의 수많은 귀뚜라미들이 이리 뛰고 저리 뛰고 게다가 날아다니고 있었다. 누군가 정성스럽게 고이고이 담아놓지 않고서야 이렇게 많은 수의 귀뚜라미들이 저 작은 플라스틱 바케스 안에서 튀어나올 이유가 없었다. 도대체 이렇게 많은 귀뚜라미라니! 욕망의 도시를 방문한 나에게 신이 내린 첫 번째 재앙이었다.
험악한 욕설을 외치면서 나는 욕실 밖으로 빠르게 튀어나왔고, 바로 가방을 들고 다른 숙소로 향했다. 지금도 눈을 감으면 그때 그 장면이 선명하게 떠오른다. 기억력에 상상력이 조금만 도움을 주면 그 끔찍했던 광경이 지금도 스멀스멀 어깨너머로 기어오르곤 한다.
중고등학생 시절 미용실에서 머리를 다듬기 위해 기다릴 때면, 대부분의 경우 테이블 위에는 각종 여성잡지들이 놓여 있곤 했다. 잡지 커버에는 간혹 '소녀경', '카마수트라'와 같은 자극적인 단어들과 함께 특집 기사 타이틀이 커다랗게 쓰여있곤 했다. 두근거리는 사춘기 청소년은 차마 잡지를 집어 들어서 펼쳐볼 용기는 없어서 그저 곁눈질로만 보면서 상상력을 발휘하곤 했다.
그런데 바로 여기 이 도시, 카주라호에는 사원의 벽면 가득 부조가 조각되어 있다. 이 조각들은 에로틱한 포즈와 카마수트라에나 나올법한 기묘한 성행위 모습들로 채워져 있다. 수많은 인간군상들 사이에 존재하는 노골적인 묘사는 벽면을 가득 채워내고, 그 앞에 서 있는 관람객은 호기심과 함께 누군가를 엿보는 시선을 경험할 수 있다. 다양한 성행위 체위와 심지어 수간 행위까지 묘사하고 있는 조각들을 보고 있노라면, 한편으로는 재현이라는 측면에서 현실보다 더 적나라한 현실을 보여준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인간의 불가해한 상상력 속에 숨겨진 성적인 욕망을 직시하게 된다. 상상 속에서 이 조각들은 멈춰 선 채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분명하게 움직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종교들이 욕망을 배제하거나 절제하려고 하지만 또 어떤 종교들은 性과 聖의 경계를 넘어 육체적인 쾌락을 통해 신과의 합일과 일치를 추구하기도 했다. 기이한 자세를 통해 몸 안의 소우주와 몸 밖의 대우주를 합일시키고자 하는 요가의 철학을 염두해본다면, 카마수트라는 또 다른 형태의 상상력의 시도이며 생명이 생명으로 살아내고자 했던 욕망에 대한 기록이기도 하다.
이와 같은 조각들에 대해 누군가는 자이나교의 금욕주의가 출산율 저하를 불러와서 당대의 왕들이 출산율 고취를 위해 이러한 조각들을 전시하게끔 했다고 설명하기도 하고, 또 다른 사람들은 인도의 탄트리즘의 영향을 받았다고도 이야기한다. 어쨌거나 기나긴 세월이 지난 후에도 이 조각들이 여전히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다는 점은 그만큼 에로티시즘은 인간 본연의 근원과 맞닿아 있다는 의미일 게다.
드라마도, 영화도, 소설도, 포르노그라피도, 예술도, 그 어떤 형태의 인간 정신의 생산물도 결국 관람객은 '엿보는 사람'이다. 엿보는 사람으로서 그는 해석하고 상상한다. 엿보는 사람이라서 자유롭고, 엿보는 사람이기 때문에 관능적이다. 곁눈질할 수밖에 없기에 욕망을 자극한다.
수많은 인간군상들 속에 늘어서 있는 성적인 묘사들은 처음에는 얼굴을 붉히게 만들지만, 이내 셀 수 없는 숫자에 압도되어 익숙해진다. 하지만 그 익숙해짐 속에서 눈에 띄는 무엇인가를 발견했을 때, 그것은 이전보다 더 관능적이다. 한적한 시골마을인 카주라호에 이토록 강열한 관능미가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도 모른다. 만일 도시 한가운데 전시되어 있다면, 사람들은 아마 미쳐버리지 않았을까? 도시는 욕망을 중심으로 흘러가는 곳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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