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미차르(Amritsar)
인도 북부지역 여행을 계획한다면, 카슈미르 지역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카슈미르 지역은 아름다운 자연 그리고 밤하늘의 별이 펼쳐내는 장관이 그 어느 곳과도 비교할 수 없다는 소문이 여행자들 사이에 가득했다. 그런 이유로 나도 카슈미르 지역 방문을 진지하게 고려해본 적이 있었다. 카슈미르 지역은 파키스탄과 인도의 오랜 분쟁 지역으로 무력 충돌이 빈번하게 일어나는 곳이기도 하다. 실제적인 위협이 존재하는 곳이라서 대부분의 외국 여행자들은 아무리 아름답다 하더라도 이 지역을 찾으려 하지 않는다. 하지만 한국 사람들은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다. 어쩌다가 벌어질지도 모를 일이 하필 나에게 벌어질 리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카슈미르 지방을 여행하는 몇 안되는 외국인들 중에는 한국 사람이 적지 않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나도 한국 사람이라 피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했지만, 그렇다고 반드시 방문할 이유도 없었다. 진지한 고민 끝에 암미차르(Amritsar)로 향하기로 했다. 더 북쪽으로는 카슈미르 지역을 제외하고서는 방문해보고 싶은 도시가 딱히 없었지만, 북쪽으로 향한 김에 도시 하나는 더 방문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생각에서였다.
보통은 오토릭샤를 이용하지만, 황금사원으로 향하는 길은 숙소에서 그리 멀지 않았기 때문에 릭샤를 타고 이동했다. 머리가 백발이었던 어르신이 앙상한 다리로 자전거 페달을 밟으면서 힘겹게 앞으로 나갔다. 편안하게 뒤에 앉아 있기에는 죄의식이 느껴졌지만, 이렇게라도 이용해주지 않으면 그 어르신은 오늘 빈손으로 돌아가야 할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알기에 먼 곳을 바라보면서 느린 속도에 몸을 맡겼다.
암미차르는 시크교의 성지로 유명한 황금사원이 자리를 잡고 있다. 시크교는 힌두교의 카스트제도를 부정하고, 여성에 대한 차별의 철폐를 주장하는, 인도 사람들 입장에서 본다면 꽤나 급진적인 종교운동이다. 구약성서에 등장하는 아브라함은 나그네를 환영하기 위해 동서남북 네 방향으로 자신의 천막에 출입구를 만들었다고 하는데, 황금사원 역시 평등과 관용의 상징으로 누구라도, 어디서라도 이곳을 찾을 수 있도록 네 방향의 출입구를 가지고 있다.
시크교의 정신은 카스트제도를 근간으로 하는 인도에서는 급진적인 생각이다. 인도의 카스트는 브라만, 크샤트리아, 바이샤, 수드라로 크게 나누어져 있지만 실제로는 더 많은 카스트 계급으로 분화되어 있다. 인도 사람들은 서로 처음 만나 소개를 할 때 자신이 속한 계급을 이름 뒤에 붙인다. "나는 수바스(이름) 크샤트리아(계급)입니다"와 같이 말이다. 상하 계급 간의 결혼은 엄격하게 금지되어 있고, 하급 계층과 결혼을 한 사람은 신분이 하락한다. 높은 계급의 사람들은 영혼이 순결하고 낮은 계급으로 갈수록 영혼의 카르마가 오염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상호 교류나 직접적인 접촉을 통해 영혼이 오염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높은 계급의 사람들이 자신보다 낮은 계급과 함께 앉아서 식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심지어 식기나 컵도 함께 사용하지 않는다.
그런데 가장 낮은 노예 계급인 수드라보다도 더 천박하게 여겨지는 사람들이 있다. 달리트 무사하르라고 불리는 불가촉천민들이다. '무사하르'라는 말은 쥐를 먹는 사람들이라는 뜻으로 이들에게 주어진 유일한 권리를 구걸할 권리뿐이다. 이들은 인간의 모습을 가진 동물로 취급된다. 약 50여 년 전만 하더라도 시바의 또 다른 모습인 칼리에게 인신공양의 제사가 드려졌었는데, 불가촉천민의 가족들에게 돈을 주고 사람을 사서 제물로 바치기도 했다고 한다. 이런 계급의 나라에서 평등과 관용을 부르짖는 종교인 시크교. 한국 사람들이 생각하는 평등과 그들이 바라보는 평등은 서로 다른 위상을 지니고 있는 단어일 것이다.
암미차르에 자리하고 있는 황금사원은 시크교의 설립정신에 따라 종교, 국적, 성별을 따지지 않고 무료로 식사와 숙소를 제공한다. 식판을 들고 기다리면 배식을 해준다고 하는데, 일반 시중에서 파는 인도 로컬 음식에 비교하면 꽤나 훌륭한 수준이라고 했다. 황금사원에서는 여행자들에게도 무료로 숙소를 제공해준다. 황금사원 내에서라면 어디서든 자유롭게 잘 수 있지만 황금사원 우측의 외국인 숙소인 구루드와라(Gurudwara)를 이용할 수 있다. 도미토리를 무료로 이용할 수 있고, 조금 더 시설이 좋은 숙소의 경우 저렴한 비용으로 이용이 가능하다. 여행 경비를 조금이라도 줄여야 하는 장기 여행자의 입장이라면, 부담 없이 체류가 가능한 황금사원에서 머무는 것이 가능하다.
황금사원은 인공 연못의 한가운데 위치해 있다. 이 사원을 둘러싸고 있는 연못은 갠지스강처럼 신성한 것으로 여겨져서 사람들이 목욕을 하기도 하고, 인근에서 기도를 드리기도 한다.
황금사원으로 들어서는 긴 다리 위에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인도에서는 여러 사원들을 방문하게 되는데, 사원에 들어서기 위해 몇 가지 규칙들을 지켜야 한다. 황금사원의 경우 ①두건으로 머리카락을 가릴 것 ②긴 바지를 입을 것 ③신발을 벗고 입구에 흐르는 물에 발을 씻고 맨발로 들어올 것 등과 같은 것이다. 반바지는 허용되지 않으며, 때로는 가죽제품들을 소지할 수 없다는 조건을 요구받기도 한다. 그래서 일부 사원 입구에는 신발이 도둑맞지 않도록 지켜주는 사람들이 있다. 가죽으로 된 신발을 벗어두고 들어가면 누군가가 훔쳐가는 일이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내가 부탁하지 않았는데도 내 신발을 자신이 지켜주었다면서 대가를 요구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이다.
머리를 가리는 것, 긴 바지를 입는 것, 신발을 벗는 것 등의 행위는 지금부터 들어서는 장소가 일상적인 곳과는 다르게 공간적으로 단절된 성스러운 곳이라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아마 하체를 가리는 것과 관련된 규정들은 신 앞에서 성기를 노출하는 것에 대한 규정일 것이다. 신발에 관한 규정은 성서에서 모세가 거룩한 산에서 신의 현현을 앞에서 보면서 "네가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신을 벗으라"라고 요구받은 것과 같은 종류의 요구이다. 신발은 땅을 밟고 온갖 곳을 돌아다니는 데 사용되는 가장 더러운 물건이다. 그래서 거룩한 장소에 더러운 신발을 신고 들어서는 것은 신성모독이다. 신을 벗고, 발을 씻는 것은 정결의식이다. 그래서 일부 사원들은 입구에 흐르는 물이 있어서 발을 씻게끔 하기도 한다.
다른 사원과 다르게 황금사원에 들어서는 긴 다리 위에는 종을 울릴 수 있는 줄이 공중에 달려 있었다. 사람들은 사원으로 들어서며 그 줄을 잡아당겨 종을 울리곤 했다. 나는 그 이유를 주위 사람에게 물었다. 사원으로 들어서며 종을 울리는 이유는 그 종소리를 듣고 내가 이 사원에 왔다는 사실을 신이 알기 때문이라고 했다. 특별한 공간으로 진입하기 위해 하체를 가리고 발을 씻는다면, 이제 특별한 시간으로 진입하기 위해 종을 울리는 것이었다. 신이 아주 많이 바빠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종을 울려야만 내가 신전을 방문했다는 사실을 아는 신이라면, 다른 것도 모르는 것이 많을 것 같다. 나는 종을 울리는 행위가 자신의 마음을 가다듬기 위함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황금으로 만들어졌다는 이 사원보다 더 아름답게 빛나는 것은, 그리고 황금사원을 특별한 시간과 공간으로 만드는 것은 종교적인 규율이나 대단한 건물이라기보다는 적어도 나에게는 빛나는 인간성에 대한 신뢰였다. 평등할 수 있고, 평등해야 한다는, 인간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우리는 같은 존재라는 그 믿음이 이곳에 있었다. 숙소로 되돌아오는 길에 나는 다시 한번 릭샤를 탔다. 걷기에도 힘겨워 보이는 노인이 페달을 밟고 있었지만, 나는 그를 존중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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