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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나 Aug 21. 2023

1. 부족함 없이 자란 사람

-2) 어릴 적 나에게

 이십 대 중반까지만 해도 뾰족했다고 했던 나는 그때까지만 해도 가족에 대한 미움이 정말 가득했다. 좋게 말해 미움이지 그냥 싫어했다. 하루라도 빨리 집에서 나가고 싶어 했다. 어느 정도였냐면 외국으로 취업해서 아예 한국을 떠나고 싶었다. 가족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이유로.


 여느 날과 다름없었는데, 지금은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부모님이 싸워서 내가 또 중간에서 그 싸움을 말리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러다 고름처럼 쌓여있던 내 감정을 주체하지 못했고 순간 이제는 나 자신이 버티지 못하고 이 세상에서 없어질 것 같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무서웠다. 그 행동도 결국 용기라고 하는데 난 그럴 자신도 없었다. 그래서 생각을 바꿔 어차피 살 건데 이제 좀 사람답게 행복하게 살고 싶었고 과거 상처가 많았던 나를 이제 해방시켜주고 싶었다. 


 그래서 먼저 했던 것은 A4용지를 몇 장 꺼내서 과거에 있었던 상처들을 하나하나씩 적어 내려갔다. 그전에는 애써 기억하고 싶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어차피 생각해 봤자 괴로우니까.


 먼저 가족에 대한 상처를 하나하나 어릴 적부터 기억나는 시간 순서대로 적어 내려갔다. 왜 이렇게까지 가족을 싫어하게 됐는지 처음으로 진지하게 생각하게 되었다. 그전에는 이유조차 생각 안 하고 그냥 싫어했다. 어릴 때부터 여러 가지 일로 축척된, 디폴트와 같은 내재된 감정이었다. 쓰면 쓸수록 종이는 눈물로 젖어갔고 잉크도 번졌다. 


 근데 어떠한 꾸밈없이 내가 갖고 있던 상처를 적나라하게 빼곡히 양면으로 두 장을 채우면서, 눈물을 미친 듯이 쏟아내고 나니 뭔가 맘 속에 있던 묵은 응어리가 빠져나가는 기분이었다. 이십 대 중반이 돼서야 다른 나를 마주한 느낌이었고 내가 내 상처를 보듬어주지 못하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지금의 우울증은 잔잔하지만 과거에는 좀 더 심했어서 그럴 마음의 여유가 없다는 핑계로 나를 방치했던 것 같다. 그냥 하염없이 늪에 빠져있었던 거다.


 무작정 원망만 했다. 가족이든 주변 사람이든. 근데 오히려 그게 나를 힘들게 하고 있었던걸 지도 모른다고 느꼈다. 과거에 얽매여 현재의 나도 돌보지 못했고 과거의 나도 놓아주지 못했다.


 물론 그 A4 두장으로 어릴 적 나를 다 위로해 준 건 아니었다. 근데 내가 무엇 때문에 힘들었고 무엇 때문에 가족이나 사람을 그렇게 좋아하지 못하게 됐는지 명확하게 알고 나니 고장 난 나를 고칠 수 있다는 자신이 생겼다.


 나 또한 현재도 진행 중이긴 하지만 상처 많았던 어릴 적 나를 돌봐주고 싶다면 그 상처들을 피하지 말고 한 번은 제대로 마주해 보는 게 나를 위한 거라고 말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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