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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인 Nov 07. 2024

수상한 와이프

운동장에서 찾은 새로운 정체성에 대하여

운동장을 맴도는 수상한 와이프


풋살을 시작하고 밤낮없이 공만 쫒아다니던 시절, 한동안 날 따라다닌 별명은 ‘수상한 와이프’였다. 연배와 신분이 탄로 나는 기분에 떨떠름하기도 했지만, 사실 또 그만큼 나를 잘 표현해 주는 수식어도 없었다. 미혼인 팀원들은 훈련 출석률 100%를 달성하며, 뒤풀이가 파할 때까지 남아 있는 나에게 법적 동거인이 있다는 사실을 믿지 못했다. 기본적으로 남편과 나는 서로의 외부 활동이나 인간관계에 크게 관여하지 않는 편이긴 하지만 그 시절 나는 어딘가 홀린 사람처럼 자꾸만 집을 나왔다.

한창 빠져 있을 때는 4~5일 연속 풋살을 하곤 했는데, 칼퇴 후 항상 운동장으로 달려갔고 연습이 끝나면 근처 편의점에서 맥주를 마시며 세 시간 동안 풋살 이야기만 했다. 주말엔 조기 축구 가는 아저씨처럼 아침부터 운동장으로 나갔고,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달린 다음에 또 똑같은 멤버들과 똑같은 풋살 이야기를 하며 밤새도록 맥주를 마셨다. 남편과는 당연히 만날수 없었고 야근도 하지 않고 집안일도 신경 쓰지 못했지만 그 어떤 죄책감도 피로도 느끼지 못할 정도로 아드레날린으로 가득한 시즌이었다.


이러한 나의 수상쩍은 취미 생활에 참견을 더하는 것은 남편 당사자가 아닌 주위 사람들이었다. 미혼인 사람들은 홀로 남은 남편의 안부를, 기혼인 사람들은 시댁의 반응을 궁금해했다. 특히 명절 연휴에 시댁에 안 가고 공을 찼다는 에피소드를 들은 회사 사람들은 나를 거의 외계인 취급하기에 이르렀다. K-며느리로서 눈치를 보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라고 할까…. 그렇지만 당시엔 정말로 이렇게 매일매일 운동장에서 굴러도 내 패스가 직선으로 향하지 않고, 내 슛에는 힘이 실리지 않는데 시댁 모임이 대수인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 누구의 간섭도 귀에 들어오지 않는 도파민 중독 상태였다.

남편과 가끔 조우할 때는 가정 경제고 회사 고민을 나누기보다는 나의 풋살 실력이나 팀 운영에 대한 고민을 들어 주길 바랐다. 처음 해 보는 공놀이는 무엇 하나 내 맘대로 되지 않았기에 축구 경력 30년의 그가 어쩌면 도움을 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하게 했다. 그러나 발목에 힘 주는 방법이나 공 찰 때 손의 위치처럼 평생 당연하게 공을 차 왔던 남성로서는 생각해 본 적도 없는 질문을 쏟아부었기에 그가 답변해 줄 수 있는 부분은 없었다.(아직도 이 질문에 제대로 답해 준 코치는 아무도 없다. 처음부터 잘했던 사람들은 정말로 모른다….)

또한 동호회 운영 관련해서도 서로의 입장 차이가 명확했는데, 동호회 운영 방식에 대한 갈등 해결 방법을 고민할 때면 남편은 축구팀에서 주장이나 코치의 의견에 반대 의견이 나온다는 것 자체를 이해하지 못했다. 기본적으로 상명하복에 익숙한 탓도 있겠지만, 축구 동호회란 모두에게 너무나 익숙한 모임이기 때문에 따로 논의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운영되는 암묵적인 룰이 있는 것 같았다. 이러한 경험과 인식의 차이 때문에 부부 간 겨우 잡힌 대화 시간마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 채 금방 중단되기 일쑤였다.


그렇게 날이 갈수록 내부로는 단란한 가정 유지에 위협을, 외부에선 위장 결혼이라는 끊임없는 의혹을 받으며 수상한 와이프의 지위는 공고해져만 갔다.

가정과 직장이 있는 여성이 가족과의 평온한 일상과 밀린 업무를 포기하면서까지 먼지 가득한 운동장으로 달려가야 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나는 그곳에서 무엇을 찾기 위해 그렇게 뛰쳐나가야 했을까?



수상한 그녀들의 탄생


수상하다; 보통과는 달리 이상하여 의심스럽다.

15년차 직장인, 수상한 기색은 하나도 없는 보통의 삶이었다. 처음 운동장에 발을 내딛게 된 계기도 새로운 도전이라든가 거창한 이유는 아니었고 단순 ‘조급함’이었다. 대코로나 시대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연말을 맞이하게 된 엄격한 관리자형 직장인은 뭐라도 시작해서 인생 성과를 남겨야 한다는 생각에 조급해졌고, 마침 회사 게시판에 올라온 여자 축구 동호회원 모집 글에 누구보다 빠르게 지원했다.

또한 나는 대체적으로 사람과 모임을 좋아하는 외향적인 사람은 아니었다. 사회 생활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회사 친구 ‘0명' 을 자랑했고 회사, 학원, 동호회 등 모든 모임에서 목적을 벗어나는 친목을 쌓은 경험이 전무했던 사람이었다. 인스타그램에는 풋살 시작했다는 사진과 선언 몇 줄을 남겨서 갓생 사는 직장인임을 과시하고 싶었고, 언제나 그랬듯 함께 운동을 시작한 사람들과 친해질 생각은 애초에 없었다.

그러나 그 철칙은 첫 수업부터 보기 좋게 무너졌다. 통성명도 하지 않은 마스크를 쓴 초면의 사람들과 엉망진창으로 공을 주고받고 숨이 턱 끝에 찰 때까지 필드를 내달리며 내 머릿속엔 처음 느껴 보는 불꽃이 튀었다. 엉겁결에 골을 넣고 모든 팀원들이 몰려와서 기뻐해 주었을 때에는 긴 사회 생활 동안 한 번도 받아 본 적없는 순수한 환호와 격려에 얼떨떨하면서도 가슴이 뛰었다.


그렇게 팀스포츠 자체의 매력에 빠진 나를 더욱 더 옭아맨 것은 팀원들이었다. 회사 동호회라는 특성상 그녀들의 첫인상은 그저 진지하고 예의 차리는 사회인이었지만, 공놀이의 매력에 동시에 중독되어 버린 그녀들은 본능에 충실한 자연인 그 자체였다. 약속이나 한 듯이 얼굴의 화장기는 점점 사라져 갔고, 더러워진 옷과 상처는 그날의 연습량을 보여 주는 자연스러운 훈장이었다. 훈련장이 판교 근처였기 때문에 평일 늦은 저녁엔 항상 판교역에서 가장 더러운 모습으로 지하철에 오르곤 했는데, 반듯하지만 지친 직장인이 가득한 지하철 플랫폼에서 역설적이게도 가장 지저분한 우리만이 반짝이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은 적도 있었다. 사회가 만들어 낸 ‘직장인 여성’이라는 틀에는 하나도 맞지 않는 외형을 하고 구르고 넘어지고 화를 내고 소리를 지르는 우리는 판교역에서 가장 의심스러운 집단이지만, 하루의 울분을 모두 쏟아 내고 자유로움을 만끽하는 가장 행복한 집단이기도 했다.


인파 가득한 서울숲에서 유니폼 입고 리프팅 하기, 35도 넘는 한여름에 1대1 연습 하기, 영하 10도에 폭설 맞으면서 경기하기, 경기장 대관 때문에 남자들과 싸우기, 참가자 100명 넘는 풋살 행사 기획하기…. 혼자였다면 평생 시도도 하지 않았을 것 같은 이상한 일들도 그들과 함께라면 유쾌하게 해낼 수 있었고, 나를 포함한 팀카카오 멤버들은 땀과 먼지와 눈물로 얼룩진 서로를 다독이고 끌어 주며 서로에게 기꺼이 수상한 동료가 되어 가고 있었다.

열정적이고 다정한 팀원들을 만나는 즐거움, 그리고 일상에서 벗어나는 해방감이 나를 꾸준하게 운동장으로 이끌었고 내 다른 자아인 수상한 와이프는 그렇게 탄생하였다. 수상한 건 나뿐만이 아니었기에 누구에게나 당당하게 내 취미와 정체성을 자랑하며 동료들의 손을 잡고 끊임없이 운동장으로 뛰쳐 나갈 수 있었던 것이다.



더이상 수상한 와이프가 없는 세상


시댁 모임에 참석했던 어느 날, 시아버지를 통해 가깝지 않은 친척들에게 내 근황이 소개되었다. 우리 며느리는 요새 축구 선수다… 밤낮없이 열심히 운동을 하고 있다… 시아버지야 건강한 며느리를 자랑하고픈 마음에 가볍게 던지신 화두셨겠지만, 구석에서 밑반찬을 주워 먹고 있던 며느리 당사자는 갑작스런 근황 데뷔에 화들짝 놀라고 말았다. 잠깐의 웅성거림 속 딱히 좋은 소리가 나오지 않을 것을 직감하고 어색하게 웃고 있던 나에게 역시나 드라마에서나 나올 법한 대사가 날아들었다.

“아들을 낳아서 축구를 시켜야지, 니가 하고 있으면 어떡하니.”

내가 남자였다면 절대 들을 리 없는 말. 내가 미혼이었다면 들을 리 없는 말. 지긋한 어르신들에게 축구하는 며느리가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조합이 아닌 것은 너무나 당연했다. 그렇지만 단순히 근황을 소개하는데(심지어 건전한 근황) 좋지 못한 소리를 들을 것 같다고 직감했던 것도, 또 그 예감이 틀리지 않았던 것에도 허무하고 씁쓸한 기분이 드는건 어쩔 수 없었다. 십여 명이 모인 가족 모임은 아직도 선입견이 가득한 사회의 축소판이었고, 나는 이곳에서도 애도 안 낳고 남자들이 하는 축구를 하는 ‘수상한 와이프’였다.


풋살이라는 팀 스포츠를 시작하며 내가 체득한 모든 것들은 30여 년이 넘는 인생 동안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새로운 종류의 것들이었는데, 안타깝게도 그 지식과 경험들은 건강한 사회 구성원으로 성장하기 위해 꼭 터득하고 넘어갔어야 하는 것들이었다.

개인이 아닌 팀으로서 시너지를 내기 위해서는 서로에 대한 신뢰가 기본이라는 점은 뻔한 상식이지만, 정글 같은 사회에서 내가 먼저 누군가를 믿는다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동료가 지칠 때는 내가 한 발 더 뛰어서 메꾸어야 한다는 것, 내가 지치더라도 한 발 더 뛰어 줄 누군가 있을 거라는 것, 경기장 안과 밖에서 조건 없이 응원하는 누군가 있다는 것을 경험하고 나면 팀이 주는 놀라운 시너지에 믿음이 생기게 된다. 또한 나의 강점과 약점을 정확히 파악하여 팀에서 어떠한 포지션을 차지해야 하는지, 시너지를 낼 수 있는 동료는 누구인지 분석하는 것은 조직에서 오랫동안 버텨 내기 위해 꼭 필요한 기술인데, 팀 스포츠를 하기 위해서는 매 경기마다 필연적으로 수행해야 하기에 가장 자연스럽게 습득할 수 있는 기술이기도 했다. 책에서 배운 어렴풋한 지식으로 조직 생활에 적용하려고 애썼던 모든 것들은 운동장에서 몸으로 부딪히며 자연스럽게 얻을 수 있는 경험이었던 것이다.


골때녀 이후 분위기가 많이 바뀌긴 하였지만, 풋살을 포함한 팀 스포츠는 아직도 많은 여성들에게 낯설고 도전이 쉽지 않은 운동이다. 학교 운동장과 체육관은 여전히 남자아이들이 가득하며, 운동복을 입고 땀에 절은 여성 무리가 몰려다니는 모습을 낯설게 보는 시선도 여전하다. 수많은 취미 생활, 많은 사람들이 즐기는 대표 스포츠 중의 하나일 뿐인데도 풋살을 하는 여성들은 아직까지도 보통의 범주를 벗어나는 수상한 사람들로 간주된다.

늦었지만 팀 스포츠가 주는 가치를 경험한 여성으로서 모든 여자아이들에게 팀 스포츠를 경험할 수 있는 동일한 기회가 제공되고, 그들이 사회 구성원으로 필요한 기술을 자연스럽게 체득하며 자라날 수 있기를 바란다. 또한 모든 여성들이 선입견 없이 어떠한 선택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사회가 되기를, 몸과 마음에 건강한 근육을 키우는 데 더 집중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나와 같은 기혼 직장인 여성들이 더 이상 수상한 와이프가 아닌, 그저 취미 생활에 빠진 평범한 직장인으로 보일 날이 조금 더 빨리 오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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