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사람을 체념하는 것도 사랑에 필요하지 않을까?
우리는 91년생 동갑내기 부부다. 몇 번이고 싸운 날이 있었지만, 싸운 당일의 대미지가 나에게 가장 큰 날이 이번 싸움이다.
우리 집안은 동물을 실내에서 키운 적이 없다. 반면 아내의 집안은 실내에서 강아지를 키웠다. 아내가 동네 작은 골목에서 카페를 운영했을 당시 가게에 마스코트 역할을 했던 두 마리의 고양이가 있다. 이름은 노랑이와 삼색이.
그날의 싸움은 이미 오래된 토픽이었다. 아내와 결혼하고 한 집을 살면서, 고양이들을 들이는 것에 동의하고 함께 살고 있다. 아내의 요청에 기꺼이 응했지만, 불편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왜 미처 몰랐을까? 나는 다소 집이 정리가 안되어 있더라도 바닥이 깨끗하기만 하면 괜찮은 사람이다. 그런데 바닥에 날리는 털, 스크레쳐 파편, 특히나 바닥을 나뒹구는 화장실 모래는 나의 발바닥을 걸리적거리게 했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쓸고 닦아도 깨끗한 바닥의 상태는 하루가 지속되지 않는다. 또 다른 불편함은 방묘문이다. 방묘문 자체도 불편하지만, 방묘문을 어쩌다 열어두는 날이면, 해당 방에 고양이들의 털과 침(노랑이는 치주염 때문에 냄새가 좀 난다.) 냄새에 스트레스를 받았다. 내가 일을 할 때는 괜찮았지만, 5월에 태어난 아기가 60일이 지나서부터 육아를 전담하며 집에 있는 요즘, 그 스트레스가 더했다.
출산하고 얼마 되지 않아, 일을 하는 아내에게 안쓰럽고 미안한 마음도 있었지만, 나는 늘 나의 불편함을 이야기하는 성격 탓에 그날도 불편함을 이야기했다. 나의 불편함을 이야기하며, 잘 조율하고 있는 과정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내 입장은 아니었나 보다. 나의 불편함에 꽤나 스트레스를 받았었나 보다. 그도 그럴 것이 아내 입장에선 동의하고 함께 키우기로 했으면, 내가 감내해야 하는 부분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물론 그 말에 동의하지만, 나의 스트레스가 극에 달아 고양이를 내보내고 싶은 정도까지 안 가려면, 일정 부분 나는 그런 스트레스를 표현해야 했고, 아내가 그런 감정들을 이해해 주길 바랐다. 스트레스를 줄이기 위한 물리적 해결책도 필요했다.
아내는 그동안 나와 연애할 때와는 다르게 결혼해서 함께 살면서, 자신과 안 맞는 '나'의 모습을 평생 감수하면서 살아가야 한다는 감각이 새삼 힘들다는 것을 어느 날부터 인지했다고 한다.
"이게 사랑인지 나도 헷갈리고 어려워. 자기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과정인 것 같은데, 그게 자기라는 사람에 대해서 체념하고 포기하는 마음이 들어."
그러면서 이런저런 옛 이야기들을 나열했다. 서로의 입장과 생각을 주고받던 중 정말 마음 아프고 슬픈 말을 아내가 뱉었다.
정말 문장 그대로
"여보랑 결혼한 걸 후회하는 게 아니고, 결혼 자체를 후회해. 나는 결혼하면 안 되는 사람이었나 봐, 연애만 하고 살았어야 했나 봐."
라는 말이었는데....... 내 감정은 그 말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했다. 어쨌든 그 생각을 들게 한 이유는 그 누구도 아닌 지금 아내와 결혼한 '나'라는 사람이니까 말이다. 몇 마디 말들을 더 주고받고. 그 말이 내 마음에 계속 얹혔는지
"그 말 너무 슬프다." "마음이 아프다"라고 말하며 눈물 이 뚝 떨어졌다.
아내도 자신이 내뱉은 말이 나에게 상처였다는 걸 인지하고는, 잠들기 직전까지, 그리고, 그다음 날 아침에, 퇴근해서까지 연달아 미안하다는 말을 했다.
내가 아는 아내의 성격은 자신이 소중하다고 느끼는 사람에게 상처 줬다고 생각이 들면, 눈물 흘리며 마음 아파하는 사람임을 알고 있다. 미안하다고 사과하며 눈물을 글썽거리는 아내의 모습에서 나는 여전히 아내에게 소중하고, 나를 사랑하는 아내의 마음이 여전함을 발견했기에 생각보다 체한 마음이 금방 가라앉았다.
우리는 서로 하나씩 더 최선을 다하기로 약속했다. 아내는 감정 섞인 나의 언변에 한번 더 공감해서 들어주기로, 나도 불평과 불만을 좀 덜할 수 있도록 한번 더 내 마음을 다스리기로 약속했다. 고양이는 상호 동의 하에 함께 살기에, 서로 불편하지 않게 최선을 다하며 합의해 나갈 것을 다시 다짐했다.
우리 부부에게 고양이와 함께 사는 것은 여전히 갈등요소다. 쉽게 좁혀지지도 않고, 조그마한 이슈에도 서로 상처를 금방 받을 만큼 예민한 문제가 돼버렸다. 고양이 하나를 대하는 마음도 이렇게 다르다. 결혼은 나와 상대방의 다름을 끝없이 인지하는 과정이다. 그렇게 서로 인지한 다름을 맞춰가는 과정이다. 맞춰지지 않는 다름이 있다면, 아내가 말했듯이 체념하는 것도 과정 중 하나일 수 있다.
사랑이 뭘까? 어쩌면, 사랑하면서 사랑하는 사람을 향한 체념도 필요한 게 사랑인 걸까? 아내가 어려워하는 문제에 나도 골똘히 머물러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