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빗방울 Aug 28. 2021

비비안 마이어를 찾아서 2

비비안 마이어 저작권을 둘러싼 소송전의 전말


비비안 마이어 저작권을 둘러싼 소송전의 전말


말루프는 뉴욕의 사진 전문 갤러리인 하워드 그린버그 갤러리(Howard Greenberg Gallery)와 비비안 작품의 전속 계약을 맺고 전시를 개최한다. 비비안의 인생 스토리와 뛰어난 사진에 대한 관심은 폭발적이었다. 비비안이 유명세를 타게 되고 전시가 상업적인 성공을 거두자 비비안 마이어 작품의 저작권에 관한 이해관계는 복잡한 소송을 낳는다. 


비비안처럼 유족이 없고 생전에 본인의 저작권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를 취해 놓지 않으면 본인의 사후에 우연히 기회를 포착한 사람이 그 저작권의 열매를 따먹게 되는 경우도 생길 것이다. 비비안의 필름을 발견하고 영화로 만든 존 말루프의 경우처럼 말이다. 일상에서는 자신의 흔적을 남기지 않으려 노력했던 비비안은 수많은 사진으로 결국 자신을 표현했다. 비비안의 재능을 세상에 알리고 엄청난 가치로 바꾼 것은 존 말루프이다. 이런 노력의 대가로 존 말루프가 비비안 마이어의 저작권을 소유하는 것은 과연 정당한 것일까? 


게다가 생전에 전혀 교류가 없을 뿐만 아니라 서로의 존재를 아예 모르고 있었던 친인척들이 갑자기 나타나 오로지 금전적 이익을 위해 저작권을 소유하려는 소송전도 치열하게 전개되었다. 법적으로는 가장 가까운 친척이 저작권의 소유자가 되므로 정당한 절차일 수도 있겠지만, 평생 서로의 존재 자체를 모르고 산 사람들에게 단지 피가 조금 섞였다는 이유만으로 비비안 마이어 저작권의 금전적 이익에 대한 권리를 주는 것이 합당한 일일까?


미국에서 수년 동안 진행된 비비안 마이어의 저작권 소송의 내용을 살펴보자.



존 말루프: 

비비안 마이어 사진의 최초 발굴자, 과연 저작권을 가질 수 있을까?


2007년 우연히 비비안 마이어의 수많은 필름을 400달러도 안 되는 금액에 손에 넣게 된 존 말루프는 전시를 하고 책을 출판하고 다큐멘터리 필름 <비비안 마이어를 찾아서>를 제작해서 비비안 마이어의 작품을 세상에 알리며 금전적으로도 많은 이익을 얻었다. 그는 계보학자를 고용해서 프랑스에 있는 비비안의 가장 가까운 사촌을 찾아냈고 그에게 비용을 지불하고 저작권을 샀다고 주장했다. 



데이비드 딜: 

전직 사진작가이자 변호사, 저작권은 후손에게 상속되어야 한다


그런데 2014년 미국 버지니아주 변호사이자 전 사진작가였던 데이비드 딜(David Deal)이 존 말루프가 찾아낸 사촌보다 더 가까운 사촌을 찾아내서 그가 상속자가 되어야 하고, 존 말루프처럼 비비안 마이어와 전혀 관계없는 사람이 비비안의 작품으로 이익은 얻는 것은 불공평하다고 주장하며 소송을 제기했다. 미국 연방 저작권법에 의하면 사진의 네거티브나 인화된 사진을 소유하는 것은 저작권을 소유하는 것과는 별개이며, 저작권자가 이미지의 복제와 판매의 권리를 갖는다고 되어있다. [1] 그러나, 비비안 마이어의 후손이라고 나타난 사람들 중 어느 누구도 상속인으로서의 조건을 충족하지 못한다고 본 일리노이주는 주의 공공재산관리인을 비비안 마이어의 유산관리인으로 지정했다. [2]



존 말루프와 하워드 그린버그 갤러리: 

소송의 결과로 전시와 판매를 계속하게 되다


비비안 마이어 작품의 저작권에 관한 길고 지루한 법정 공방 끝에 존 말루프와 하워드 그린버그 갤러리는 비비안의 사진을 전시하고 판매할 수 있는 로열티 계약을 맺고, 발생한 수익은 시카고의 쿡 카운티(Cook County)가 대행하는 비비안 마이어 유산관리인과 나누기로 합의를 보았으나 자세한 사항은 비밀에 부쳐졌다. [3]


- 존 말루프의 비비안 마이어 컬렉션


- 하워드 그린버그 갤러리의 비비안 마이어 작품



제프리 골드스타인: 

존 말루프처럼 비비안 마이어의 사진을 발굴한 자,  비비안을 세상에 알린 노력의 대가를 포기할 수는 없다


한편, 존 말루프 이외에 비비안 마이어의 사진을 손에 넣은 사람이 몇 명 더 있었다. 이중 제프리 골드스타인(Jeffrey Goldstein)은 본인과 존 말루프는 몇 년의 시간과 수많은 돈을 들여 비비안 마이어의 사진을 프린트해서 마침내 그녀의 작품을 세상에 알렸다면서 이러한 노력이 없었다면 비비안 마이어의 뛰어난 작품은 영원히 묻혔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만약 시카고 쿡 카운티의 공공재산관리인이 비비안 마이어의 유산관리인으로 저작권을 관리하게 되고, 본인이 비비안 마이어 작품의 전시와 판매를 할 수 없게 된다면 그에 상응하는 보상이 있어야 한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4]


그러나 이 소송은 기각되었고 마이어의 유산을 관리하는 쿡 카운티 공공재산관리인은, 오히려 제프리 골드스타인이 공식적인 허가 없이 여러 갤러리를 통해 비비안 마이어의 사진을 전시하고 판매해서 이익을 얻고 있다며 2017년 저작권 침해로 소송을 제기했다. [5]



비비안 마이어의 (존재 여부도 몰랐던) 후손들:

저작권자임을 주장하다


2018년에는 유럽에 거주하는 비비안 마이어의 후손 열명이 상속인이라며 소송을 내기도 했다. 이 소송은 앞서 언급한 2014년 소송을 제기했던 데이비드 딜 변호사가 대리한 것이었다. 데이비드 딜은 비비안 마이어는 자식이 없었고, 단 한 명의 혈육이었던 오빠 역시 자식 없이 사망한 것으로 확인되어 일리노이주 법에 따르면 비비안 마이어의 증조부와 증조모의 후손이라면 누구나 비비안 마이어의 상속인이 될 자격이 있다고 주장하며 유럽에서 열 명의 후손을 찾아냈다. 단, 그 후손들은 모두 미국 국적이 아니어서 비비안 마이어의 유산관리인이 될 수는 없지만 저작권에서 발생하는 수익은 받아갈 권리가 있다는 것이다. 데이비드 딜은 이 소송을 제기한 이유가 소유권을 가졌다고 저작권을 마음대로 이용할 수는 없다는 저작권의 원칙에 기초한 것이라면서 저작권의 의미를 강조했다. [6]




3부에 계속





작가의 이전글 비비안 마이어를 찾아서 1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