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거 크롭티 아니에요?”
급식실에서 동료 선생님들과 점심을 먹고 나오는 길, 어느 선생님의 말에 우리 무리는 일제히 한 선생님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거기에는 한 젊은 선생님이 잔반을 버리고 있었다. 크롭티를 입고.
“저분 못 보던 분인데.. 이번에 새로 오신 분인가?”
“순회 교사 분인 것 같아요.”
“어이구. 잔반 버리는데 옆구리가 다 보이는데요.”
“젊으신 분이라 개성이 강하신 걸까요?”
이런 대화들을 하며 점심 후 짧은 산책을 시작했다. 여기는 남녀공학의 고등학교이기 때문에 교사들의 복장은 종종 도마 위에 오를 때가 많다. 갑자기 나의 신규 때가 떠올랐다.
처음 발령을 받은 학교에서 나는 고2 담임을 맡았다. 고등학교 2학년들은 보통 수학여행을 가는데 그때 나는 학생들과 함께 간 제주도에서 검은 레깅스 위에 짧은 청반바지를 입은 적이 있다. 그리고 며칠 뒤 한 선배교사가 회식 자리에서 나를 생각해 준다며 했던 말이 떠올랐다.
“자기야. 이거 내가 자기 생각해서 얘기해 주는 건데.. 저번 수학여행 때 쌤이 레깅스 위에 짧은 바지 입었잖아? 그거 뒤에서 말 엄청 많았어. 교사가 교양 없다고.. 몰랐지. 자기?”
그 말을 듣고는 적잖은 충격을 받아 1년 동안 칼정장만 입었던 기억이 있다. 그때 나는 바지 안에 검은색 레깅스를 입었으니 괜찮겠지 싶었는데 나만 모르는 사이에 내 복장이 다른 교사들의 도마에 올랐던 거다. 서로의 생각은 늘 그렇게 엇갈린다.
나는 잔반을 버리는 선생님을 힐끗 보고는 무리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그냥 걸을 때는 몰라도 판서라도 하시면 옷이 더 올라갈 텐데요.”
물론 요즘 같은 시대에 직장에 옷을 좀 편하게 입고 다니면 어떠나 생각할 수도 있다. 그건 개인의 자유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옷차림이란 언제나 때와 장소, 상황을 생각해서 입는 것이 예의라고 느껴진다. 게다가 여기는 고등학교가 아닌가. 예민한 시기를 거치고 있을 학생도 있고 교사의 언행에 따라 학생과 교사의 관계가 변할 수도 있다. 물론 요즘 유행에 맞게 옷을 입은 젊은 교사가 아이들과 선후배처럼 때론 친구처럼 가깝게 지낼 수도 있다. 하지만 결국 교사와 학생은 친구가 아니라는 결론에는 생각보다 쉽게 다다를 것이다.
대화를 하다가 문득 내가 학생일 때의 기억도 떠올랐다. 내가 중학교에 다닐 때, 젊고, 예쁘고, 우리를 가깝게 대해주셨던 국사선생님이 계셨다. 학교에서 나이가 지긋하신 선생님들만 보다가 그 선생님을 처음 만났을 때 뭔가 기대되고 설레는 마음이 들었었다. 뭔가 우리 또래의 일상을 그 선생님과 공유하고 싶고, 한 번 더 말을 걸고 싶은 마음에 잘 보이려고 노력했던 것 같다. 당시에는 짧은 카고팬츠와 (우리 동네에서는 건빵바지라고 했음) 줄무늬 티셔츠가 유행이라 우리도 학교 밖에서는 주로 그렇게 입고 다녔는데 어느 날 그 선생님이 짧은 카고팬츠에 줄무늬 티셔츠를 입고 교실에 들어오셨다. 그때 나는 그 선생님에 대한 관심이 사그라들었던 것을 기억한다. 물론 친구들의 생각이 전부 나 같지는 않았겠지만 당시에 내가 가지고 있는 교사의 이미지에 맞지 않은 그 옷차림에 묘한 거부감을 느꼈달까. 학교의 교사와 과외 교사는 그 역할이 조금 다르기 때문에 기대치도 조금 다른 느낌이다.
이런 얘기가 요즘 사람들에게 어떻게 들릴지는 모르겠다. 누군가는 내게 꼰대라고 할 수도 있다. 절대로 정장을 꼭 갖춰 입어야 한다는 말은 아니다. 청바지에 티셔츠를 입을 수도 있고, 가볍게 셔츠를 걸칠 수도 있고, 화려한 색감의 옷을 입을 수도 있다. 종종 개량한복을 입고 다니시는 분도 있을 만큼 오히려 다른 직장보다 더 자유로운 복장이 가능한 곳이 학교다. 하지만 그런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 딱 한 가지 무언의 약속처럼 금지되는 복장이 바로 노출이 있는 옷이다.
2019년 교육부에서 공무원 복장 관련 지침이 내려와 논란이 있었던 적이 있다. 이때 논란이 되었던 문구는 공무원으로서의 품위를 유지할 수 있도록 간소하고 단정한 복장 착용을 적극 권장(연중)한다면서 바람직하지 않은 복장의 예시를 든 것이다.
<바람직하지 않은 복장 예시>
- 슬리퍼, 반바지, 찢어진 청바지 등 지나친 개성 표출로 불쾌감이나 거부감을 줄 수 있는 복장
- 과다하게 노출되거나 지나치게 화려한 복장 등
이 공문에 대해 현장에서는 대체로 반대하는 분위기라는 기사였다. 교사의 품위는 교사 개인의 인성, 자질 사명감 등 다양한 요소로 유지되는 것이지 복장을 통해서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라며 복장을 교사 자율로 맡겨야 하지 규제할 사항은 아니라는 것이다. 물론 저렇게 ‘반바지’ 등이라고 굳이 명시해서(그럼 3부 바지가 안 되는 건지, 4부는 괜찮은 건지 엥? 기준 무엇?) ‘공문’의 형식으로 내려온 것이 현장을 불편하게 했다고 생각한다. 저런 식의 규제에는 나도 동의할 수 없다. 하지만 내가 간혹 본 크롭티나, 짧은 테니스 치마에 니삭스와 같은 옷을 입은 교사들을 보면 아슬아슬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우리가 취업을 위해 회사에 면접을 간다고 생각하면 쉽게 생각할 수 있다. 회사에서 딱히 복장 규제를 하지 않더라도 면접에 오는 사람들의 목적이 대부분 ‘취업성공’으로 같기 때문에 복장도 유사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자신이 고용주에게 좀 더 전문적이고, 책임감 있고, 성실하며 유능한 인재로 보이고 싶을 것이다. 그렇게 옷은 목적에 따라, 생각에 따라 결정된다.
나는 학교에서 아이들이 나를 신뢰할만한 교사로 보기를 바란다. 내가 가르치는 내용을 신뢰하고 나의 조언에 귀 기울이고, 나를 마음 놓고 고민을 털어놓을 수 있는 어른으로 생각했으면 한다. 나 역시 그런 학생들의 고민을 들어주고 위로, 격려, 조언을 해줄 준비가 되어 있다. 하지만 그들과 나는 친구가 아니기에 나를 친구처럼 대하지는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옷을 고른다. 편안한 어른과 편한 친구는 다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