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치토세 찜질방(?)을 즐길 것
티켓 값이 저렴하면서도 도쿄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곳에 가고 싶었다. 약간의 현실 도피성 사고 회로일지도 모르지만. 돗토리 현이나 아오모리 시 같은 관광객이 잘 안 가는 지역에 가고 싶었으나 관광 수요가 적은 만큼 교통비가 무시무시했다. 편도가 20만 원이라니!
결국 6년 전 패키지 투어로 한 번 다녀온 적이 있는 홋카이도행 티켓을 끊었다. 왕복 10만 원도 안 하는 가격에 나름 만족하며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정말 아무 계획이 없는 즉석 여행이었다.
홋카이도의 이야기는 나중에 다시 써 보도록 하겠다.
아무튼,
설마 여기서 노숙하려는 셈은 아니죠? 밤 11시에 공항 문 닫아요. 노숙 안 됩니다. 공항 내 호텔이나 온천 가세요.
티켓 값을 두 배로 지불한 것도 모자라 내일 아침 비행기를 타기 위한 숙박비마저 지불해야 한다니. 앞으로 나의 계좌 내역을 우연히라도 보고 싶지 않은 기분에 휩싸였다.
공항 내 호텔은 왠지 비쌀 것 같았다. 온천에 가기로 했다. 어딘지 몰라 네이버에 막 검색해보았다. 공항 한복판에서 묵직한 백팩을 메고 두리번거렸다.
겨우 찾은 찜질방(온천)은 4층에 있었다. 4층으로 가는 엘리베이터가 많지 않아서 더 찾기가 어려웠다. 앞에서 한 시간 정도 망설이고 있었다. 들어가면 돈을 지불해야 하는데, 그냥 아침 6시까지 몇 시간만 이 앞에서 죽치고 있으면 안 되는 건가! 입구 앞에 두 명이 있었다. 한 명은 벤치에 앉아 스마트폰을 보고 있었고, 한 명은 노트북을 두드리고 있었다. 나도 여기 녹아들어갈 수 있지 않을까 싶어 조금 떨어진 의자에 무심히 앉아있었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그 둘은 어디론가 짐을 챙겨 떠나 버리고 없었다. 밤 11시, 아무도 없는 찜질방 입구에 홀로 남겨진 나는 결국 입장을 택했다.
입장료 안에 목욕 비용과 수건, 빌려 입을 옷 등의 비용이 전부 포함되어 있었다.
1박에 5천 엔 안팎이었다.
46도쯤의 무시무시한 온도가 적힌 전광판이 달린 뜨거운 방이 있어서 찜질방이라 부르는 건 아니지만, 목욕탕이 있는 것 외에는 한국에서 통용되는, 그러니까 숙박을 위한 찜질방과 다를 바 없었다.
목욕탕은 물론, 남자와 여자를 구분한 휴게실이 있었고 그 내부는 꽤나 근사했다. 수십 개의 1인용 리클라이너 소파가 줄맞춰 배치되어 있었고 그 위에 누워 마치 고글을 끼는 듯한 모양새로 가리개를 내린 사람들의 모습은 명탐정코난 6기 극장판 '베이커가의 망령'에 나오는 가상 현실 게임 '코쿤'을 떠올리게 했다.
리클라이너 소파를 광적으로(?) 좋아하는 나는 진심으로 여기서 한 달은 그냥 살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당연히 내부 촬영은 불가능했지만 아무튼, 그 리클라이너 의자에는 개인용 텔레비전도 하나씩 딸려 있었다. 이어폰도 있었고, 얇은 수건 이불도 가져올 수 있었다.
코를 고는 사람이 꼭 한 명쯤 있다는 건 어딜 가나 마찬가지였지만!
아, 그러고 보니 귀마개도 있었던 것 같다. 잠이 안 와서 이 찜질방 복도에서 혼자 노트북을 보다 새벽 3시 넘어 잠들었는데, 너무 깊이 잠든 나머지 진동으로 해 놓은 알람을 전혀, 정말 전혀 못 들었다(...). 천만다행으로 새벽 6시에 온천 전체 방송을 하더라('조식 드세요!'). 그걸 듣고도 한참 뒤에 겨우 깼다는 것 아니겠는가... 비행기를 또 놓칠 뻔했다!
복도 곳곳에 콘센트가 있어 편리했다.
차갑지만 맨발로 다닐 때의 짜릿함이 그대로 전달되는 이 마룻바닥은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속 여관에서 바닥 청소를 하던 주인공을 떠올리게 했다.
조식은 기본 빵과 기본 주먹밥이 전부지만, 무료다. 잠을 3시간밖에 못 잔 나는 입맛이 영 없어 우선 크로와상만 하나 입에 욱여넣고 온천을 나왔다.
앞으로 삿포로 오는 사람들에게 다른 곳보다도 신치토세 공항의 온천을 적극 추천하고 싶은 마음이다. 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