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체 탕 속에 오래 있지를 못한다. 코로나가 오기 전까지만 해도 엄마랑 둘이서 목욕탕에 가곤 했다(나의 참여는 반강제적이지만). 엄마가 한 시간을 탕 속에서 보내는 동안, 이 철없는 딸내미는 미지근한 탕을 5분 간격으로 나왔다 들어가기만을 여섯 번째다. 목욕탕에 가는 것이 묵은 때를 벗기기 위함인 엄마는 그렇게 물에 불은 피부를 노란(혹은 초록) 때밀이 타올로 박박 문지른다. 내 등도 엄마의 손길로 박박 문질러진다. 나머지는 스스로 하는 것이 암묵적인 룰. 하지만 나는 때밀이라는 과정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왜 내 피부를 내가 내 손으로 아프게 해야 하는 거지!
설렁설렁 때 미는 시늉만 하고 있는 나를 엄마는 곁눈질로 보자마자, "으이구, 일로 와!" 팔을 잡아 끌며 '착!' 뜨뜻미지근한 물을 잔뜩 머금은 때밀이 수건이 찰진 소리를 내며 피부에 달라붙고, 순식간에 나의 팔 전체를 밀어버린다. "아야야야!" 아무리 비명을 질러 봐도 주저함이 없는 엄마의 때밀이가 아직까지도 피부에 선명하다. 나는 금세 해탈하여 빨리 끝내주기만을 마음 속으로 기도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목욕탕에 계속 따라 간 이유는, 목욕이 끝난 후 엄마에게 500원을 부탁해서 마시는 초코우유 '제티'를 마시고 싶어서였다. 500원 더 받으면 전자레인지로 갓 데워 먹을 수 있던 핫바도 어찌나 맛있던지. 다른 곳에서 먹는 것보다 열 배는 맛있다.
그런 내가 혼자 목욕탕을 찾았다. (짤막 지식, 일본에서는 목욕탕을 銭湯 센토- 라고 부른다.)
우연히 일본 드라마에서 이 장면을 보고 커피우유를 당장 마시러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드라마「君の花になる(너의 꽃이 될게) 」1화 中
목욕이 끝난 후 다같이 커피우유를 마시는 장면, 일본 드라마나 애니메이션에서 종종 등장했을 것이다.
도쿄 다이토구에 위치한 목욕탕 하기노유
도쿄 중심부까지는 아니지만 꽤 유명한 목욕탕이었다.
당연히 열려있을 줄 알고 향했는데 대기열이 있었다. 시간표를 다시 보니 오전 6시부터 오전 9시까지 열고, 2시간 브레이크 타임을 둔 뒤 오전 11시부터 다음 날 오전 1시까지 운영하는 특이한 방식이었다. 다행히 나는 11시 10분 전에 도착해서 조금만 기다린 후 들어갈 수 있었다.
이 목욕탕의 입장이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져 있는지, 카운터와 탈의실은 몇 층인지 하나도 모르는 나는 우선 내 앞에 서 있는 사람의 행동을 무조건 따라하기로 했다.
우선 문을 열자마자 1층에서 신발을 벗고, 원하는 번호의 신발장에 넣고 열쇠를 가져간다.
1층에 신발장밖에 없어서 당황할 뻔했지만 사람들이 일제히 2층으로 올라가기 시작하더라.
1층은 코인 세탁소를 겸하고 있다. 카운터는 2층.
모두들 단골손님인지 눈보다 행동이 더 빨랐다.
이 목욕탕의 첫 방문은 나뿐이라는 기분이 물씬 느껴졌다.
2층에 있는 키오스크에서 '어른 + 수건 세트'를 택하면 620엔(기본 520엔에 수건 대여료 100엔 추가된 금액)의 티켓이 나온다. 그대로 들고 옆에 있는 유인 카운터에 가면 탈의실 열쇠와 수건을 내어준다.
일본 목욕탕의 편리한 점은 이미 목욕탕 내부에 샴푸, 린스, 바디워시, 클렌징폼이 구비되어 있다는 점이다.
그냥 밖에 나왔다가 갑자기 목욕 바이브가 될 때 가볍게 다녀올 수 있겠다. 맨발로 걷는 목욕탕의 나뭇바닥을 좋아한다.
화살표를 따라 계단을 올라가면 탈의실이 나온다. 일본의 목욕탕 탈의실은 사진 촬영 금지를 넘어 전자기기 자체를 꺼내지 못하도록 곳곳에 명시해 둔 점이 인상깊다.
목욕탕 내부는 꽤 아담한 편이었다. 나는 여전히 탕에 오래 있지 못하여 시원하게 샤워만 하고 왔다. 그럼에도 왠지 목욕탕에 왔다는 사실 자체로 힐링되는 기분. 우리나라와 같이 목욕탕 안에 사우나실도 있는데, 키오스크에서 티켓을 살 때 사우나 추가요금을 지불한 사람만 이용할 수 있다. 만약에 사지 않고 이용한 사실이 들통나면 당연하게도 벌금을 부과한다고 한다. 그런데 그걸 어떻게 확인할 수 있는 걸까...
나의 본 목적이었던 커피우유를 발견했다. 어쩜, 병의 디자인마저 사랑스러운가. 당장 몇 병이고 꺼내 먹고 싶게 생겼다. 아, 참고로 내가 마신 건
자판기 옆에 있는 냉장고 속 밀크커피다. 이 커피는 조금씩만 내놓고 판매하고 있길래 더 궁금해져서 샀다. 200엔 정도했다.
우유 외에도 라무네, 탄산음료 등도 판매하고 있다.
카운터 옆에 휴게 공간이 있어서 앉아 마실 수 있었다. 심지어 여기 카레 같은 밥도 판다.
그런데 내가 간 날은 여기서 장기 대회를 열고 있는 것 같았다. 휴게 공간이 사람들로 꽉 들어차있었고, 경기의 열기가 가득했다. 난 구석 의자에 앉아 어깨를 안쪽으로 만 채 커피우유를 쪼르륵 마셔댔다. 맛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