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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드리 될뻔 Jul 19. 2022

지금 들리는 소리

   

옛날 옛날 아주 옛날에는

9교시라는 수업이 있었다. 고등학교 정규 수업이 7교시에 끝나면 8, 9교시에는 보충 수업을 하였다. 하고 싶은 사람만 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학생이 거의 강제로 해야 하는 보충 수업이었다. 물론 9교시 이후 저녁 식사를 하고 다시 특별 보충이라는 것도 있던 그런 시절의 이야기다. 

나는 과목이 국어인지라 보충 수업이 거의 매일 있었다. 솔직히 학생들에게 8, 9교시는 힘들고 고달픈 시간이다. 종일 앉아 있어 몸도 피곤하고 하고. 싶지 않아도 강제로 해야 하니 맘도 피곤하다. 피곤한 사람의 가장 큰 특징은 여유가 없어지는 것이다. 여유가 없으니 작은 일에도 쉽게 짜증이 나고 한 번 발동한 짜증은 내 맘속에만 갇혀 있지 않고 수시로 삐져 나오기 마련이다. 한숨으로 나오기도 하고 낮은 욕설로 나오기도 하고, 가끔은 갑자기 크게 소리를 지르기도 한다. 그렇게 발산된 온갖 짜증이 공중에 붕붕 떠 다니니 짜증이 없던 학생에게도 짜증이 전염되고 너나 나나 할 것 없이 조금씩 짜증이 나고 괜히 화가 나는 그런 시간이다. 


고3은 특히나 그 강도가 심했다. 너희는 고3이다. 이런 사실 명제가 협박으로 통하는 시간을 꾸준히 버티다 보니 학생들이 본래 가지고 있던 여유와 회복 탄력성이 점점 낮아지고 표면만 건드려도 툭 하고 무언가 튕겨 나올 판이다. 그나마 맘 잡고 공부 좀 할라 치면 일찍 끝나고 돌아가는 학생들의 소란스러움이 귀에 들린다. 책상 움직이는 소리, 부르는 소리, 발자국 소리, 운동장에서 축구하는 소리. 소리는 그 성질이 가벼운가? 항상 아래에서 위로 올라오는 느낌이다. 

보통 인문계 고등학교는 고3 교실이 제일 위층에 있다. 학교에 제일 일찍 와서 제일 늦게 가는 아이들, 귀찮아서 매점도 덜 가게, 귀찮아서 운동장에도 덜 나가게 아니 1, 2학년들 오가는 소리로 수업 방해받지 않도록 배려하기 위해 제일 위층에 주로 배치한다. 


고3 남학생들과 9교시 수업을 하고 있었다.


 난 남고에서 10년을 보낸 여교사로,  어느 순간 남학생들이 제법 귀엽게 느껴지기 시작하면서 남고 생활이 재미있어졌다. 그날도 그런 고3 남학생들과 9교시 수업을 하고 있었다. 무언가 내 흥에 겨워 수업을 하고 있는데, 

“샘, 쟤들 좀 조용히 시키면 안 돼요?”

“누구?”

갑자기 한 학생이 화가 난 목소리로 퉁명스럽게 말한다. 그 학생은 내 물음에 대답은 하지 않고 바깥으로 눈을 돌린다. 그제서야 온갖 소리가 나에게도 들린다. 교사들은 계속 자기가 말을 하니 종종 세상을 잊는다. 세상 만물이 다 자기에게 귀 기울인다고 자주 착각을 한다. 

“쟤들, 너무 시끄러워요. 아 집중이 안 돼요.”

“쟤들 1, 2학년 아니니?”

“맞아요. 아 고3 공부하는 거 안 보이나? 왜 저렇게 시끄러운 거야?”

다른 학생들도 이구동성으로 한 마디씩 보탠다. 갑자기 조용하던 교실이 웅성웅성 살아나면서 아이들이 고개를 들고 문득 하늘을 보거나 주변을 둘러 보거나 친구와 잠시 수다를 나눈다. 아까까지 있는지 없는지, 숨은 쉬고 있는지 알 수 없던, 마치 없던 존재같은 아이들이 살아난다. 

“야, 봐 줘라. 집에 간다고 신나서 저러는데.”

“우리는 집에 못가잖아요.” “시끄러워요.” “혼 좀 내야 해요.” “샘이 가서 좀 혼내주고 오세요.” 

신이 났다. 그러는 모습이 나 또한 밉지 않으니 나도 신이 났나 보다. 


“저 소리, 쟤들이 내는 소리 아니야.”


“저 소리, 쟤들이 내는 소리 아니야.”

“무슨 말씀이세요. 쟤들이 내는 소리 맞아요.”

“야, 너희들이 1, 2 학년 때 어땠니?”

아이들이 아무 말 안 한다. 약간의 시차를 두고 피식 웃는 아이들이 보인다. 

“너희들도 1, 2학년 때 저렇게 소리내고 다녔잖아. 축구한다고 시끄럽게 소리지르고. 지금 들리는 소리, 너희들이 그때 낸 소리야. 작년에 재작년에 너희가 낸 소리가 그게 지금 들리는 거야.”

아이들이 웃는다. 

나도 잠시 웃는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하교하는 학생들의 소란도 사그라들고 학교에는 땅거미가 내린다.   


   

학생도 교사도 고단했던 9교시 수업, 고3이라는 이유로 자발적 타발적 차단을 해야만 했던 시절, 고단함도 짜증스러움도 추억으로 기억되는 시절.     


내가 이 이야기를 해 주니 누군가 물었다. 

“그래서 애들이 그 다음부터 더 이상 짜증을 더 안 낸 거야?”

“그럴 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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