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스쳐가는 경험을 되새기기 위해

by 승마표류기

지금까지 정말 열심히 살아왔습니다. 하지만 제 성격상 항상 부족함을 느꼈습니다. 나 스스로가 목적을 세우고 이를 이루려고 노력하려는 병적인 성격을 지닌 나는 항상 나를 채워줄 무언가가 필요했습니다. 그렇게 시작한 것이 말과 함께하는 운동이었고 작은 목적들을 함께 이루어 가는 것이 행복했습니다.


-메모의 시작-

제 인생에서 국내외 교관, 선수, 수의사, 장제사, 트랙 라이더 등 말로 먹고사는 다양한 직업군들을 만날 수 있는 경험은 최고의 행운이었습니다. 이러한 전문가들과 말이라는 공통된 관심사가 있었기 때문에 수많은 수다를 통해 정보를 공유할 수 있었습니다. 말주변도 부족하고 쑥스럼도 많은 저는 이때마다 말이 술술 나오는 저 자신에게 너무 행복감을 느꼈습니다. 이러한 설렘을 간직하고 공유했던 정보들을 잊지 않기 위해 틈틈이 적어뒀던 메모들이 이 글의 초석들입니다. 이러한 경험적 지식이 다른 사람들의 상황에 꼭 들어맞진 않겠지만, 이 글을 읽는 누군가 내가 몸소 겪은 생생한 경험을 간접적으로나마 접한다면 현장에서 실수를 조금이나마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먼 옛날 나이가 많은 추장들이 부족원들에게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해 줌으로써 시행착오를 반복하지 않고 더 발전할 수 있도록 도왔듯이 내가 겪었던 시행착오나 경험들을 다른 이들한테 소개해 주고 싶었습니다. 그렇다고 제가 엄청난 실력이 있어서 그런 것은 절대 아닙니다. 하지만 엄청난 행운은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말에 관한 한 최적의 인프라가 갖춰진 곳에서 최고 수준의 전문가들과 함께 생활할 수 있었던 것이 그 한 가지입니다. 또한 지금까지 운 좋게도 다양한 말 친구들을 만났습니다. 예민한 말(스위프트), 무거운 말(KRA펠로우), 악벽이 있는 말(필란더), 다리가 짧은 하프링거 종(오넬라, 오노라), 경주퇴역마(쿠키), 승마용 말(헌트레스), 독일 말(돈카타니), 호주 말(체스터), 미국 말(쿠거) 등 수많은 말들을 만났지만 마종 및 성격도 제각각이었습니다. 솔직히 해외 동영상에 나오는 정말 좋은 말이나 선수들이 타는 훈련이 잘된 말, 고가의 말들은 구경은 해 봤지만 타 본 경험은 거의 없습니다. 제가 다양한 말을 탄 경험은 우리나라의 실정에 딱 맞는다고 생각됩니다. 대부분의 한국 승마장의 현실을 아는 독자라면 공감이 갈 것입니다.


-경험하고 기록하고 공유하라-

나의 글은 나의 생각과 느낌을 적은 경험적 지식이 전부입니다. 사실 이런 지식들은 나부터 필요했습니다. 승마를 우연히 접했지만 스스로 공부하기엔 교육 환경이 너무나도 척박했습니다.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해 승마 교재를 찾으면 대다수가 외국 서적의 번역본이어서 한국 문화에 맞지 않는 부분이 많았고, 심지어 책에 나오는 용어와 실제 마장에서 쓰는 용어에서도 차이가 있었습니다. 사실 한국 승마장에서 쓰는 용어는 일본식 용어도 있고, 선수들의 경우에는 승마를 배운 나라(독일, 프랑스 등)에 따라 다른 용어를 쓰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말이 정말 다릅니다. 외국 서적에 나오는 말들은 승마용 말이자 훈련이 잘된 말을 기준으로 합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승마용 말보단 경주 퇴역마나 조랑말 같은 말로, 승마가 비전공인 말들이 대부분인 현실입니다. 이러한 악조건 속에서도 운 좋게 최고의 전문가들을 만났고, 그들의 경험과 노하우를 배울 기회가 있었다는 것을 진심으로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이 글은 100% ‘리얼’이며, 땀내 가득한 기록입니다. 솔직히 굉장히 신나는 일을 했을 때, 또 새로운 무언가를 발견해 냈을 때 다른 사람에게 미치도록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었던 것 같습니다. 또한 몸과 마음 곳곳에 남아 있는 즐거움의 여운을 오랫동안 간직하고 싶어서 이렇게 메모를 하고 글을 쓰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지금도 틈틈이 기록을 남기고 있고, 앞으로도 말에 오르는 한 기록은 계속될 것입니다. 말은 인류와 함께한 역사도 오래되었고 다양한 이야깃거리가 있습니다. 이런 다양한 변수들에 따라 에피소드는 다양해지고 나의 글은 풍부해집니다.


-부끄럽지만 세상 밖으로-

지금까지 쭉 적어온 기록을 정리하면서 얼마나 고민했는지, 얼마나 많은 전문가를 만나고 관련 서적을 들춰보았는지 똑같은 설명이라도 초보일 때 이해하던 것과 얼마간의 시간이 지난 후 다시 이해하는 것이 얼마나 다른지 알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그동안의 경험을 통해 이해의 폭을 넓히고, 재해석할 수 있는 능력이 생겼다고 할까요? 동일한 내용이었지만 경험이 가미된 지식은 스스로 이해하는 데 훨씬 큰 도움을 주었고, 나의 기억을 보다 생생하게 일깨워 주었습니다. 처음 시작하는 승마인, 또한 일정 단계에 오른 승마인들은 각자의 경험에 따라 이 글을 받아들이는 정도가 다르리라 생각됩니다. 하지만 같은 승마인으로서 충분한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한편으로는 나의 주관적인 기록을 세상에 공개하기가 부끄러웠습니다. 하지만 나와 같은 고민에 빠졌던 승마인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다는 생각, 작은 날개를 달아주고 싶은 마음이 더 컸기에 세상 밖으로 공개하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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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 : 아씨방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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