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물의 풍경>전
‘위드 코로나’가 시행되었지만, 여전히 팬데믹 이전의 일상은 도달할 수 없는 환영처럼 우리의 머릿속을 떠돌아다닌다. 경험하지 못했던 질병 앞에 우리가 당연하게 누리던 생활과 기존의 질서가 완전히 무력화됐다. 팬데믹을 하루빨리 종식하기 위해 세계 각국은 새로운 질서를 만들기에 여념이 없다.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은 포스트 코로나를 논하며 앞으로 인간의 삶에 어떤 변화가 찾아올지 끊임없이 예측하고 있다. 지금 우리 앞에 놓인 이 시대를, 이 상황을 도대체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 모든 것인 멈추어버린 것 같은 지금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일상을 큐레이팅 하는 공간’을 모티브로 현대미술을 비롯한 다양한 동시대의 문화예술 콘텐츠를 선보이는 공간 스페이스 이수에서 열리는 전시 <사물의 풍경>은 팬데믹 상황에서 점점 무력감에 잠식되고 있는 현대인에게 일상의 새로운 감각을 제안한다. 전시에 참여하는 3인의 젊은 작가 밍예스 프로젝트, 서윤정, 연진영은 정체된 ‘상태’이기를 거부하고 스스로 ‘풍경’으로 거듭나는 능동적인 에너지를 발산한다. 이들의 작업은 공간 안으로 침투하고 융영하면서 우리의 시공간을 낯설게 바라보게 한다. 작업은 정지된 사물의 형상을 하고 있으면서, 우리로 하여금 새롭고도 내밀한 영감을 길어 올리도록 하는 친절한 안내자로 역할 한다. 사물들은 우리가 머무르는 시공간을 여러 풍경이 존재할 수 있는 미지의 영역이자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크고 작은 우주로 진화시킨다. ‘격리’, 또는 ‘재택’이라는 단어로 어쩔 수 없이 머물러야만 하는 곳으로 전락했던 공간은 ‘일상의 미장센’을 발굴할 수 있는 무궁무진한 곳으로 탈바꿈한다.
유민예가 이끄는 밍예스 프로젝트는 위빙 방식으로 제작된 오브제를 바탕으로, 가공된 식물의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이번 전시에서 밍예스 프로젝트는 이수화학 로비에 놓인 가구를 뒤덮는 새로운 시도를 통해, 건조한 공간에 녹색의 이미지를 부여하고 무심코 지나쳤던 일상의 장면들을 다시 들여다보도록 이끈다. 특히, 밍예스 프로젝트에서 주목하는 이끼는 수면 아래에서 뭍으로 최초로 진출한 선태식물에 속하며 현재까지 발견된 종류만 약 2만여 종에 달하는 거대 식물 집단이다. 뿌리, 줄기, 잎의 구분이 뚜렷하지 않은 이끼는 땅, 바위, 나무 등에 서식한다. 이러한 익명의 이끼들은 우리가 식별할 수 있는 가장 작은 식물이자, 어디에서나 발견할 수 있는 흔한 이미지로 존재한다. 밍예스 프로젝트는 이끼를 비롯한 식물들을 우리에게 익숙한 공간으로 소환한다. 이끼 혹은 이름 모를 식물을 떠올리게 하는 오브제들은 메마르고 건조한 도시의 프레임 안으로 틈입한 낯선 침입자로, 공간을 점유하는 동시에 강인한 생명력을 연상시킨다. 시들지 않는 작가의 작업은 모순적인 동시에 우리가 늘 꿈꾸는 녹색의 풍경을 언제 어디서나 가능하게 한다.
페인팅과 드로잉을 아우르며 회화 중심의 작업을 전개하고 있는 서윤정 작가는, 독자 레이블 ‘서윤정회사’를 만들고 예술을 평범한 일상 속에서 보여주려는 시도를 해오고 있다. 순수미술을 전공한 작가는 페인팅과 드로잉을 아우르는 회화 중심의 작업을 전개한다. 그의 작업은 서정적이면서 목가적인 정서를 자아내는 일련의 이미지들로 구성되어 있다. 작가는 원, 삼각형, 사각형 등 추상적이고 기하학적인 형태에서부터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식물과 새 등을 자신의 작업에 등장시켜 인생의 낭만romance을 이야기한다. 이 로맨스는 비단 사랑에 대한 것이 아닌, 고난과 역경 속에서도 잊지 말아야 할 삶을 지탱하는 희망 같은 것이다.
서윤정은 세라믹 스튜디오 ‘선과선분’ 김민선과의 협업을 통해 만들어진 화병 등 새로운 작업들을 이번 전시에서 공개하고, <Pool Drawing> 시리즈, 패브릭, 세라믹 등 작가가 진행해온 다양한 형태의 작업을 소개한다. 여기에, 전시장에 설치된 집 모형의 구조물 안으로 자신의 아틀리에 일부를 옮겨와 관객들과 공유하며 낭만적인 풍경을 연출한다. 이는 삭막한 도시에서 잠시나마 쉼의 순간을 만들고, 영감을 불러일으킬 작가의 내밀한 초대와 같은 것이다.
새롭고 낯선 방식으로 가구를 제작하는 연진영 작가는, 올해 9월 밀라노 디자인 위크에서 열린 크리스찬 디올의 <The Dior Medallion Chair>에 초청받아 메달리온 체어를 재해석한 신작을 선보이는 등 활발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유쾌하면서도 대담한 연진영의 작업 방식은 우리로 하여금 고정된 사고의 틀을 깨부수고 낯선 세계로 한 걸음 내딛기를 부추긴다. 작가는 재료의 변주를 이행하며 기존의 질서를 전복시키는 작업을 해오고 있다. 재고로 남겨진 패딩, 파쇄지, 알루미늄 체크판, 산업용 앵글 등 주목받지 못하거나 무심결에 지나친 의외의 재료들을 주목하고 재료 고유의 물성을 재해석한 작업을 선보여 왔다.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공업용 덕트를 활용한 신작 <duct tube> 시리즈를 선보인다. 산업 현장에서나 볼 법한 거친 재료들로 만들어진 작가의 가구는 틈을 비집고 들어와 우리의 일상적인 공간에 안착하여 새로운 풍경을 연출한다. 연진영의 작업에서 형성되는 감각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가구’를 떠올렸을 때 상상할 수 있는 안락함 혹은 평온함과는 거리가 먼 것이다. 이 낯설고도 불편한 사물에 익숙해지기까지 우리는 ‘망설임의 시간’을 거쳐야만 한다. 비일상적인 재료로부터 탄생한 작가의 작업은 우리가 쌓아온 일반적 범주의 가구와 공간의 개념을 흐트러트리고 새로운 사물로 바라보게끔 한다. 이 ‘망설임의 시간’을 통과하며, 우리는 버려진 것에서 아름다움을 발굴해 내고자 하는 작가의 공식을 체화하게 된다.
밍예스 프로젝트가 정체불명의 식물 이미지로 잠재된 우리의 상상력을 회복시킨다면, 서윤정은 집을 닮은 공간에서 작가가 구축한 낭만의 세계를 선보인다. 한편, 연진영 작가는 버려지고 낯설고 불편한 사물을 통해 새로운 아름다움을 제안한다. 이처럼 3인의 참여 작가는 팬데믹 상황 속 모든 것이 정지되고 침잠한 듯한 일상에서 그들이 전하고자 하는 고유의 메시지를 주고받는다. 작가들의 시각 언어는 그렇게 공간을 부유하며 평범했던 전시장을 낯설고 새로운 풍경으로 재구성한다. 여기에, 스튜디오 남산의 디렉터 DJ 이환이 믹싱한 음악이 전시장 곳곳에 더해져 감각의 영역을 확장한다. 전시는 오는 1월 23일까지.
<사물의 풍경>
일시 | 2021.10.13.~2022.01.23. 오후 1시~6시(매주 월⋅화요일 휴관)
장소 | 서울시 서초구 사평대로84 1층 스페이스 이수
참여 작가 | 밍예스 프로젝트, 서윤정, 연진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