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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새난슬 Dec 11. 2022

키우는 생활

사람이 아닌 것들을 위해 집을 몇 번씩 뒤집었다. 집 안은 자주 물바다가 되고 흙 바다가 되어 자연의 냄새가 물씬 난다. 물속에는 물고기 몇십 마리가 살고 있고 흙 위에는 거북이 한 마리가 살고 있다. 그 밖의 장소에는 인간 둘과 강아지 하나와 고양이 둘이 살고 있다. 여자 친구와 내가 살림을 합쳤을 때 반려동물은 고양이 둘 뿐이었는데, 강아지 하나를 입양하고 지금은 생각도 못했던 어류와 파충류까지 키우고 있다. 학교에서 특수동물 관련 수업을 들었을 때는 큰 관심 없이 동태 같은 눈으로 보기만 했던 애들을 지금은 우르르 키우고 있다.


일을 하던 도중 갑작스러운 충동이 첫 시작이었다. 집에서 일하는 사람은(사실 어디에서든 일을 한다면) 필연적으로 딴짓을 하게 된다. 내가 주로 하는 건 인터넷 들락거리기였다. 익숙한 사이트와 안 익숙한 사이트를 넘나들며 멍을 때리고 있으면 온갖 상념이 일을 못 하도록 한다.


그중 하나는 지난번 잠실에 사는 동기의 집에서 본 물고기였다. 걔네를 직접 볼 때는 머나먼 생물을 보듯 볼 수 있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나도 너무나 잘 키울 수 있을 것 같다는 믿음이 생겼다. 모아놓은 돈을 믿고 또 멋대로 동기의 경험을 믿으며 혼자 수족관에 갔다. 생물 봉투에 담겨 집으로 온 꼬리가 까맣고 몸통이 하얀 물고기는 한동안 베타라는 이름으로 살았다. 베타는 그 애의 종 이름인데 베타만큼 베타에게 어울리는 이름을 찾기가 어려웠다. 강아지에게 강아지라는 이름을 붙이는 것과 뭐가 다른가 싶은데 그때는 그랬다.


베타는 동족을 공격하는 습성이 있어 한 어항에 한 마리만 들어갈 수 있다. 알고 있지만 베타가 외로울지도 모른다는 핑계로 한 마리를 더 데려왔다. 두 번째 물고기의 이름은 공주로 지었다. 머리부터 꼬리까지 생김새가 너무나 공주여서 공주라고 이름을 붙였다. 두 번째 베타의 이름이 공주가 되면서 첫 번째 베타의 이름은 돌쇠가 되었다.


이제 더 이상은 늘리지 말자고 언니랑 약속했는데, 마침 큰 어항 안에 있는 구피가 암컷과 수컷이 함께 있어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다. 어디에선가 데려오는 게 아니라 자연스럽게 발생한다면... 

그렇게 1개월이 지났고 우리는 주말 데이트를 하기 위해 부천에 있는 아쿠아 카페에 갔다. 거기에는 소형에도 있고 대형어도 있고 거북이도 있었다. 물고기에 미쳐버린 여자 친구를 위해 아쿠아 카페에 갔다가 본인도 거북이에게 반해버리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3cm도 안 될 것 같은 거북이 여러 마리가 물 위로 올라갔다 내려가는 모습이 계속 눈앞에서 반복 재생되고 있었다.


"거북이 키워도 괜찮을 것 같아."


언니가 말했다. 그렇게 동헤르만 육지거북을 데리고 왔다. 손가락으로 집게 모양을 만든 것만큼 작아서 온 주의를 기울이며 키우고 있다. 어떤 생물이든 새끼 시절에는 쉽게 잘 죽는다고 해서 하루에도 몇 시간씩 지켜보고 있다. 원래 바깥에서 사는 애들이라 일정한 온도만 넘으면 데리고 나가 일광욕을 시켜도 된 댔다.


이름은 부기라고 지었다. 더 낫거나 좋은 이름은 떠오르지 않는다.


거북이는 아주 오래 살아서 얘가 자라는 동안에는 나도 언니도 같이 자랄 것이다. 육체적인 성장은 이미 멈췄지만 정신적인 성장은 계속될 것이다. 무언가를 키우는 건 보통 쉬운 일이 아니니까 자라고 싶지 않아도 자라게 될 것이 분명하다. 이상한 방향으로만 가지 않는다면 성장은 좋은 것이 틀림없다. 부기가 잘 성장할 수 있도록 돈을 버는 능력을 더 성장시켜야겠다. 부기 말고도 나한테 일생이 맡겨진 애들이 수십 마리나 되니까 나는 더 열심히 살아야만 한다. 열심히 사는 것은 지치는 일이지만 뿌듯함에 기대면 힘낼 수 있게 된다.



2022년 7월 작성

* 글쓰기 노동을 하고 있습니다

https://brunch.co.kr/@imyoursns/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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