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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새난슬 Jan 25. 2023

떠나온 고향에게 보내는

고등학생 시절 내 방에서는 풀끼리 스치는 소리가 자주 들렸다. 풀 위를 지나는 고양이들이 발정기를 맞아 야옹거리는 소리도 섞였다. 그곳의 고양이들의 귀가 잘린 것을 나는 본 적이 없다. 그 기척들을 느낄 수 있는 건 늘 한밤중이었다. 여름과 겨울의 경계가 선명해지는 어느 날, 깜깜해지고 풀들이 막 흔들리는 때에 바깥바람은 미세한 틈을 통해 안으로 흘러 들어오곤 했다.


자연스럽게 내 의자에는 겉옷이 한두 개쯤 걸렸다. 엄마는 당신은 절대 그러지 않으면서 내가 그러는 것은 내버려 두었다. 아마 진작 포기한 설득이었을 것이다. 무엇이든 제 자리에 두기 같은 것들. 일상 사이사이마다 빼곡하게 해내야 하는 것들. 말 없는 잔소리가 지나가면 나는 의자를 노려보았다. 그러면 갑자기 어깨가 무거워진다. 귀찮음과 번거로움이 합세하면 정말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이상하지만 투쟁하는 것처럼 옷걸이에 옷을 걸어둔 나는 침대에 드러누웠다. 바람이 앉았다 간 것 같은 그 이불에 몸을 구겨 넣으면 시원함과 따뜻함을 동시에 느낄 수 있다. 오묘해지는 것이다. 누운 채로 낮은 천장의 낡은 형광등을 한참 바라보고 있으면 그런 생각이 들었다. 세상은 굉장히 좁고 나는 그중에서도 제일 작은 사각형 안에 있는 것 같다고. 왜 이렇게 센티해지나 싶었는데 시계를 보니 아직 9시 30분이었다. 다만 여기에서는 벌써 가 더 어울리는 시간이었다.


집 근처에 단 하나밖에 없는 슈퍼마켓은 우리 엄마의 어린 시절을 알고, 정류장은 한참 뒤 해가 다 뜨고 나서야 올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 역시 엄마의 어린 시절을 대강 알고 또 내일이나 모레에 찾아올 뭔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내가 기다리고 있는 그게 무엇인지 정확한 단어로 표현하기가 어려웠다. 나는 느지막하게 문을 열면서 어두워지면 아무런 기다림 없이 문을 닫는 슈퍼마켓이 싫었고 아침이 되어야 오는 버스도 싫었다. 하지만 슈퍼와 버스는 내가 매일 마주쳐야 하는 것이었다. 지겨운 얼굴들이다.


19살이 되자마자 여러 번 이사를 했다. 새로운 장소에 빠르게 적응하는 것은 지나온 날들에게 가진 내 기분의 성질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빨리 지하철이, 그것도 9호선까지 있는 곳으로 옮겨가고 싶었다. 거기에 뿌리를 박으며 살고 싶었다. 하지만 내 뿌리는 여전히 시골에 있다. 나고 자라면서 살아온 기억들은 겹겹이 쌓여 내 얼굴이 되었다. 아침에는 화장실로 달려가 급하게 얼굴을 씻어 내렸다. 엄마를 닮아 두꺼운 피부에 물방울이 자꾸 맺히면서 떨어지길 반복했다. 이번 명절에도 고향에 내려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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