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새난슬 Jun 28. 2023

소설 쓰기에 대한 단상

소창 기말 과제

무엇을 소설이라고 부를 수 있는지 여전히 모르겠다. 내가 쓴 게 소설이 맞는가 싶다. 산문과 운문을 구분할 수는 있는데 소설이라는 장르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모르겠다는 말은 신중하게 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는데 마음대로 잘 되지 않는다. 세상에 마음대로 되는 게 얼마나 있겠냐는 생각도 같이 오는데, 글쓰기는 잘하고 싶은 영역에 있는 것이라 더 마음이 복잡하다. 그런데 누군가 무엇이 소설이냐고 물어오면 어떻게든 대답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대답이 엉망진창이어도 아무튼 소설이 무엇인지에 대해 고민하는 게 지금으로서는 중요한 지점이라고 느껴진다. 나중에는 소설에 대해서 더 잘 알게 되고 더 잘 읽게 되고 더 잘 쓰게 될 수도 있겠지만, 그것은 나중의 일이고 지금의 나는 소설 쓰기의 시작 단계에 있다.


첫 소설 쓰기 후기

평생 소설은 못 써보고 죽을 줄 알았다. 생각을 그대로 옮겨 적은 문장인데, 나에 대한 기대가 전혀 없었던 것이 새삼스럽다. 소설에는 시공간, 사건, 인물이 필요하고 겉으로 드러나는 것 외에 시의성 등 현실과 관계를 맺고 있는 어떤 지점이 있어야 한다는 압박이 있다. 어떤 소설을 쓰냐에 따라서도 세세한 부분은 다 달라지겠지만, 내가 좋아하는 소설들은 대체로 겉으로 드러나는 것 외에 다른 이야기를 이끌어낼 명분이 있었다. 그래서 나도 그렇게 써보고 싶었다. 잘 안 됐고 흔한 변명이지만 시도했다는 것에 의의를 두고 싶다. 

누구도 나에게 소설을 쓰라고 말한 적 없었는데 예전부터 몇 번 소설을 쓰다 말고 쓰다 말았다. 소설 읽기는 꾸준히 좋아했기 때문에 써보고 싶은 마음이 있어서 그랬던 것이다. 결국엔 덩어리만 있거나 덩어리라고 부르기에도 어색한 문장들만 남곤 했다. 진득하게 쓰지를 못해서 그 짓을 여러 번 했더니 손이 잘 안 가는 파일만 몇 개씩 쌓였다. 물론 다시 들여다보지 않아서 몇 달 뒤에는 통째로 삭제해 버렸다. 입학하고 나서는 소설 창작이 졸업을 위한 요건이기 때문에 그냥 썼다. 강제성을 가지고 쓰다 보니까 써졌다. 완성도를 생각하면 처참한 것 같다가도 어쨌든 시작-중간-끝을 어떻게든 이어가서 마지막 문장을 써냈다는 것이 뿌듯했다.

일단 소설을 써야 한다면 어딘가로 가고 싶어 하는 인물을 쓰고 싶었다. 가장 쉬운 것이 장소의 이동이라고 생각해서 시골에 사는 고등학생을 주인공으로 삼았다. 시골 풍경과 생활에 만족하면서 사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만 생각하면서 썼다. 내가 겪은 시골이 지루했기 때문이다. 여기가 아닌 다른 곳으로 가고 싶은데 그러기 어려운 상황, 그런 미래가 온다고 해도 아직은 너무 멀게 느껴지는 그런 답답함을 쓰고 싶었다. 잘 되었는지는 모르겠다. 인물의 욕망을 설정하고 난 뒤에는 그전까지 소설을 쓸 때 부딪혔던 어려움이 조금은 덜했던 것 같다. 사실은 인물이 욕망을 가지고 있는 상태에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움직여야 할지는 감이 잡히지 않았다. 그래서 일단 떠오르는 이미지를 가져와서 썼다. 운석 충돌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 주인공과 친구가 길을 걷는 풍경, 시골집 안에 모여 앉은 여자들이 머릿속에 산발적으로 떠오른 이미지를 글로 가져온 것이다. 서사를 진행하고자 마음먹지 않고 그냥 이미지를 이어 붙인 것이다 보니 소설의 어떤 설득력이 떨어진 것 같기도 하다.

다시 쓴다고 하면 이야기를 더 덧붙이고 이미 있는 이야기를 수정할 것 같다. 인물이 깊은 관계를 맺고 있는 가족의 이야기도 더 파고들 것이다.     


소설에 대한 고민

1

생각이 말이나 글로 그대로 옮겨지지 않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래서 ‘생각 좀 하고 말해’라는 말이나 ‘퇴고’라는 것이 있는 것 같다. 나는 생각을 할 때 생각하고자 하는 것에 집중이 잘 안 된다. 처음에는 그게 떠올랐다가도 그 주변의 것들까지 같이 온다. 생각나는 것들을 하나씩 집어서 말이나 글로 옮겨놓으면 다시 듣거나 읽었을 때 내가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모를 때가 자주 있다. 예전부터 그랬다. 그래서 소설 쓰기가 더 어려웠다. 무엇부터 시작을 해야 하는지 소설 쓰기에는 정답이 없으니까. 사람마다 시작점은 다르고 난 어디에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가늠하기가 어려웠다. 인물의 욕망을 설정한 것으로부터 소설을 출발시키긴 했는데 다음에는 또 어떤 욕망을 가져오게 될지 모르겠다. 강제성이 없는 지금은 다음 소설에 대한 생각도 안 하고 있다. 그런데 써야 하는 순간은 반드시 온다. 학교를 졸업하기 전까지는 몇 번이고 있을 것이다. 창작에 대해서 꾸준히 생각하는 태도가 중요할 텐데 너무 다른 장르에만 치우쳐져 있는 게 아닌가 싶어 고민이다. 물론 소설 읽기는 꾸준히 하고 있는데 소설 쓰기에는 손이 잘 안 붙는다. 2학기에는 지금보다 흥미가 더 붙을 것 같기도 하다. 선생님들께 배우기 전보다는 훨씬 잘 읽고 잘 쓰게(상대적으로) 되어서.     

2

작가는 소설을 쓸 때 어디에서부터 어디까지 보여줘야 하는 것일까?  나는 다 보여줬다고 생각했는데 독자는 그렇게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그 간극을 조절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 소설을 배우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어떤 선생님께서 지금은 그냥 더 보여주라고 말씀하셨던 게 생각난다. 너무 많이 설명하게 될까 봐, 그래서 촌스러워지는 것도 걱정이다. 사실 지금 나는 어떻게 보일지 걱정하는 것보다 일단 입을 닫고 쓰는 게 더 중요하겠지만.     

3

첫 문장을 쓰고 나면 그 뒤는 그 첫 문장의 성립을 유지하기 위해 뒷받침 역할을 하는 수백 수천 개의 문장이 이어진다. 그래서 첫 문장이나 첫 문단이 중요한 것 같다. 거기에 써둔 게 마음에 들어야 그 뒤로 순순히 따라가 줄 마음이 든다. 이 시점에서 이미 소설이 작가보다 앞선 주체성을 가진 것 같다. 다음번에는 이목을 끌거나 단순히 내 흥미를 위한 도입부가 아닌 소설과 더 직접적인 관계가 있는 장면을 가지고 와서 써야겠다. 그 지점을 잘 찾는 것도 작가의 역량인 것 같다. 소설을 쓰면서, 쓰고 난 뒤 여러 개의 고민이 생겼지만 결국에는 하나의 결론으로 마무리되고 있다. 일단 그냥 쓰자는 것.     

4

소설이든 시든 무언가를 써서 내놓는다는 건 내가 세상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를 약간의 가공을 거쳐 보여주는 것이다. 그건 옷을 벗고 돌아다니는 것과 얼마나 다른가 싶다. 사실 인간한테는 그런 변태적인 욕구가 다 있으니까 자꾸 창작을 하고 창작물이 세상에 나오는 것 같다. 남의 창작물을 보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창작물이 곧 작가가 인지하는 세상의 모습이라는 점을 잊으면서 읽으면 좀 더 편안한 마음으로 남의 글을 읽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내 글을 쓸 때는 타인의 시선과 정서를 끊임없이 신경 쓰게 된다. 소설에서 작가는 자율성을 얼마나 가질 수 있을까? 자율성을 가지는 건 그냥 머릿속에서 소설의 요소가 떠다닐 때나 가능한 것 같다.     

5

어떤 문학이든 밸런스가 중요한 것 같다. 소설이라는 장르는 구성적 요소가 많으니까 특히 더 그럴 것이다. 주인공이라는 초점화 인물이 한 명만 등장할 수도 있지만 보통은 다수의 인물이 소설에 등장한다. 한 명의 인물이 주인공 자리를 차지했을 때 다른 인물들에게는 얼마만큼의 역할을 부여해야 할까? 이번 소설을 쓰면서 주인공의 욕망에 대한 설득력이 빈약한 것도 그렇고 주변 인물인 엄마와 친구가 가진 서사도 크게 드러나게 쓰지 못해 아쉽다. 내용에 따라 다르겠지만 인물들은 인간이 가지는 주체성을 가지고 있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인물이 아닌 도구가 되고(물론 큰 범위 안에서는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것이 도구의 영역 안에 들어가겠지만) 소설에서 읽어낼 수 있는 입체적인 것(현실적이라는 감각)들이 희미해질 테니까.

작가의 이전글 진은영 시 논평 : 구분지을 수 없는 세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