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 데 없는 일에 바쁜 조직 문화

보고의, 보고에 의한, 보고를 위한 조직... 그리고 복지부동

by mpd 알멋 정기조


흔히들 우리나라의 노동생산성이 굉장히 낮다고 합니다. 주로 재계에서 주장하는 바인데, 그 주장을 곧이곧대로 들을 것은 아니지만 노동생산성이 전반적으로 좋은 편이 아니라는 말에는 고개를 끄덕이게 됩니다.


그 원인에 대해 제피셜대로 진단해 보면 이유는 세 가지입니다. 첫째는 재벌 리스크, 둘째는 노조 리스크, 셋째는 프로세스 리스크입니다. △재벌 리스크라 함은 기업이 기업의 이윤이 아닌 재벌 일가의 이익을 위해 움직임에 따라 생기는 리스크입니다. △노조 리스크라 함은 노조가 조합원의 이익이 아닌 노총 전체의 연대 투쟁이나 정치 관여를 위해 움직임에 따라 생기는 리스크입니다. 여기에서는 두 가지는 논하지 않겠습니다.


△마지막의 프로세스 리스크는 불필요한 업무 절차와 책임 회피 등으로 생기는 리스크입니다. 연관검색어(?)는 '페이퍼워크(문서작업)' '보고체계', 그리고 '복지부동' '권한집중'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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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서 만들고 보고하는 데 시간 다 쓴다


제가 국회 보좌관을 그만두고 민간으로 나와서 종종 이런 말을 했습니다. '국회는 대단히 효율적인 조직이다', '공무원이 복지부동이라고 하는데 민간은 그보다 더 하다'... 공감이 가십니까?


이를테면 이런 것입니다. 보통 조직에는 보고 체계가 있습니다. 대리 같은 평 직원들은 팀장에게 보고를 하고, 팀장은 부서장에게 보고를 하고, 부서장은 임원에게 보고를 합니다.


그러다 보니 이와 같은 일이 벌어집니다. ①최초 문서를 기안을 하면, ②팀장이 수정 요구를 하고, ③수정하여 다시 결재를 올리면, ④부서장이 다시 수정 요구를 하고, ⑤재수정하여 다시 결재를 올리면, ⑥임원이 원점에서 재검토를 지시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결과적으로 일이 된 것은 하나도 없는데, 6단계를 거치면서 종일 시간만 쓰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다시 문서를 재기안해서 또 6단계를 거쳐 올라갑니다.


그나마 결재 단계가 3단계일 경우, 그리고 각 단계에서 재수정 지시가 없다는 것을 가정할 때에 이렇습니다. 4~5단계 이상 거치는 조직이나 까다로운 문서 수정이 일상화된 조직에서는 그 일이 훨씬 배가됩니다. 이 얼마나 비효율적입니까.


또 하나의 문제점은, 윗분들에게 잘 보이려고 하는 중간의 책임자들 때문에 일이 몇 배로 늘어난다는 것입니다. 일단 내용을 잘 모르는 중간 책임자들을 이해시키기 위한 문서 작업과 설명이 필요하고, 윗분들의 돌발(?) 질문에 대비한 참고자료를 붙이느라 또 일이 추가됩니다. 무언가 불분명한 부분이 있으면 '이대로 보고할 수 없다'면서 명쾌한 답을 찾아내라는 요구도 받습니다. 차라리 내가 직접 가서 보고하고 설명하면 간단할 것을.


만약 대리가 중간 단계를 건너뛰고 바로 부서장이나 임원에게 '직보'를 하면 어떻게 될까요? 중간에 '건너뜀'을 당한 책임자는 굉장히 싫어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왜냐하면 첫째로 본인의 의중이나 기호가 문서에 반영이 되지 않은 것을 기분 나빠할 것이고, 또 나중에 본인이 모르는 질문이나 지시가 위에서 날아왔을 때 '그것도 모르나' 라는 면박을 당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 무엇보다 '아랫것'들이 '윗분'들을 직접 만나는 그 자체가 쉽지 않습니다.)


반면, 국회에서는 (모든 경우가 그렇지는 않지만) 말단 인턴 비서라도 ①국회의원에게 직접 카톡이나 문자로 보고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②답장을 통해 수정 지시를 바로 받습니다. 그러면 ③수정하여 다시 국회의원에게 카톡·문자로 보고하고 실행하면 끝입니다. 일반 회사로 따지면 말단 사원이 CEO에게 직접 보고하고 결재받는 것과 같습니다. 저는 그래서 개인적으로 국회에서 일반 회사로 나왔을 때 이런 보고 문화가 정말로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마음 같아서는 바로 최고책임자에게 카톡으로 올려버리고 싶었지만 할 수 없었죠.


세월호 사고 당시에 현장에서 조명탄 하나 터뜨려 달라고 요청했더니 40분이나 걸렸다고 합니다. 이유는 뻔합니다. 위로 보고를 몇 단계는 거쳐 올라가야 조명탄 한 개라도 실행할 수 있었던 것이고, 그마저도 중간에 답이 바로 안 와서 전부 '대기'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현장이 얼마나 답답했을지 짐작이 갑니다.


이것은 완벽히 본말전도입니다. 목적은 따로 있는데 수단에 집착하다가 일이 진전이 안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현상이 우리나라 도처에서 벌어지고 있습니다.


그럼 위에서 문서를 직접 만들거나 아니면 대강의 방향이라도 지정해주면 일이 빠르지 않겠느냐는 생각이 드는데요, 그런 경우는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첫째는 윗분들이 직접 일하지 않고 보고만 받으려고 하기 때문이고, 둘째는 전체적인 그림을 미리 예상하지 못하고 앞에 종이로 갖다줘야만 일이 진행될 정도로 윗분들이 실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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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단락의 내용을 도식화해보았습니다. 국회의 경우에는 보좌관이 전체적으로 조망하고 관리하기는 하지만 직원들이 각자 특정 업무를 전담하면서 국회의원에게 직접 보고하고 결재를 받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는 국회가 소규모 조직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지만, 그렇다고 단지 소규모여서 보고 체계가 간단한 것이라고 치부할 수만은 없습니다.



똑똑한 사람을 뽑아서 바보를 만든다


우리나라의 취업 경쟁이 얼마나 치열합니까? 정말로 필요 없다고 할 정도의 스펙이란 스펙은 다 긁어모아서 이력서를 가득 채워도 떨어지는 경우가 부지기수입니다. 특정 업무에 꼭 필요한 능력을 갖춘 인재인가에 대해서는 물음표가 있을 수 있어도, 전반적으로 능력이 출중하고 재주가 좋은 인재들은 넘쳐납니다.


그런데 이렇게 똑똑한 사람들을 모아서 바보로 만드는 게 지금의 기업 문화이고 조직 문화입니다. 먼저 똑똑한 사람이 자기 능력을 펼칠 만한 구조가 아닙니다. 본인이 결정하고 추진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고, 그저 윗분들의 기호에 맞게 시키는 일이나 잘하면 됩니다. 자기 생각대로 문서를 만들었다가는 퇴짜와 함께 한 바가지 면박이나 당하기 일쑤입니다. 그리고 이게 사회생활이라고 참교육(?)을 받습니다.


열심히 일 한다고 보상을 받는 구조도 아닙니다. 내가 소속되어 있는 부서의 장이나 임원이 성과를 내도록 하는 것이 나의 임무입니다. 스포트라이트는 윗분들이 받을 뿐이고 나는 그저 그 윗분들의 손발이 되어 일하면서 그분들의 '인정'을 받을 뿐입니다. 그렇다고 진짜 열심히 일했다가는 윗분들의 지시를 도맡아 하는 신세가 됩니다(혹자는 이를 ATM 자판기에 비유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아이러니컬하게도 우수 평가나 진급은 다른 사람이 합니다. 열심히 일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윗분들 마음에 들도록 잘 처신(?)한 사람들, 또는 조직에서 연차가 많은 분들이 순서에 따라 좋은 평가를 받습니다. 그래도 불평이나 불만 없이 묵묵히 일을 해야 '오랜 시간을 걸쳐' 조직의 인정을 받게 됩니다. 이 안에서 내가 열과 성을 다해 일하면서 뭔가 기대하느니, 차라리 내 몸이라도 편하게 복지부동하는 게 낫습니다. 정작 잘해야 하는 것은 윗분들에 대한 아첨일 수도 있습니다.


그 결과 조직의 전체적인 역량은 뻔할 뻔자입니다. 매년 연초의 사업계획서에는 똑같은 말만 적혀 있고, 매번 뽑아내는 결과물은 거의 '카피' 수준입니다. 문서는 예전 선례를 찾아 '글자 바꾸기'를 하면 완성이 되고, 업무분장표에 없으면 조직 내에 그 일을 누구도 맡을 사람이 없습니다. 조직을 위한 일은 온데간데없고 윗분들의 심기를 관리하기 위거나 호기심을 채우는 일만 하고 있고, 가끔 혁신적인 리더가 나타나 뭔가 바꿔보려고 하면 조직 전체가 온몸으로 저항하고 나중에는 기어코 원래대로 다시 돌아갑니다.


부동4.jpg 「공무원임용령」 제31조 (승진소요최저연수)

* 상당수의 조직에서 이와 같은 '승진소요최저연수'를 적용합니다. 이는 결국 결정적인 흠결만 없으면 후배가 선배를 추월해서 승진하기가 힘들게 만듭니다.

* 출처 : 법제처 / 국가법령정보센터



누구도 책임지려 하지 않는다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이와 같은 답답한 조직 문화는 결국 복지부동을 낳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복지부동의 문제가 극한으로 터진 것이 바로 2014년 4월에 있었던 여객선 세월호 침몰 사고입니다.


세월호 사고는 우리나라 현대사를 바꿀 정도의 중대한 사고였습니다. 많은 어린 생명을 앗아갔던 그 자체도 충격이었지만 소위 '시맨십'이 실종된 선장 이하 선원들, 그리고 대형 악재 속에서 전혀 능력을 보여주지 못한 정부에 대한 분노가 폭발했던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대형 사고였습니다.


여러 원인이 복합적으로 있겠지만 가장 중요했던 것은 '권한집중' '복지부동'으로 평가됩니다. 그리고 이를 한 줄의 문장으로 정리하면 '누구도 책임지려 하지 않았다'입니다.


현장의 권한은 미약했습니다. 상부에 권한이 집중되어 있어서 누구도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결정을 내려줘야 할 상부는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이를 사람들은 컨트롤타워의 부재였다고 표현했습니다. 현장의 대응 능력이 부족했다는 분석도 있습니다만, 그보다는 결정을 하지 못하였다고 보는 게 옳습니다. 당시 민간 어선도 구조에 큰 몫을 한 마당에, 아무리 당나라 부대라도 구조 능력이 전혀 없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라고 믿고 싶습니다.


아무리 권한이 없더라도 상황 상 인명 구조가 절실했다는 것은 현장의 누구나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후 책임 소재나 추궁 문제 때문에 아무도 나서질 않았습니다. '내가 책임질 테니 당장 실행해!'라고 명령할 중간 지휘관조차 없었던 것입니다. 가만히 있으면 크게 다치지 않는데, 나섰다가 일이 터지면 그 책임을 뒤집어쓰지 않겠냐는 우려 아니었을까요? 철저한 복지부동의 사고방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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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월호 사고는 우리 사회의 깊은 병폐인 복지부동이 만든 대참사입니다. 절대 잊어서는 안 됩니다.



권한집중과 복지부동의 원인은?


각각의 원인을 살펴봅니다. 먼저 '권한집중'은 '불신'에서 시작됩니다. 부하든 대행이든 '위임'을 했다면 모든 걸 맡기고 그 사람을 믿어줘야 합니다. 병원에 치료하러 갔을 때 의사를 믿고 따르는 것, 재판 과정에서 변호사에게 모든 것을 맡기는 것, 이것이 바로 위임입니다. 의사를 못 믿는다면 그의 치료를 받을 수 있을까요?


하지만 일반적인 상황, 특히 근무관계에서는 정말 사람들을 못 믿는 것 같습니다. 내용을 리뷰해서 일일이 수정시키는 것은 기본이고 문서 폰트에 줄 정렬과 Bold 처리까지 일일이 지적합니다. 전문 디자이너한테 디자인 맡겨 놓고도 다 해가지고 오면 글씨 키워라, 그림이 세련되지 않다 별소릴 다 해댑니다. 자기는 디자인에 문외한이면서 말이죠. 모든 걸 나한테 가져와라, 내 결재 거치고 올려라, 결론은 간단히 말해 '너 못 믿겠다'입니다.


아니, 그럴 거면 왜 맡겼습니까? 자기가 직접 할 것이지.


반면 '복지부동'은 '무책임'에서 시작됩니다. '나는 다치기 싫으니 책임지지 않겠다'는 자세, 또 하나는 '일하기 싫다'라는 자세입니다. 직접 결정하지 않고 모든 일을 상부 또는 타 부서 등으로 미룹니다. 이게 가능한 것은 '잘못 일한 경우'보다 '일을 하지 않은 경우'에 대한 처벌 수준이 낮기 때문입니다.


물론 한 켠에서는 충분히 이해가 가는 부분도 있습니다. 특히나 일 터지면 '윗사람 지키기', '꼬리 자르기'가 난무하는 지금과 같은 상황이라면 더더욱 그렇습니다. 질렀다가 혼자 다 책임져야 하는 상황이 올 수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이런 복지부동의 자세가 정당화될 수는 없습니다. 회사나 공동체의 역할과 책임은 철저히 외면하는 것과 다를 바 없으니, 이런 사람이 회사나 공동체에 무슨 도움이 되겠습니까. 당장 짤라버려야죠.


부동2.jpg 파레토 그래프의 예

* 상위 20%가 80%의 성과를, 또는 전체 인원의 제곱근이 50%의 성과를 해낸다는 '파레토의 법칙(Pareto`s Law)'은 복지부동을 설명할 때 종종 인용됩니다. 이 법칙에 따르면 10,000명의 조직에서 2,000명이 80%를, 나아가 단 100명이 50%를 만들어낸다는 것입니다. 나머지는 거의 논다는 얘기?



권한과 책임의 비례, 그리고 위임과 신뢰가 필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권한은 갖고 싶어 하지만 책임은 지기 싫어합니다. 그러나 누군가 권한이 있지만 책임은 회피하는 사람이 있다면, 반드시 다른 누군가가 권한도 없으면서 책임을 떠안는 사람이 나올 것입니다.


문제는 이처럼 권한을 갖고 책임을 안 지는 사람이 조직 상부에 몰려 있다는 것입니다. 결국 우리나라의 조직들은 권한은 본인에게 집중시켜 여러 특권은 누리면서 책임은 온몸으로 회피하고 다른 사람에게 전가하는 사람들이 장악하고 있는 셈입니다. 그러니 우리나라의 노동생산성이 없죠. 권한과 책임의 비례가 필요한 이유입니다.


그리고 신뢰에 바탕을 둔 위임도 필요합니다. 위임은 대리나 대행과 다릅니다. 시킨 일만 하는 사람은 '대행'입니다. 반면 '대리'는 일정 권한 내에서만 어느 정도 결정권을 갖고, '위임'은 미리 내려받은 범위에서 권한을 포괄적으로 행사합니다.


문제 있는 조직은 구성원들에게 '대행'만 할 것을 요구합니다. 구체적으로는 문서 작성의 대행이죠. 제대로 된 조직이라면 구성원들에게 '위임'을 해야 합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위임이라는 것은 △수임자에게 포괄적인 결정권을 내려주고, △대부분의 사무를 수임자가 직접 전결로 처리하게 하며, △마지막에 최종 책임은 되레 위임자가 지고, △수임자에 대한 평가, 정확하게는 위임의 철회 시에는 단편적이 아니라 종합적으로 평가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러한 위임을 위해서는 당연히 수임자를 신뢰해야 하는 것이 먼저입니다. 맡겼으면 믿어야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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