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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진 Jan 25. 2023

 귀하에게 사랑 올립니다 (7)

일곱 번째 편지


 

나의 귀하에게


 요즘의 나는 바빴습니다. 할머니의 장례식을 다녀온 이후로 여태까지 한 번도 쉬지 못하고 열심히 일만 하면서 지냈어요. 그로부터 열흘 남짓 지났군요. 이번 달은 당신에게 고마울 일만 가득했습니다. 내 몸과 마음이 지쳐 제대로 표현하지 못했던 것 같아요. 오늘도 편지를 쓰는 시간을 빌어 당신에게 진심 어린 고마움을 전하겠습니다. 몸을 부술 듯이 몰아치는 파도를 배경으로 서있는, 폭풍 안의 등대처럼 듬직히 길을 비춰준 당신 덕분에 인생 최악의 시기를 보내고 있는 나는 이렇게 건재하고 행복합니다.

 당신은 내가 해야만 하는 일에 오롯이 집중할 수 있게 대신 환경을 정리하고, 일에 책임을 다 하면서도 끊임없이 나를 배려했습니다.


 13일 새벽 5시 무렵, 할머니의 부고를 들은 나는 집을 떠날 준비를 하면서도 아무런 경황이 없어 넋이 나가 있었어요. 실감이 나지 않아서 눈물도 흘리지 못하고 옷을 갈아입다가도 멈칫하며 한숨만 내쉬었죠. 당신은 곧장 같이 잠에서 깨어서는 묵묵히 짐을 챙겨주었습니다. 내가 혼자였다면 전혀 신경 쓰지도 못했을 그런 것들이요. 핸드폰 충전기와 현금, 칫솔와 치약, 절망스러운 상황에서도 챙겨야만 하는 일상의 작은 부분들 말이에요. 내 덕에 잠도 제대로 이루지 못했던 당신은 퇴근을 하자마자 아침에 챙기지 못했던 짐들을 양 손 가득 들고서 문상을 왔습니다.

 당신 덕분에 나는 할머니와 작별하는 시간에 오롯이 집중할 수 있었습니다. 결과적으로는 후회 하나 없이 정성과 성의를 다 하여 마지막 인사를 나눌 수 있었어요. 당신의 배려가 큰 몫을 해준 것 같아요. 그러고도 사흘 동안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고 돌아온 나를 맞이해서, 서러움에 주절대다 울음을 터뜨리다가 속상해서 무너지는 나의 이야기를 다 들어주셨죠. 덩치가 큰 당신은 바닥에 앉아 나와 시선을 맞추고 이따금씩 손을 뻗어서 눈물 자국을 닦아줬어요. 집은 내가 떠나올 때와 다름 없이 깨끗했습니다. 손이 거칠 곳 없어서 나는 돌아오자마자 쓰러져 잠을 잘 수 있었어요.


 그러고 나는 또, 며칠 정도는 급격한 컨디션 난조와 스트레스 때문에 생리통으로 앓아누웠죠. 당신은 그때도 초콜릿이나 내가 좋아하는 빵, 핫팩, 진통제와 생리대 등을 잔뜩 쌓아두고서 나를 기다렸어요. 당신은 끝도 없이 자상하게 굴면서도 내가 고마워 하면은 때마다 "당연한 일"이라고 치부하며 멋쩍게 웃기만 했습니다.

 내가 당신과 같이 좋은 남자를 처음 본다고 신기해 할 때는, "내가 하는 것들은 지극히 정상적인 거고 너는 이런 대우를 받을 자격이 충분한 것"이라 말하곤 합니다. 당신 인성이 몹시나 건강하고 튼튼해서, 당신을 만난 이후로 나는 덩달아 스스로를 사랑하는 기술이 늘어가요. 당신은 정말 좋은 사람이에요.


 그렇게 나는 허망하거나 외롭지 않았고, 며칠만에 일상으로 돌아와 모든 것을 거뜬히 해낼 수 있었답니다. 하던 공부와 일을 열심히 하면서 설날과 당신의 생일을 기념하는 일에 몰두했죠. 벌써 함께 살림한지 한 달이 되어가네요. 여전히 우리 집에선 좋은 향기가 나고 있어요. 어디든 먼지 하나 앉은 자리 없이 깨끗하고, 냉장고 안에는 먹을 것이 가득하네요. 최근에는 내가 화분을 일곱개나 들여와서 집안 곳곳에 생기가 도는 것 같아요. 게다가 거의 하루도 빠짐 없이 아침 식사를 함께 하고 있구요. 모자람 없이 풍족하고도 비교적 안정적인 생활을 영위하고 있습니다. 내 생각에 우리는 잘 하고 있는 것 같아요.


 1월 26일, 내일은 당신의 생일이랍니다. 벌써 한 달이 다 지나갔다는 의미이기도 해요. 내년 1월은 더욱 정신 없이 바쁘겠지요. 나의 생일, 우리 아버지의 생신, 당신 누나의 생일, 우리 할머니의 기일, 그리고 당신의 생일까지. 매주마다 펼쳐지는 이벤트를 생각하면 내년의 일인데도 막막한 동시에 우리라면 거뜬히 해낼 수 있을 거라는 자신이 든답니다.


 갓 사귄 애인처럼 설레게 하면서, 남편처럼 든든하기도 한 당신과 함께 하는 일상에 나는 엉뚱하고 귀여운 공상을 그칠 수가 없습니다. 사랑해요. 진심으로 생일 축하하구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당신은 오늘부터 새로운 프로젝트에 뛰어들게 되었답니다. 당신이라면 분명 잘 해낼 수 있을 거에요. 그러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내가 언제나 당신의 뒤에 있을거에요. 오늘은 밤 늦게 퇴근하는 당신을 위해 우리가 함께 사는 공간을 아름답고 편안하게 정돈하며 기다릴게요. 내가 해야만 하는 일을 하면서, 자기 개발을 하면서, 나만의 시간을 알차고 열정적으로 보내면서요. 상실감에 지쳐 쓰러진 나의 귀가를 기다리며 먼저 당신이 그러했던 것처럼.


 날씨가 정말 추워요. 당신이 올 적에 캔들을 켜놓을 거에요. 몸 조심히 돌아오세요.


처음으로 만들어 본 떡국!


 2023년 1월 25일,

당신의 사랑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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