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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쓸모

제페토 할아버지의 카페

by 예쁨

자주 지나가는 길목에 특별한 카페가 있다.

카페일까? 공방일까? 아리송했지만 간판에는 당당히 카페라고 써져 있다.


https://naver.me/FpZRwDH6

얼마나 편안한 공간이면 카페에 <집>이라는 명사를 넣었을까?

Welcome

카페 입구에는 다양한 작품들이 줄지어 손님들을 맞이한다.

얼핏 보면 어수선한 잡동사니 같지만,

자세히 보면 마치 살아나는 순간을 기다리기라도 하듯 생동감이 느껴지는 작품들임을 알 수 있다.


제페토 할아버지가 있다면 이런 곳에 살고 있지 않을까?

welcome2

녹슨 열쇠, 낡은 볼트, 쓸모없어진 전기회로판 등 재료는 모두 버려진 것들로부터 시작하지만,

보면 볼수록 만든 이의 재치와 솜씨를 발견하는 재미가 신선하다.

이렇듯 버려진 것들에게 다시금 생명을 불어넣어 준 이는 누구란 말인가?

볼트 당나귀 / 스패너 물고기 / 앉아있는 새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동화책에서 나올법한 신비로운 공간으로 들어선 느낌이다.

카페 주인은 정말로 상상 속 제페토 할아버지를 떠올리게 하는 외모를 가지고 있었다.

왠지 모르게 신이 났다.

어디선가 피노키오가 걸어 나올 것만 같았다.


피노키오는 아니었지만 카페에는 다양한 작품들이 살아 숨 쉬듯 자신의 존재를 알리고 있었다.

포크와 수저는 날아가는 새로,

해머와 볼트는 귀여운 당나귀로,

스패너를 이어 붙여 만든 물고기는 입을 벌리고 있다.

그렇게 그들은 주인장의 손길에 의해서 두 번째 삶을 시작하고 있는 것이다.


사모님과 스몰토크 중 알게 된 사실이 있었다.

(아 처음엔 딸인 줄 알았다…. 죄송해요, 사장님..ㅎ)

사장님은 긴 세월 소음 가득한 건축현장에서 일하시며, 청력 손실이 있으셨다고 한다.


그제야 몇 번 들르면서 주문할 때의 어려움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주문할 때 조금 더 큰 소리로 해야 했구나,

사모님이나 다른 직원의 도움이 필요했구나.


하지만 커피만큼은 사장님이 직접 핸드드립으로 내려주신다.

그 모습이 마치 영화 속 한 장면처럼 품위 있게 느껴져 양해를 구하고 사진으로 담았다.

커피 내리는 제페토 사장님 / 깊은 맛 드립커피

성능 좋은 커피머신도 많겠지만,

먹고 마시는 것에도 정성이 들어가면 그 맛이 깊어지는 법이다.

깊은 맛의 커피잔을 들고 그 공간에 앉아 있으면 어느새 어떤 쓸모를 찾고 싶은 마음으로 일렁인다.

트럼펫을 연주하는 사람 / 가시 물고기 / 폼집는 기타리스트

커피 향이 잔잔히 퍼지는 사이,

사장님의 손길과 마음이 스며들었던 모든 생명들이 나에게 말을 걸어주었다.

트럼펫을 부르는 연주가와 폼 잡는 기타리스트는 여러 각도로 봐야 더 재미있다.

새끼들에게 모든 살점을 내어주고 가시만 남는다는 ‘아빠 가시고기’는 슬퍼 보이지 않는다.


버려지는 것들의 최후는 <다시, 쓸모>가 된다.

누군가의 마지막 사랑을 품은 채 이 작은 카페 안에서 또 한 번 태어난 것이다.

그렇게 ‘최후’는 ‘처음’으로 뒤집히고, 버려졌다는 사실은 오히려 해방처럼 느껴진다.

정해진 용도와 기능을 다 소진한 후에야 온전히 다른 존재로 태어날 자유를 얻기 때문이다.

해마, 뚝딱이 로봇, 새 식구들
깃털이 된 숟가락 / 볼트 원숭이외 / 버려진 배드민턴채의 쓸모


낡은 볼트 하나가 로봇의 관절이 되고, 버려진 열쇠고리가 새 심장으로 뛰는 곳.

이 카페에서는 어떤 것도 완전히 쓸모를 잃지 않는다.

다만, 다시 발견되기를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그는 버려진 것들의 가능성을 포착해 생명을 불어넣는 의사이며 예술가다.

또한 커피를 기가 막히게 내리는 바리스타다.

안녕? - 안녕!

얼마 전 새로운 녀석이 등장했다.

사실 작품의 이름은 사장님께 여쭤보지 않아서 내 맘대로 상상하며 이름을 붙이고 있는 중이지만,

누가 봐도 이 친구는 ‘앵무새’다.

커다란 부리와 섬세한 발톱을 보고 있으면 당장이라도 내게 인사를 해줄 것만 같다.

안녕?-안녕!


커피 한 잔을 말끔히 비우고 나니, 한동안 잊고 지내던 내 안에 버려진 조각들이 아우성을 친다.

내 삶도 <다시, 쓸모>의 의미를 되찾는 순간이었다.




조금만 주변을 살피면 버려지는 것들에서 다시 쓸모를 발견하게 된다.

유명한 예술 작품도 예외는 아니다.

영상 모니터 3대, DVD , 바이올린 1대, 첼로 2대, 네온사인, 키보드, 철 등의 재료로 만든 백남준 작가의 <브람스>는,

어쩌면 초대 제페토 할아버지의 작품일지 모른다.

내가 알고 있던 엄근진 브람스는 다소 귀여운 모습으로 다시 태어났으니 말이다.

(첼로 귀라니 신박하구먼)

국립현대미술관(과천) / 백남준의 브람스
낙엽 유령 / 꼬꼬선생


우연히 길을 걷다 누군가 만든 작품(?)을 발견하기도 하고,

(누구냐 넌, 조금 쫄..)

누군가의 재주를 따라 해보기도 한다.


나는 아이의 수능날 카레물까지 들여가며 꼬꼬선생을 만들었고,

아이는 더 이상 가져가면 다 못 먹는다고 다녀와서 먹겠다고 했지만-

잠이 오지 않던 날 새벽…. 나는 엄마로서 할 수 있는 최선을 하고 싶었다.

*수능 도시락 메뉴 : 소고기뭇국, 베이컨떡꼬치, 치킨강정, 낙지젓갈, 과일 조금, 메추리알

딸 친구는 아이 도시락 메뉴를 듣고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너 혹시 뷔페가냐?”


웃음이 났지만 그게 바로 엄마의 정성이고 최선의 마음이니까.

(너는 진정 최선을 다 했는가? ……‘_‘)


구제불능, 인간은 변하지 않아, 이런 말들을 믿고 싶지 않다.

모든 것에는 다시, 쓸모의 가치가 있으므로.

언젠가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었거나, 실패로 얼룩진 과거가 있더라도

사람은 한 방향으로만 굳어버리는 존재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조금 더 호의적으로 인간을, 그리고 자신을 바라봐야 한다.


녹슨 쇳덩이에게도 있는 쓸모가,

우리에게 없겠는가—



by. 예쁨





우리는 종종 ‘완성된 순간’만을 가치 있게 여기며,

그곳에 도달해야만 의미가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사실은, 이뤄가는 과정 속의 모든 ‘움직임’이 바로 인생이고,

그것 자체가 이미 빛나고 있다는 것이다.


- 삶은 도서관 / 인자 -


https://m.yes24.com/goods/detail/163102343





*커버사진 출처 :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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