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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꼬운 가을

하루야, 안녕?

by 예쁨


참으로 아꼬운 계절이다.

원래도 짧아 늘 붙잡고 싶던 ‘가을’이 올해는 절반쯤 도둑맞은 기분까지 든다.


우리나라는 사계절이 있다고 배웠지만,

앞으로의 아이들은 조금 다르게 배울 수도 있겠다.

짧은 봄과 스치듯 지나가는 가을, 긴 여름과 애매한 겨울 정도가 될까?


아찔할 만큼 심난했던 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때가 어제 같은데, 추위에 몸을 웅크리며 주섬주섬 겨울 옷을 꺼내고 있는 나를 발견한 것이다.

이건 좀 오버 같은데?라고 생각했던 그 옷을 입고 나왔어야 했다.

종일 오들오들 떨고 다니며 더 두꺼운 외투를 입고 나오지 않은 것을 후회했다.

꿀 빠는 중

출근길에는 부러 10분 정도 여유를 가지고 공원을 가로질러 다닌다.

아꼬운 계절을 만끽할 수 있는 귀한 시간이기 때문이다.

갑작스러운 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무성하게 피어 있는 코스모스 밭이 보인다.

작년엔 핑크뮬리 밭이었는데, 유행 따라 가꾸는 건가 싶은 생각도 들었지만 오랜만에 보는 코스모스들이 시선을 사로잡았다.

꿀만 빠는거로 보이냐?

꿀벌과 나비는 꿀만 빠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꽃가루를 옮겨주고 생명을 전달하며 서로를 살게 하는 필연적인 관계로 이어진다.

그러므로 꽃에게 나비와 꿀벌은 단순한 손님이 아니라 다음 계절을 약속해 주는 존재다.

자연의 순환을 거스를 수 없기 때문에 때 이른 추위에도 코스모스는 꿋꿋하게 피어나는가 보다.

호두는 국내산인가요?

“먹이를 더 빨리 모아야 해! “


비상이다.

갑작스러운 추위에 산짐승들은 또 얼마나 당황했을까.

자고로 가을은, 먹이가 부족한 겨울을 대비해 그들에게 꼭 필요한 계절이 아니었던가-


설악산에 산다~람쥐.

등산동호회에 갔던 남편이 보내온 사진이다.

가까이 다가가는데도 먹는데 집중하느라 도망가지를 않더란다.

쳐다보지 좀 마슈

사람들의 눈길이 영 불편한지 아예 뒤를 돌아버린 다람쥐.

녀석의 뒷모습에서도 다급한 비상신호가 느껴진다.


“일단 먹자!”

감 / 대추 / 석류

아무리 짧은 가을이라고 해도,

자세히 보면 곳곳에 열매가 차오르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햇살을 꾹꾹 눌러 담은 감과 주렁주렁 매달린 대추는 마치 가을의 무게를 버티고 있느냥 위태로워 보이고,

석류는 제 안의 모든 시간을 붉은 알갱이로 밀어 올리느라 터질 듯 안간힘을 쓴다.


가을은 떠나기 직전까지 마지막 아름다움을 채워 넣느라 충실했구나!

가을아, 안녕!

딸의 수시면접을 보고 오는 길, <안녕 IC> 표지판이 보였다.

‘고시길’은 ‘고생길’로 보이기까지 한다.

연휴에 사고를 겪으며 큰 한숨을 토해냈는데, 하마터면 딸의 면접도 못 치를 뻔했다.

(아니, 하마터면 ……. 모든 것이 참 다행이다.)


아꼬운 가을아,

무사히 보내줘서 고마웠어.

안-녕!




에피소드
번뇌 / 밀랍초 / 하트밥


가끔 딸은 이상한 물건(?)을 사 오곤 한다.

- 번뇌는, 네가 온 거 아니니?


종교는 없지만 가끔 초를 켜고 기도를 한다.

밀랍초의 은은한 꿀향기가 마음을 안정시켜 주고 차분해진다.

이날 초가 녹는 모습은 마치 나를 안아주는 듯한 모습이었다.


동행자와 학교로 출근하는 날이 많다 보니 나의 점심식사는 대부분 학식이다.

영양사 선생님이 바뀐 후로 재미있는 일이 많아졌다.

밥은 사랑이지, 암뫈~

행운 줍줍

여전히 행운도 줍줍~

얼마 전 사고에 모든 행운을 쏟아부은 듯 하지만. (뿌엥-)





- 새비야.

- 응.

- 내래 아까워.

- 뭐가.

- 새비 너랑 있는 이 시간이 아깝다.

….

- 아깝다고 생각하면 마음 아프게 되지 않갔어. 기냥 충분하다구.

충분하다구 생각하구 살면 안 되갔어?

기냥 너랑 내가 서로 동무가 된 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해주면 안 되갔어?


- 밝은 밤, 최은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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