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다는 건

열 번째 인화

by 예쁨
이어 붙인 시간
종로구 충신길
겹겹이 쌓아 올린 시간
무너지지 않기 위해
이어 붙여온 삶


한양 도성을 따라 이어지는 낙산 성곽길,

그 길을 마주한 동네 충신동.

서울의 역사와 풍경이 고스란히 남은 만큼 마을은 노후된 주택들로 즐비했다.

과거 ‘충신 1 구역’으로 재개발 정비구역이 지정되었지만, 행정 해제와 사업 무산을 겪으며 개발 추진은 정체상황이다.

중요 문화재와 인접해 있는 마을인 만큼 무분별한 개발보다는 주민들의 불편과 안전을 위한 점차적인 정비가 필요해 보인다.


그들의 삶의 무게가 느껴지는 지붕은,

무너지지 않기 위해 버티며 살아온 시간을 짐작케 했다.




수조 속의 군주
싱싱횟집
여기가 세상인지
세상이 여기까지인지


“게 누구 없느냐?”


왕은 깊은 잠에서 깨어났다.

눈을 뜨니 사방은 유리뿐인 수조 안이다.

그는 꿈꾸는듯한 얼굴로 어딘가를 바라보고 있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수평선,

심장처럼 고동치던 파도,

깊고 푸른 어둠 속으로 뛰어드는 은빛 반짝임.

모두 어디로 사라진 걸까-


그것은

모두 꿈이었을까?




틈새
빈틈 사이로
아무리 비좁은 틈일지라도
자라는 일을 멈출 수는 없지
빈틈이 있어 다행이야


빈틈 있는 사람이 좋다.

그 틈 사이로 누군가는 숨을 쉴 수 있기 때문이다.

완벽을 강요받는 세상에서 자칫 빈틈은 낭비라 불리기도 하지만

오히려 숨 막히는 건 빈틈이 없는 쪽이다.

그래서 우리는 비좁은 틈에도 고개를 내밀고 살아가는가 보다.


빈틈이 있어서 다행이다.

(참고로 나는 빈틈이 very very 많은 사람)



햇빛 미용실
자연 건조
쥐어짠 하루를
오늘의 수고를
말리는 중


노동은 숭고한 것이다.


종일 닦고 쥐어짜였을 그들의 하루를

햇빛과 바람이 살살 달래주고 있었다.


자연은 안다,

그들의 수고와 노동의 가치를.




불멸의 빛
데미안 허스트_Kaleidoscope Paintings
아름다움에 눈먼 자들이여
그대, 찬란한 불멸을 보았는가
고요한 아우성 듣지 못한 채
그 속에 갇힌 구원의 빛
영영 나오지 못할 텐데


우연히 들어가 관람하게 되었던 <데미안 허스트>의 전시는 다소 충격적이었다.

어려서부터 ‘삶과 죽음’에 대한 궁금증으로 가득했던 소년은 결국 죽음을 소비함으로써 부와 명성을 얻는 현대미술가가 되었다.

위 작품은 멀리서 보면 아름다운 스테인글라스 같지만 가까이서 보면 수천 마리의 나비 날개로 만들어졌다.

소머리의 사체도 그에겐 작품이다.

(당분간.. 소머리국밥은 안녕…ㅠ)

예술을 모르는 내가 그의 의도를 전부 이해하지 못하겠지만,

나의 후기는 한마디로 ‘서늘함’이었다.


우리는 수많은 죽음을 외면하며 살아가고 있다.

외면하던 것을 직접 눈으로 볼 때 더 불편하고 괴로운 법이다.

박제된 날개 위로 쏟아지는 빛줄기가 마치 생을 증명하는 고요한 아우성처럼 느껴졌다.


불멸(不滅)이란, 사라지거나 없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사라지지 않는다고 해서 살아있는 것도 아니다.

불멸이라는 아름다움에 매혹될 수 있겠으나 살아있음 자체가 가장 찬란한 아름다움이길 바란다.





by. 예쁨






우리의 삶은 비참하고 고달프고 짧소.

인간은 생산하지 않으면서 소비하는 유일한 동물


- 동물농장, 조지오웰 -


목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