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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쁨 Nov 15. 2024

삼봉이 이야기(2)

어렵게 꺼내는,


나의 자랑, 조삼봉
몽총미 / 4순위를 바라보던 눈빛 / 루이16세 느낌

삼봉이는 늘 나의 자랑이었다.

생전 안 하던 인스타그램까지 했다.

여기저기 자랑하고 싶은 욕심이 컸기 때문이었다. (지금은 안 한다)

발라당

우리 집에 와서는 적응기가 필요했다.

보통 파양견들은 다시 버려질 수도 있다는 두려움에 불안감이 크다고 한다.

입양이 어려워지고 보호소 생활이 장기화되면서 녀석의 몸과 마음이 많이 지쳐있을 터였다.

사람에 대한 믿음이 무너졌을 테고, 때문에 경계심도 커졌겠지.


다행히 한 달 즈음 지났을 때 삼봉이의 몸은 차차 이완되었고, 아무 데서 발라당 눕는 경지에 이르렀다.

전기장판에 등을 지지는 것을 좋아해서 장판을 켜면 냉큼 드러누웠으며, 뜨거우면 자세를 바꿨고, 장판을 끄면 미련 없이 자기 집으로 들어갔다.

무엇보다 내 품에서 잠드는 걸 가장 좋아했다.

어려서부터 반복되는 악몽으로 괴로웠는데, 녀석의 따뜻한 온기 덕분인지 더 이상 악몽에 시달리지 않았다.

어느새 서로에게 의지하는 존재가 되어 버린 것이다.

치명적인 다리 길이

삼봉이의 계보는 조금 복잡해 보였다.

몰티즈와 푸들과 또는 어떤 누군가와 믹스된 느낌이었다.

덕분에 치명적인 다리길이를 타고났다.

엄마 옷은 내가 지켜야지 / 생일 축하해 / 나도 데리고 가쇼


생각해 보니 녀석은 언제 어디서나 나를 지켜줬다. (가끔 무서울 정도의 집착이 보이긴 했음)

욕실 앞에서 엄마가 목욕하고 나올 때까지 옷을 지켜줌.

여행 갈 때 캐리어만 열면 그 속에 들어가 있었다. (어딜, 나만 두고 가려고?)

직접 고구마케이크를 만들어 생일축하도 했고, 사춘기 아이들을 거실로 불러들일 수 있는 유일한 재롱둥이였다. (사실 재롱은 피우지 않았음…ㅎ)


사실 삼봉이 나이는 우리가 알고 있던 것보다 더 많았던 것 같다.

눈병, 호흡기 치료를 끝내고 나서 아랫니를 전부 발치해야 하는 상황이 왔다.

치아가 흔들리는 상태로 미루어 보아 사료를 먹으면서도 고통스러울 거라고 했기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모든 치료를 잘 받았고 주기마다 사상충약과 구충제도 꼬박 먹였다.

삼봉이가 밝아지고 예뻐지는 모습을 보며 매일이 행복했다.

귀여움과 사랑스러움은 자꾸만 갱신되었고  녀석의 귀여움을 오랫동안 추억하고 싶어 사진과 함께 세줄일기로 기록해서 책으로 보관했다.

(한 권 더 만들어 둘 걸… 후회한다)

삼봉이는 물에 들어가는 걸 좋아하지 않았지만 흐르는 물을 바라보는 건 좋아했다.  

신랑과 아들, 나와 딸 이렇게 둘둘 나눠서 여행을 가거나 차라리 애견동반이 가능한 곳으로 함께 떠났다.

녀석이 결코 혼자 남겨지거나 어딘가에 맡겨지는 걸 원치 않았기 때문이다.



삼봉이가 강아지별로 가게 된 이유

우연히 구토 문제로 초음파를 보다가 담낭에 슬러지가 심하다는 것을 알게 되고,

간약을 복용 중이었지만 큰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정기적인 검사비며 거의 평생 먹어야 하는 약 비용을 생각하니 돈을 더 벌어야 하지 않을까 싶어 새롭게 일도 시작했다.

기왕이면 시간조정을 할 수 있는 일이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일을 시작하고 한 달,

많은 시간을 보내주지 못했다는 미안함에 퇴근하자마자 삼봉이에게 개껌을 건네주었다.

늘 그랬듯이 허겁지겁 간식을 먹긴 했지만, 오래 먹을 수 있는 간식이었으므로 걱정 없이 저녁을 먹었다.


… 삼봉이는 개껌이 기도에 붙어 갑작스럽게 떠났다.

그 몇 분의 시간 동안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무엇이었을까?

아이를 뒤집고 목구멍에 손가락을 넣고 아이를 들고 병원으로 달려가는 것.

지금도 그 순간을 생각하면 숨을 쉬기 어려울 만큼 견디기 괴롭다.

제대로 응급처치를 하지 못했다는 자책감과 미안함이 범벅돼서 회복하기가 어려웠다.

정신없이 울고, 신랑이 오고, 멀리 기숙사에 있는 아들에겐 미쳐 말도 하지 못했다.


병원에 가서 항문에 주사도 넣어보고 의사 선생님도 끝까지 최선을 다했지만

결국 눈앞에서 아이를 황망하게 보냈던 것이다.


늦은 밤 장례식장에 가서 화장도 하고 작은 단지에 담아왔건만-

한동안 나는 삼봉이의 죽음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던 것 같다.

지금도 삼봉이 옷, 집, 물건 등을 고스란히 가지고 있다.


시간은 흘러 8개월이 지났다.

어느 날은 괜찮았고, 또 어느 날은 괜찮지 않은 날들이 반복되고 있지만 미안한 마음보다는 고마운 마음을 생각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


삼봉이는 존재만으로 사랑의 위대함을 알려준 기적 같은 아이었으므로.



나의 그리움, 조삼봉

어딜 가나 삼봉이가 떠오른다.

지나가는 말티즈만 봐도 주책을 부린다.


삼봉 통닭, 삼봉 칼국수….

아니, 나 몰래 언제 이렇게 사업을 하고 있었지??


돈 많이 벌어서 엄마 호강시켜주고 싶었나?


by. 예쁨



너를 그리며 / 네가 머문자리


미안하고

사랑해

영원한 내 새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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