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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시 Jan 13. 2024

내 맘 같지 않은 네 맘

딸은 겨울방학이지만 학교에서 하는 방과 후에 돌봄에 가는 중이다. 점심 먹고 돌아올 때쯤 데리러 간다. 데리러 가는 시간 5분 전에 급하게 점심 먹은 그릇을 치우고 세수만 대충 하고 밖으로 뛰쳐나가면 딸이 천천히 걸어 내려온다. 보조가방 하나를 건네주면서 오늘 점심으로 뭘 먹었는지, 학교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하는 딸이 귀여워서 한참 바라보는데 딸이 말을 툭 던진다.


-엄마, 나 오늘 속상한 일 있었어.


-엥? 무슨 일?  


-오늘 소연이랑 하늘이가 나랑 말 안하고 자기들끼리만 말했어. (소연, 하늘 가명)


-엉? 진짜? 왜 그랬지? 우리 딸 속상했겠다.


-응. 돌봄 교실에서 그림 그리고 있는데 소연이가 50색 색연필 가져왔거든. 근데 나는 안 주고 둘이서만 쓰는 거야.  


-너도 그 색연필 있잖아.


-나는 오늘 안 가져갔어. 그런데 그 이후로 내가 말 걸어도 못 들은 척 하고 밥 먹을 때도 나는 혼자 먹었어.


-그래? 우엥 진짜 속상했겠다. 그래서 어떻게 했어? 왜 그러는지 물어봤어?


-응. 하늘이는 내가 말 건거 못 들었다고 하는데 내 생각에는 아닌 것 같아.


-왜 그렇게 생각하는데?


-하늘이가 나랑 둘만 있을 때는 안 그러는데, 소연이 있을 때는 걔네 둘만 이야기하거든. 내 생각에는 소연이가 그러라고 한 것 같아.


-아, 그랬구나. 네가 그렇게 느꼈으면 그게 맞지. 소연이가 너한테 뭐 속상한 일이 있었을까? 왜 그런 것 같아?


-나도 몰라. 그런데 나는 점심 먹고 빨리 가고 소연이랑 하늘이는 계속 같이 있으니까 나보다 둘이 노는 시간이 많아서 그런 것 같기도 해.


-그럴 수도 있겠다. 아이들끼리 놀 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어. 편을 가르고, 나랑 더 친한 친구를 만들고. 그래서 너는 앞으로 어떻게 했으면 좋겠어?


-나는 그냥 같이 셋이 잘 놀고 싶은데 애들이 계속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르겠어.


아이는 그냥 지나가다 한 말인데 내가 그 상황에 들어가 있는 것처럼 마음이 요동쳤다. 교실에서도 그렇게 아이들 사이의 미묘한 갈등을 자주 접한다. 나 역시 커오면서 많은 갈등과 직면하고 피하기도 했고 다툼도 있었다. 넓은 들판에 홀로 살아가는 꽃 한 송이가 아니기 때문에 나를 둘러싼 많은 사람들에게 이리저리 치이는 일이 많을 수밖에 없다.  




학교에서도 종종 이런 모습을 아이들에게서 찾을 수 있다.


세상 둘도 없이 친한 친구 두 명이 있다. 어딜 가든 함께다. 화장실, 쉬는 시간, 교실 뒤쪽, 시간이 나면 같이 이야기를 하고 웃고 떠든다. 그러다가 한 친구가 다른 친구랑 어떠한 계기로 조금 더 시간을 갖게 된다. 맡은 1인 1 역할이 같거나 같은 모둠이 되거나, 같은 아이돌을 좋아해서, 또는 주말에 우연히 만나서 놀았다는 이유로 좀 더 가까워지면 원래 친했던 친구는 자연스레 멀어진다. 같이 노는 경우도 있지만 예전과 같은 사이는 아니다.  이럴 때 반응이 갈린다.  


하나는 예전과 같은 친구 관계를 기다리며 끝까지 친구 곁에 있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다른 친구와 또 다른 관계를 만들어 가는 것이다. 


첫 번째 경우는 주도권을 가진 아이는 다른 쪽으로 관계의 줄이 더 단단해지고 있지만 원래 친구와의 관계도 끊을 특별한 이유가 없기 때문에 느슨하게나마 줄을 이어가고 있다.  관계에서 주도권을 쥔 아이는 언제든 원래 친구에게 돌아갈 수 있다고 생각하고, 기다리는 아이는 그 친구와 관계를 더욱 견고하게 하기 위해 더 많이 이야기하려고 곁에 있게 되고 심지어 친구의 관심사와 같아지려고 노력한다. 그렇게 해서 다시 친해지는 경우도 많지만 기다렸던 아이는 배운다. 변하지 않을 것 같던 관계도 언젠가는 변하고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게 사람 마음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두 번째 경우는 멀어진 친구는 그대로 놔두고 다시 나와 비슷한, 이번에는 나만 봐줄 것 같은 그런 친구를 찾는다.  그 과정에서 처음에 친했던 친구에게는 서운함을 넘어서 적대감마저 들 때도 있다. ' 절교'라는 단어가 등장하기도 한다. 경쟁적으로 친구 관계를 넓히거나 깊게 하려다가 겹칠 때는 탈이 나기도 한다. 언쟁을 하거나 쪽지를 주고받으며 화를 키운다. 새롭게 친해진 친구는 그 관계에서 끼인 것 같은 기분을 느낄 때도 있고 불편함을 느끼곤 한다. 둘만의 다툼이 여럿의 싸움으로 번지는 경우도 많다.


첫 번째나 두 번째 경우 모두 관계는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다는 것이 결론이다.


친구의 마음은 내가 붙잡고 싶다고 해서 잡아질 수 있는 것이 아니고 변화시킬 수도 없다. 그러면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친구가 멀어졌으니까 내가 달라져서 친구의 마음을 되돌리는 것? 아니면 이 친구는 이제 끝이고 다른 친구와 관계를 시작하는 것? 무엇을 선택하든 그 과정에서 겪어야 하는 혼란과 상처는 모두 나 혼자 보듬어야 한다. 그렇다면 좀 더 내가 편한 방법으로 관계를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


학교에서 아이들은 이런 류의 문제를 보통 초기에 상담하지 않는다. 교사가 알게 되었을 때는 크게 다툼이 났을 때나 학부모가 상담을 요청했을 때 알게 된다. 교사가 알게 된 후에는 서로 그동안 쌓아왔던 감정은 그 시작이 어디서부터인지도 잘 기억이 나지 않아 어디서 어떻게 문제를 풀어가야 하는지 난감할 때가 많다.


그럴 때 누구의 잘못이 더 크고 작고 시시비비의 경중을 가리기보다는

가장 서운했던 점, 상대방에게 원하는 점, 내가 잘못한 점 등을 이야기한다.

서로 잘못한 부분에 대해서는 사과하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말하는 것으로 이야기를 하곤 했다.

'친구를 좋아하고 싫어하는 감정이 드는 것은 당연하지만 그 과정에서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면 안 된다.'라고 반복한다.


그렇게 이야기를 하고 나면 교사는 아이들의 관계를 더욱 면밀히 들여다보게 되지만 그것 또한 드러난 부분이라 아이들의 마음까지 알기는 힘들다. 그래도 그렇게 한번 관계가 틀어졌다 회복된 아이들은 서로 조심하게 되는 것 같았다.


나 역시 참 많은 친구들이 있었다. 친구들과 어울려 지내면서 행복한 일도 많았고 화나거나 속상했던 일도 많았다. 일일이 거론하기 입 아플 정도로 많았던 그 친구들은 지금 다 어디서 잘 지내는지 가끔 안부 묻는 일도 드물어졌다.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고 애틋했던 그 친구들과 별 일 아닌 것으로 흥분하며 열받기를 반복하던 때를 지나 지금은 관계에 무덤덤해졌다.


학교에서, 아이들 학교, 유치원 엄마들과, 계속 다니는 수영장에서도 더 깊어지지 않는다.  


한 발짝 더 다가갈 수 있다.

친해지고 싶은 마음도 있다.

하지만 굳이 그러지 않는다.

먼저 말을 걸지 않으면 나도 말을 시작하지 않는다.

이런 태도가 좋다는 것은 아니지만 타인과의 관계에 집중하는 시간보다 나에게 집중하는 것이 좋다.

그 시간에 내가 하고 싶은 일들을 하면서 지내고 싶다. 


하지만 아직 10살인 딸에게 이렇게 말하긴 힘들다. 내 경험이 전부가 아닐뿐더러 아이는 친구를 매우 좋아하고 이제 더 친구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내게 될 것이며 그 과정에서 많은 감정을 느끼고 스스로의 해답을 찾아야 하니까.

아이는 이런 경험이 처음이라 당황스러웠지만 어떻게든 해결하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딱히 나에게 조언을 구한 것은 아니고 그저 학교에서 이런 일이 있어서 속상했다고 토로하는 아이에게

힘들었겠다. 속상했겠다. 서운했겠다. 아이의 마음을 읽어 주는 것만 하기엔 입이 가벼운 엄마여서 한마디 거들었다.


그래. 친구 마음이 참 내 마음 같지 않지?

세상에 제일 마음대로 안 되는 것이 사람 사이의 관계인 것 같아.

일단 친구들에게 둘이 있을 때 먼저 물어봐.

어제 왜 내가 말 걸어도 대답하지 않았냐고.

그리고 그때 네가 얼마나 속상했는지 말하고.

앞으로 안 그러면 좋겠다고 말해.

그렇게까지 말을 했는데도 변하지 않으면 뭘 더 하지 말고 그냥 기다려 봐.

네가 좋아한 친구들이니까

좋은 성품의 아이들일 거야.

잠시 그런 행동을 할 수는 있지만

계속하진 않을 가능성이 커.

친구가 다시 돌아올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지만

너무 안절부절못하지 말고

네가 좋아하는 것 하면서 너한테 집중해 봐. 


이렇게 말하고 나서 딸이 좋아하는 앵무새 카페에도 가고 밥도 맛있게 먹었더니 아이는 회복한 것 같았다.


다음날 아침, 평소보다 일찍 나가는 딸한테 왜 그렇게 일찍 가느냐고 물어보니 친구한테 할 말이 있어서 그렇단다. 학교 마칠 시간이 되어 딸을 데리러 갔는데 평소처럼 오늘 무슨 밥을 먹었고, 뭐 하고 놀았고, 뭘 할 때 재밌었는지 어땠는지 이야기를 한다. 그러면서 툭 건네는 말.


-오늘은 친구들하고 재미있게 놀았어. 어제 왜 그랬는지 물어보진 않았는데 둘 다 앞으로 안 그러겠대. 그래서 기분 좋았어.


-그래. 잘 됐다. 기분 좋다니 엄마도 좋아.


앞으로 얼마나 사람 사이에 더 많은 일을 겪어야 단단해질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것이 가능할지도 모르지만

부러질 듯 가느다란 아이의 마음도

이렇게 조금씩 단단해지겠지 하고 마음을 쓸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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