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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시 Jan 25. 2024

초대받지 못한 아이

지난주 비가 많이 오는 오후, 아이가 유치원에서 나오면서 하는 말.

-엄마? 나 친구 생일파티 가도 돼?

-당연히 돼지!  초대받았어?

-응! 친구가 내일 생일인데 나도 오래.

-와! 좋겠다! 엄마랑 같이 선물 고르러 가자.


아이와 집에 가는 길에 문구점에 들렀다. 아이는 친구 생일 선물보다 자기가 갖고 싶은 물건을 둘러보느라 정신이 없었지만 그런 와중에 친구 선물은 샀다. 결제는 엄마가 했지만 갖고 싶어 했던 장난감은 자기 용돈을 쓰겠다면 나에게 돈을 빌려달라고 했다. 아이가 친구 생일 파티에 초대를 받은 것은 처음이어서 기대하며 같이 신나게 선물을 고르기도 했지만 문득 든 생각?

생일 파티를 어디서 하는 거지?

집에서 하는 건가?

근데 그 아이 집이 어디지?

몇 시에 가야 하는 거지?

부모님 허락은 받은 건가?


궁금증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아이에게 물어도  잘 모른다는 말 뿐이었다.

두 아이가 있지만 아이들 친구들을 불러 생일 파티를 한 경험도, 초대받은 경험도 없어 생일 파티가 요즘엔 어떤 식으로 돌아가는지 잘 모른다. 그래도 대충 아이 생일 파티는 친분이 있는 엄마들끼리 연락을 주고받아서 키즈카페나 집에서 모인다고 알고 있다. 아이는 초대를 받았다고 하지만 정작 나는 그 친구 어머님 연락처도 모르는데 어떻게 생일 파티에 갈 수 있을까?  혹시나 하는 마음에 내일 친구에게 진짜 초대한 것인지 다시 한번 물어보고 확실히 초대받은 것이 맞으면 내가 데려다주겠다고 이야기를 했다.


다음날 아이를 데리러 갔을 때 다시 물어봤다.

-친구 생일 파티 어떻게 됐어?

-엉! 친구가 엄마한테 물어봤는데 오지 말래.

-아? 그래? 근데 왜?

-음식이 많이 없대. 내가 가면 모자랄 것 같대.

-아~ 그럴 수 있지. 다른 친구들도 많이 가나 보네.

-응. 여자 친구들 모두 하고 남자는 1명 간대.

-우리 아들 괜찮아?

-응! 괜찮아.

-알았어. 그럼 우리끼리 집에서 과자 파티 하고 놀자!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였다. 아이가 친구 생일 파티에 초대 못 받아 서운한 것은 아이가 아니라 나였나 보다.

두 살 터울의 두 아이를 키우면서 여태껏 연락을 주고받는 친구들 엄마가 없는 이 엄마 탓인 것 같았다.

초등학교 2학년인 딸은 체구도 작고 조금 소심한 편이었지만 학교에 들어가서 친구들과도 잘 지내고 가끔 친구도 집에 불러 놀만큼 잘 자라고 있었다. 이제 유치원 졸업반인 둘째는 집에서 시끌벅적 요란한 아이지만 유치원에서는 잘 지내고 친구들과 다투거나 싸우지도 않고 오히려 의젓하다는 말을 들었던 터라 따로 걱정하진 않았다. 학교와 집을 오가며 나 역시 바쁘게 살았기 때문에 아이들 친구 어머님들과 연락을 꼭 할 계기도, 실마리도 없었던 터라 아무런 의식 없이 지내고 있었다.

아들이 생일파티에 초대받지 못했는 그 말 이후,  딸도 친구들은 주말에 파자마 파티를 했다고 하고, 또 아들과 제일 친한 친구 생일에도 초대받지 못했다는 말을 연이어 하자 그 모든 게 주변머리 없는 엄마 탓인가 싶었다.


아직은 어린아이들과 같이 시간을 많이 보내고 싶어 어디든 함께 했다. 우리끼리 있을 때 재밌었고 심심하지 않았다. 도서관을 가도 우리끼리면 괜찮았고 카페를 가도, 집 주변 산책을 하는 것도 우리끼리면 좋았다.

다른 사람들과 어울릴 때의 피곤함과 어색함은 주로 내가 느끼는 불편함이었지 아이들은 아니었을 수도 있는데 내가 너무 나의 생각만 한 것은 아닌가 싶었지만 아이들과 있을 때 편했기 때문에 이 관계에 다른 누군가 끼어들 틈을 만들지 못했다.


문득 예전에 있었던 일이 떠올랐다.

코로나가 한창 성행하던 시기, 2학년이던 우리 반 남자아이가 등교했을 때부터 열이 심하게 났다. 그때는 열이 38도 넘으면 분리실에 있다가  부모님께 연락드린 후 부모님과 함께 집으로 갈 수 있도록 해야 했다. 일단 교실에서 있으면 안 되어서 분리실에 아이와 함께 내려갔고 아버님께 연락을 드렸다. 그런데 아이 아버님께서는 옆 도시로 일을  간 상황이라 당장 데리러 올 수 없었다. 집에 가도 아무도 없고 혼자 있어야 하며 병원에도 당장 갈 수 없어 코로나 검사도 받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아무도 없는 집에 갈 수도 없고 보건실에 누워 있을 수도 없었다. 어떻게 해야 하는지 보건선생님께 물어보니


-아이 봐줄 사람이 그렇게 없대요?

-예. 그렇대요. 아버님도 바로 오실 수 없다고 하시네요.

-아니. 인생을 어떻게 살았길래 부탁할 사람이 그렇게 없대요?


이렇게 말하는 보건선생님의 말이 가슴에 박혔었다

인생을 어떻게 살았길래 정말 급할 때 바로 달려와줄 사람이 없냐는 말은 그때 당시 나에게도 해당하는 말이었다. 우리 가족 넷만 서로 의지하며 살았고 아이가 아플 때는 서로 연가를 쓰면서 어떻게든 버텼다. 아이가 아플 때 가장 큰 위기였다. 그때의 나도 편하게 부탁할 지인이 없었기에 보건선생님의 말이 날아들었던 것이다.  아이 집이 학교에서 가까워서 집으로 혼자 갔는데  걸어가는 뒷모습이 왜 그렇게 미안하고 가슴이 아렸던지 그 아이가 꼭 내 아이 같았다.

내가 그렇게 아이를 보고 있으니 교통 정리하신다면 교문에 계시던 교감선생님이 하는 말


- 괜찮다! 다 컸다!

아이는 아버님이 급하게 아이 돌보미 선생님을 연락해 다행히 집에서 편하게 쉬다가 병원에 갔다고 했다.


초대받지 못한 건  아이뿐만 아니라 엄마인 나였던 것이다. 어쩌면 내가 아이 친구 엄마와 서로 연락을 주고받으며 관계를 만들어갔다면 아이는 더 다양한 경험을 해봤을 수도 있다. 그렇게 하지 않은 건 나였고 그로 인한 결과가 그렇다면 받아들일 수밖에..

그런데 다시 돌아가서 아이 엄마들과 유대 관계를 만들었다면 좋았을까? 아이 하원길에 나에게 말을 걸거나, 내가 먼저 말을 걸어 이야기를 한 적도 거의 없다. 잘 모르는 사람에게 굳이 할 말도 없고  같은 유치원에 다닌다는 공통점 빼고는 더 나아갈 바를 찾지 못했었다. 내가 너무 우리라는 울타리 안에서만 갇혀 살았나 싶지만  다시 돌아간다고 해도 먼저 말 걸거나 친분 관계를 유지하진 못했을 것 같다.


나 혼자만 있어도 시간이 너무 빨리 간다.

책을 보고 강의를 듣고 이렇게 글을 쓰고 하다 보면 벌써 몇 시간 훌쩍이다. 혼자 있어도 재미있는 게 너무 많고 집에서 할 일이 너무 많은데 바깥에서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이, 그것도 아이들 친구 엄마랑 어울려야 하는 것이 가능할까?

어떤 동영상에서 보길 엄마들 커뮤니티에서 워킹맘은 정보도 없고 아이들 캐어할 시간도 없어서 왕따라고 하던데...


출처 - EBS 다큐프라임 대학입시의 진실 중 캡쳐
출처 - EBS 다큐프라임 대학입시의 진실 중 캡쳐


엄마끼리 어울려야 아이들도 어울리고 정보를 공유할 수 있다는 그런 말들이 아직 공허하게 느끼는 것은 내가 아직 절실하지 않아서 그런 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나하고 맞지 않다는 것이다. 더군다나 지금은 우리끼리 더 같이 있어야 하는 시기라고 굳게 믿고 있다.


시간이 너무 바쁘다.

아이들 겨울방학이 끝나고 나의 겨울방학도 끝나간다.

겨울방학 중 꼭 하기로 했던 운동, 영어 공부, 여행 많이 하며 좋은 시간을 보냈다.

새해 세운 목표도 포기하지 않고 이어가고 있다.

생일파티에 초대받지 못해서 잠깐 서운했지만 대신 길게 편하고 재밌게 오후를 보냈기에 괜찮다.  

누군가의 생일에 초대받지 못해도

항상 초대받는 마음으로 따뜻하게 맞아주는 엄마라도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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