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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시 Feb 24. 2024

엄마 버스 운행 종료

2월 23일 금요일 오후 5시를 마지막으로
엄마 버스 운행이 종료되었습니다.



명절 연휴 전에 둘째 아이는 유치원 졸업을 했지만 내가 학기말 교실 정리, 업무 마무리 때문에 명절 이후에도 계속 출근을 했고 어제까지 새 학기 교육과정 연수 때문에 새로 전입한 학교로 출근을 해야 했기에 아이는 계속 유치원에 나갔다. 다행히 맞벌이 가정 아이들은 졸업식 이후에도 방과 후 과정에 참여할 수 있어서 아이는 계속 유치원에 나갔다. 이미 졸업을 했는데도 유치원에 가는 것이 아이로서도 여간 내키지 않은 일이었겠지만 막상 등원을 하면 친구들과 잘 어울려 놀기 때문에 아침에 고비만 넘기면 마음 졸일 일없이 학교 일을 할 수 있었다.


아침 매 초마다 있던 고비! 그것이 참 넘기 힘들었다.

주말, 방학이면 늦잠 자는 것이 당연한 나지만 평일 출근 시간은 한 번도 어긴 적이 없는 나름 성실한 사람이라 1분도 늦으면 안 된다는 생각에 그동안 아이와 참 많은 실랑이를 벌였다.


일단 아이가 아침에 기분 좋게 일어나야 하는데 거기서부터 난관이다.

7시만 되면, 아니 요즘은 더 일찍 일어나는 첫째는 아침에 일어나서 자기 할 일을 스스로 잘한다. 일어나면 소파에 앉아 보통 책을 보거나 나와 이야기를 한다. 전날 그렇게 많이 먹어도 일어나자마자 배고프다고 성화여서 과일과 빵, 아니면 간단한 밥을 챙겨서 아침으로 주면 야무지게 잘 먹고 양치 - 세수 - 옷 입기 - 머리 묶기까지 아주 부드럽게 이어진다.


하지만 둘째는 달랐다.

둘째가 어린이집에 다니기 시작한 3살은 나도 복직을 한 해여서 뭐든 서툴고, 바쁘고, 힘들었다.

일단 아이가 일어나지 않았다. 여러 번 불러 깨워도 7시에 일어나는 날이 드물었다.  아침잠이 많아 이불속에 쏙 들어있는 아이를 안아 일으키려면 더 자겠다는 아이를 굳이 깨우는 상황이 싫기도 하고, 그러게 전날 빨리 자야지! 하는 핀잔도 서슴지 않았다. 양쪽 팔에 베개와 좋아하는 인형을 가득 안은채 안아 달라고 하면 군말 없이 안고 거실 소파까지 데려다줬다.


거기서 1-2분 꼼지락 거리다가 식탁으로 가는 날은 비교적 양호한 날, 아니면 거실 소파에서 다시 잠이 드는 일도 많았다. 막 잠에서 깬 터라 밝은 불빛에 잔뜩 찡그리며 거실, 부엌, 안방까지 전부 소등을 명하기도 했다. 그럴 때 속에서 끓어오르는 화를 누르며 불을 꺼두면 이내 적응이 됐는지 스스로 불을 켜고 만화책을 하나 뽑아 들고 읽기 시작한다.


컵에 따라 두었던 우유가 미지근해지고, 구운 빵이 눅눅해지는 게 아까워서 밥을 먹으라고 하면 미적미적 식탁에 앉는다. 이러기까지 벌써 30분이 지났다. 이제 출근 시간이 진짜 임박해서 7시 30분부터는 매분마다 시간을 알려줬다. 그 사이 나는 출근 준비를 마치고 첫째가 먹고 치운 그릇을 설거지한다.

8시도 안 되어서 벌써 등교 준비를 마친 첫째와 달리

둘째는 이제야 느긋한 아침 식사를 시작한다. 하나하나 뜯어보고 음미하며, 치즈를 더 달라, 잼을 다른 것으로 발라달라 요구사항이 많았다. 아침 식사 시간에는 예외적으로 책을 보면서 먹어도 별 말을 안 했더니 먹는 시간 내내 책을 보고 있어 그러자면 8시가 다 되어 간다.


이제 나도 더 이상 친절한 엄마 모드는 유지할 수 없어 1분마다 닦달을 했다.

아침 내내 켜두는 EBS 라디오는 영어 공부가 목적이 아니라 알람과 같았다.

7시 20분은 이지 잉글리시

  - 이때쯤 아침을 먹어야 제일 좋다.

7시 40분은 파워 잉글리시

  - 이때쯤 양치를 해야 하는데...


파워 잉글리시가 끝날 때 나오는 음악이 들리면 7시 57분인데 그때까지도 양치를 안 한 거면 꽤 조급해졌다.

그러다가 8시 모닝 스페셜 오프닝송이 나올 때쯤이면 나와 첫째는 출근, 등교 준비를 모두 마쳤는데 이제 둘째는 식탁에서 나와 양치를 하러 천천히 화장실로 들어간다.


적어도 8시 10분에는 출발을 해야 교실에 8시 30분 전에 들어갈 수 있기 때문에 아이의 그러한 느긋함이 너무 얄밉다가도 이해도 되는 상황을 5년을 겪었다.


아침의 긴박함은 오로지 나의 몫이었고 아이는 늘 여유로웠다. 아침에 준비만 빨리 해줘도 정말 안 해도 될 말들과, 짜증과, 화도 없었을 텐데 괜스레 아이 탓을 했던 날들이었다.


첫째가 4살 때 어린이집을 다니기 시작한 2019년 3월부터 둘째가 마지막 유치원 등원을 한 어제 2024년 2월 23일까지. 5년의 시간 동안 엄마 버스는 행복한 날도 화로 넘치는 날도, 눈물 바람에 슬펐던 날도 있었지만 언제라도 위험하게 운전하진 않았다.


아이들과 같이 차에 타는 날이면 나도 노란 버스가 되어 정해진 시속을 지키고 아무리 급해도 주황불에서도 액셀을 밟지 않았다. 물론 내가 이동한 길들이 10-20분 멀리 돌아가는 길들이 아니라 다 10분 내외로 갈 수 있는 동네길이었기 때문에 가능할 수 있었다.


어린이집, 유치원 버스를 타고 등원하는 아이들을 볼 때면 부러울 때도 있었다.  굳이 그렇게 버스를 태울 만큼 먼 거리도 아니었고 내가 데리고 갈 수 있는 곳이었기 때문에 버스를 자처했다. 가끔 남편이 아이를 하원시킨다고 하면 그날 오후는 한껏 여유를 부릴 수 있을 만큼 등하원 20분의 시간이 참 바빴고 조급했다.


하지만 그런 바쁜 와중에도 차 안에서 아이들과 함께 했던 시간들엔  그 모든 것을 상쇄할 수 있는 풍경들이 있었다.


연둣빛 작은 은행잎이 거리를 노랗게 물들이는 모습도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떨어진 꽃잎들이 거리에서 달리기 하는 모습도

등하굣길에 가득한 형 누나들의 왁자지껄한 모습도

비가 너무 많이 와서 앞이 보이지 않을 만큼 어둡던 하늘도

계절이 바뀌는 그 모든 시간들을

아침과 늦은 오후 창밖에서 하루 두 번 상영되는 짧은 영화를 같이 보았다.

동백꽃 찾기


이제 아침 시간이 좀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

아침에 닦달하지 않고, 잔소리 군소리 없이 여유롭게 출근하고 등교할 수 있을까?

5년을 연습했는데 이제는 스스로 준비해서 갈 수 있지 않을까?


어제 아이를 마지막으로 하원시키는데 교실 청소 마무리가 늦어져서 선생님께 죄송한 마음과 아이에게 미안한 마음이 뒤섞여 울컥했었다. 내 아이 내가 데려다주는 일인데 뭐 새삼스러울 일도 아니었지만 이런 경험도 하나씩 마무리되어 가는 것은 아이가 큰다는 증거일 것이다.


아이가 엄마와 차를 타고 다니던 시간들을

모두 다 기억하긴 힘들겠지만

적어도 약속 시간은 꼭 지켜야 한다는 것과

엄마와 함께 봤던 창밖의 풍경

어느  한 두 장면은 꼭 간직했으면 좋겠다.

그것도 욕심일까

벌써 핀 산수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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