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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시 Apr 28. 2024

이겨본 경험

모른다고 말할 줄 아는 용기

어느 학년 군에서든 제일 중요한 과목은 수학이고, 그만큼 아이들이 싫어하는 과목도 수학이다.

아이들이 언제부터 수학을 싫어하게 되었을까?

숫자가 들어간 다양한 보드게임은 좋아하고, 숫자 세기도 잘하고, 구구단, 나눗셈, 하다못해 369 게임까지 못하는 것들이 없는데 아이들은 자신이 가진 능력치에 비해 수학을 너무 싫어하고 두려워한다. 수학 첫 시간 아이들이 수학하면 떠오르는 생각을 말했을 때 공부를 잘하는 아이든, 그렇지 않은 아이든 공통된 반응은 하기 싫고, 짜증 나고, 두렵다는 부정적인 감정이었다. 아이들이 원하는 것은 재미있는 게임을 많이 하면서 즐겁게 공부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즐거운 수학 공부?


수학은 일주일에 4시간 들었다. 나와 수업시간에 하는 것들은 수학책, 수학익힘책 순서로 하다가 똑똑 수학탐험대라는 학습 사이트에 들어가서 다양한 조작활동, 게임활동을 곁들어 수학을 한다. 학습에 필요할 때면 다양한 게임도 더불어 진행한다. 수학의 비밀에 좀 더 깊이 들어가면 좋을 때는 심도 깊은 이론도 수학 겉핥기식으로 조금씩 덧붙인다. 그렇게 나름대로 재밌게 가르치려고 노력하는 과목인데, 자기들이 원했던 아이북(경남에서 사용하는 수업용 태블릿)도 사용하면서 재미있게 하는데도 여전히 아이들은 제일 싫어한다.


5학년 2단원은 약수와 배수이다. 약수와 배수의 개념을 알아야 4단원 약분과 통분을 할 수 있고, 5단원 분수의 덧셈, 뺄셈뿐만 아니라 2학기에 이어지는 분수의 곱셈 6학년의 분수의 나눗셈까지 이어진다. 2단원이 5학년 1학기의 백미라 할 수 있기 때문에 제일 공들여 수업을 했다.


약수 - 어떤 수를 나누어 떨어지게 하는 수

배수 - 어떤 수로 나누어 떨어지는 수

이 개념을 알려주기 위해 구구단의 몫창을 알려주고, 두 수를 분해하는 과정을 반복하며 더 이상 쪼개질 수 없을 때까지 수를 분해한다. 그 후 두 수의 공통된 부분을 찾으면 그것이 최대 공약수이고 최대 공약수의 약수는 두 수의 공약수라고 자연스럽게 도출했다.

배수도 마찬가지다. 두 수의 최소공배수를 구할 때는 익히 알려진 방법도 좋지만 두 수를 최대한 쪼갠 후 공통된 부분을 찾고, 그 부분만이 아니라 나머지도 곱하는 것이라고 알려주었다. 최소공배수의 배수가 두 수의 공배수가 된다. 아직 초등학교 단계에서 배우는 것은 아니지만 미리 알아두면 심화 문제 풀이에 도움이 될 배수 판정법이나 약수의 개수 세는 방법도 알려줬고, 에라토스테네스의 체라는 소수 발견법 등도 관련 있다고 생각하여 천천히 알려줬다. 새로운 개념도 중요하지만 제일 중요한 것은 꼭 배워야 할 개념이라 배움 공책에 정리도 하고,  교과서 문제를 벗어나서 다양한 문제를 같이 풀어보면서 공부했다. 사고력 학습지라는 아름다운 이름하에 부담스럽지 않은 선에서 4-5개의 문제를 주고 스스로 풀게 했다.


그렇게 한 달간 약수와 배수를 공부했지만 여전히 많은 아이들이 약수와 배수 개념을 이해하는 것에 힘들어했다. 너무 많은 것을 가르치려고 했던 것이 독이었을까? 아이들에게 수학이 어려운 이유가 진짜 이런 개념들이 어려워서일까? 게임이 없어서일까? 그것은 아닌 것 같다.

아이들이 수학을 싫어하고 두려워하는 이유는 이겨본 경험이 적기 때문이다.



나의 수학을 떠올린다. 제일 자신 없는 과목은 수학이었다. 물론 처음부터 그런 것은 아니었다. 나는 나름 공부를 잘하는 학생이었고 1-3학년의 수학은 별다른 공부 없이도 쉬웠던 것 같다. 그러다가 최초로 수학이 어렵다고 느꼈던 것은 4학년 때 나왔던 다양한 사각형의 종류에서부터였다. 확실히 기억한다. 사다리꼴, 평행사변형, 마름도, 직사각형, 정사각형의 개념을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했다. 그때부터였다.


모르는 게 부끄러웠다.
모른다고 말하는 것이 자존심이 상했다.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말할 줄 아는 용기가 그 당시의 나에겐 없었다.

그 이후 학창 시절 중요한 시험에선 언제고 수학이 나의 발목을 잡았다. 어느 순간부터 수학은 이해하는 과목이 아니라 해답을 보고 외우는 과목이 되어버렸다. 차라리 답과 풀이과정을 모두 외우고 순서대로 풀기만 하면 되니까 편했다. 풀다가 안되면 답을 먼저 들춰봤다. 고민하는 시간 없이 답을 보면 모두 이해되었다. 하지만 그렇게 쉽게 얻은 답은 진짜 내가 푼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다음에 비슷한 유형의 문제가 나오면 얼추 풀긴 했지만 자신이 없었다. 또한 조금만 비틀어서 내면 감을 못 잡기 일쑤였다. 수학은 예측하기 힘들었고 그래서 두려웠다. 너무 당연하게도 외운다고 해서 모두 맞출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물어보는 과정 없이, 답을 외우면 편했다. 선생님에게 가서 이 문제를 모른다고 말하면 자연스럽게 그 문제 너머 내가 모르는 모든 개념들이 나를 옥죄어 오고 무능력이 탄로 날까 두려워서 그냥 차라리 답을 외우고 말았다.

그것이 나의 수학이었고 그래서 학창 시절 내내 수학이 두려웠다.


나는 내가 가르치는 아이들이 그렇게 되길 바라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개념을 읽어가며 정확하게  손으로 쓰고  천천히 문제에 다가갔다.


수학이 두려운 이유! 수학을 이겨본 경험이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개념 이해 - 기본 문제 - 게임  - 다양한 문제 스스로 풀기로 진행했다. 몇 문제없는 교과서만으로 부족했다.


학습지를 만들기 시작했다. 수학, 수학익힘책에는 나오지 않는 다양한, 새로운 유형의 문제를 접하게 해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학습지를 만들기 시작한 것은 재작년 5학년을 맡을 때부터였다. 교과서 문제만으로는 아쉬웠고, 출판사 사이트에서 제공한 단원 학습지 등도 재미없긴 마찬가지여서 새로운 문제를 찾아 여러 출판사의 사고력 문제집을 들춰 보고 그중 몇 개씩을 골라 편집하여 우리 반 아이들에게 4-5개의 문제가 들어있는 한 장짜리 학습지도 제공한 것이다.

그렇게 하려면 일단 내가 그 문제를 먼저 풀어야 했다. 처음엔 고난도 문제에서  막히는 나 자신이 믿기지 않아 당황했다. 초등학교 수준의 문제에서 당황하다니. 교사 체면이 말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쉽게 답을 볼 수는 없었다. 그렇게 해서 답을 알더라도 내 것이 아닌 문제는 아이들에게 자신 있게 내밀 수 없었다.

어떻게든 나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절대 법칙

1. 답을 보지 않는다.

2. 모르면 일단 쉰 후 나중에 다시 본다.

3. 정말 모르겠을 땐 답지를 살짝 보지만 한 두 줄만 보고 다시 덮는다.


그렇게까지 했을 때, 안 풀리는 문제는 거의 없었다.

오히려 막히는 문제가 생길 때는 쉴 핑계가 생겨 차 한잔 마시고 다시 들여다보면 십중팔구 막히던 부분이 뚫리는 기분이었다. 삼 년째 수학 학습지를 만들어 아이들에게 제공하는데 아이들의 모습은 비슷하다.


유형 1. 수학 숙제는 다 싫어 - 숙제라서 억지로 하는 아이들이다. 채점받은 후 더 손대지 않는다. 수업 시간에 풀이 방법을 설명해 줘도 잘 듣지 않는다.


2. 궁금하다 궁금해 - 숙제라서 의무감에 하는 것은 첫째 유형과 비슷하지만 이해될 때까지 계속 물어보는 아이들이다. 가정에서도 부모님과 같이 풀어보는 경우가 많고 더 쉽게 푸는 방법을 찾기 위해 노력한다. 교사에게 계속 채점을 받고 틀리면 맞출 때까지 도전한다.


3. 내가 일타 강사 -  거의 희귀한 아이들이긴 하지만 자기가 푼 방법을 친구들에게 자신 있게, 또는 틀려도 끝까지 설명하는 아이들이다. 이런 아이는 한 교실에 1-2명 정도지만 이런 아이들이 활력을 준다. 틀려도 상관없다는 생각이 기본에 깔려있고, 더 재미있게 설명하기 위해 노력한다.


4. 집에서 안 가져왔어요 - 일주일에 겨우 1장인데, 집에서 안 가져왔다는 아이들은 집에서 가져온 이후에 보더라도 거의 백지다. 자신이 이 문제를 풀 수 있다는 생각을 하지 않고, 시도조차 안 한다. 별표만 가득하다.


이 유형 중 2-3번 아이들은 문제를 풀 때마다 문제에 이기는 경험을 한다. 지금 당장 시원하게 문제를 풀지 못하더라도 언젠가 자신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차곡차곡 쌓는 것이다. 이런 아이들은 수학이 두려울래야 두려울 수 없다. 수학과 친해지는 것이다. 친해지기 쉽지 않지만 한번 친해지면 간 쓸개 다 빼주는 절친이 되어버린다. 나는 내가 못한 경험을 내가 가르치는 학생들이 되풀이하는 모습을 보고 싶진 않았다.

풀이과정을 해설지보다 더 정확하게 쓴 아이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말하는 용기와 이겨본 경험! 

이 두 개만 초등학교 수학에서 장착한다면 앞으로 아이들이 만날 수만 개의 문제와 시험에도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이런 날씨 좋은 주말에도 학습지를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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