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기 달이 있어.
딸의 침대에 같이 누워 있다 문득 고개를 들어보니
단단한 달이 창문 밖으로 둥그렇다.
환하고 둥그런 달빛이 어둔 방 창문 사이로 들어와
조용히 잠든 아이의 얼굴을 비추고 있었다.
잠시 그렇게 누워 있다가
아이의 고른 숨소리에 일어서서 다시 달을 보았다.
거기 있어주었구나.
거기 있어 줘서 고맙다.
까무룩 잠이 들었다가 눈을 떠보니 겨우 12시가 안 된 시각이었다.
다시 자려다가 오랜만에 눈뜬 새벽이 아까워서 앉아 있는데 딸아이 방이 열린다.
잠결에 볼일을 보고 물을 마신 아이가 같이 자기 방으로 가자며 이끌어 옆에 누웠다.
한번 깬 잠이 쉽게 오지 않아 가만히 있는데 어느새 고른 아이의 숨소리가 들렸다.
됐다 싶어 고개를 들어보니 하늘에, 창문 밖으로 보이는 밤하늘에 희고 동그란 달이 박혀 있었다.
"저기 달이 있어."
입 사이를 비집고 나도 모르게 말하는 소리에 딸도 다시 눈을 떠 하늘을 본다.
창문 너머 보이는 달은 조그맣지만 단단했다.
곁으로 빠르게 지나가는 구름에 휩싸이면서 그 빛을 잃지 않았다.
아이는 다시 잠이 들고, 나는 그 빛을 한참 쏘이다가 방을 나왔다.
혼자 잠든 아이가 대견하면서도 어둠 속에서 한참을 혼자 덩그러니 있을까 봐 안쓰러웠는데 그 작은 창문으로도 달빛은 부지런히 아이를 감싸주고 있었다니 다행이었다.
별일 없이 지나가는 하루에 조바심을 내며 특별한 일만을 꿈꾸던 날들이었다. 매일 변하는 세상 뉴스에 나만 뒤처진 것 같아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다. 평범한 하루의 소중함을 몰랐고, 너무 평범해 보잘것 없어질 것 같은 인생이 지겨워 안달이었던 날들이었나 보다.
복에 겨운 투정은 몇 가지 변화에 단박에 사라져 버렸다.
안 좋은 일들은 혼자 오면 안 되는 법이라도 있는지 꼭 연달아 일이 터진 것이다.
시골에 사시는 시어머님이 차에 오르다 넘어지셔서 어깨가 크게 다치셨는데 별로 살갑지도 않은 며느리까지 어깨에 문제가 생겼다. 안 그래도 별로 좋지 않던 어깨가 영 신경 쓰였는데 자고 일어나 보니 팔을 올리지도 못할 만큼 통증이 생겼다. 하루 이틀 자고 괜찮을 줄 알았는데 시간이 지나도, 잠을 잘 자도 영 차도가 없어 병원에 가니, 어깨 힘줄에 석회가 생겼다고 한다. 엑스레이 사이로 보이는 손톱 모양의 둥그런 돌덩이 두어 개가 제자리도 아닌데 차지하고선 그렇게 날 선 아픔을 주다니. 아픈 것도 컸지만 당황스러웠다.
어째서 저렇게 단단해 보일까?
어디서 저런 것들이 돌아다니다가 어깨에 자리를 잡았을까?
안 좋은 자세나, 집안일, 수영까지 원인은 다양하겠지만 딱히 뭐 하나 단정 지을 수 없다는 의사 선생님의 말에 궁금증은 더 커졌지만 물리치료, 체외충격파, 수액 주사까지 맞고 다니 좀 살 것 같았다.
석회성 건염이라는 진단을 받은 지 이제 며칠.
다만 조금이라도 어깨에 좋다는 운동을 찾아보고, 마사지도 하면서 이 통증을 살살 달래고 있다. 모르면 몰랐지 아는데 이전처럼 어깨를 마음대로 쓸 수는 없었나 보다. 가방이나 짐도 오른손으로 들던 것을 왼쪽으로 들고, 청소기도 왼손으로 돌리고, 잘 때는 모로 누워 잤는데 남편을 바닥으로 내려 보내고 넓게 누워 잤다.
그렇게 밤에 자던 와중에 깨고 딸과 달을 보았다.
저기 달이 있던 것을 처음 본 사람처럼, 환한 달빛이 딸 방을 나 대신 밝혀 주었다는 것이 새삼 고맙고 기특했다.
내 어깨도 달처럼 나를 항상 받쳐주고 지지해 줬는데 그걸 모르고 함부로 사용했다.
부모님들께서 건강하시다는 것도 내 평안한 일상을 지탱하게 해주는 건데 그걸 모르고 살았다. 그러면서 걱정이 없는 것이 걱정이라는 말을 쉽게 했었다. 행복이 당연한 권리인 듯 누리면서 고마워하지 않았다.
그게 아팠다.
어깨가 아픈 것보다 더.
구름에 가려도, 모양이나 자리를 조금씩 바꿔도 달빛은 달빛이다.
아마 그 자리에서 잠을 자는 딸을 늘 보듬어줄 것이다.
고맙고 고마운 사람들에게 미안한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