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직문학상 1차 심사에 떨어지다
지난 6월에 응모한 공직문학상 1차 심사가 7월 20일에 발표됐다.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응모했고, 생각만큼 치열하게 준비하지 않은 탓도 있겠지만, 생각처럼 좋은 결과는 아니었다. 컴퓨터 바탕화면에 조용히 잠들어 있는 글을 흔들어 깨워서 나라도 보아야지 싶었다. 제출할 땐 나름 흡족한 마음에 기대를 품고 냈는데 다시 읽어보니 여기저기 손볼 곳도 많고, 크게 재미있지도, 크게 감동적이지도 않은 내용이다. 절치부심의 마음으로 브런치에 올려본다.
처음에 수영을 시작했을 땐 이렇게 오래 배워야 하는지 몰랐다. 알았더라면 시작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수영을 배우기 시작한 지 햇수로 4년째, 3년을 꽉 채웠다. 물론 일주일에 3일만 나가는 농땡이 수영인이긴 해도 발가락 부러지고 못 나간 석 달을 제외하고는 매달 수영장 계좌를 성실히 채워주는 일등 강습생이다.
어리석은 자도 일주일이면 깨친다는 훌륭한 한글을 만드신 세종대왕께선 몸이 어리석은 자가 자기 몸을 깨치는 데는 얼마나 걸릴지도 예상하실 수 있으셨을까?
그렇다. 나는 몸이 어리석은 자다. 어린 시절을 돌아보면 이 어리석은 몸 때문에, 벌어졌던 자잘한 사건들이 펼쳐진다. 동생과 사촌 언니, 나까지 세 명이 보조 바퀴 달린 자전거 한 대에 어린 몸을 싣고 논두렁 아래로 처박힌 사건이 첫 번째요, 초등학교 때 계주 선수로 뽑혀 네 번째 주자로 달리고 있었을 때, 트랙에서 달려야 할 다리가 허공에서 공회전하다 이긴 경기를 꼴등으로 마무리한 일도 있었다. 교사가 된 이후 수요일은 가장 싫어하는 요일이었는데 물론 배구 때문이었다. 신규 발령받은 함양의 시골 학교에서 내리 5년을 근무했지만, 그 5년 동안 서브 성공률 50퍼센트를 도달하지 못해 두 번에 한 번은 네트에 골인했고, 9인 배구에서 오른쪽 귀퉁이에서 벗어나지 못했으며, 배구보단 끝나고 먹는 간식이 더 끌려 공보단 체육관으로 배달 오는 오토바이를 기다리곤 했다.
이렇듯 몸을 움직이는 것에는 영 젬병이었던 나도 꼭 배우고 싶다고 생각했던 유일한 운동이 수영이다. 꼭 배워야 할 이유는 없었다. 누구나 한 번쯤 있을 계곡, 목욕탕에서 물에 빠졌던 경험으로 생존에 꼭 필요해서 배우고 싶었던 것은 아니다. 언젠가 박태환과 펠프스를 보면서 수영을 하는 몸이 아름답다고 느꼈다는 것 정도다. 물을 가르는 몸의 가벼움과 아름다움을 막연하게 감지했던 것 같다.
수영을 배울 기회는 영 찾아오지 않았다. 시골에서 나고 자랐기 때문에 수영장을 가본 적도 없었고, 대학 시절은 먹고 마시고 논다고 수영장을 찾을 시간이 없었다. 근무를 시작한 학교도 앞서 말했던 것처럼 시골 학교였기 때문에 수영장이 있을 리 없었지만, 딱 한 번 배울 기회가 있었을 때도 한 달이었던 강습 기간 내내, 학교 일 때문에 바빠서, 수업 준비를 해야 하므로, 놀러 가야 하니까 등 갖가지 이유를 대면서 제대로 배우지 못하고 어느새 아이 둘을 낳은 아줌마가 되었다. 사는 동네가 무려 거제인데도 바다는 사진만 찍는 곳이고, 개헤엄도 못 치니 근처에 워터파크가 있으면 뭐 하랴, 유명한 해수욕장이 있어도 결국엔 집에 있는 것을 선택했으니, 수영에 대한 열망이 사라져 버린 줄 알았다.
그러다 기회는 느리지만 강력하게 찾아왔다. 첫째가 초등학교 1학년이 되고, 6개월의 육아휴직을 쓰게 된 것이다. 처음 수영장 문을 열기까지 여러 번 고민했다. 운동 한 번 하는데 생각이 백 번, 망설임은 천 번. 일단 시작하면 어떻게든 되겠지 싶었다.
먼저, 몸 상태부터 점검했다. 딱 달라붙는 수영복 하나만 입는 운동이다 보니 아무래도 신경 쓰이는 게 당연했다. 사람들이 수영을 섣불리 시작하지 못하는 이유도 바로 군살 붙은 몸이다. 다른 운동처럼 멋진 체육복으로 몸을 가릴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물속에 오로지 얇은 수영복과 수모만 입고 들어가기 때문에 어느 때보다 정직하게 내 몸을 마주할 수 있다. 지금도 며칠만 수영하지 않아도 근육이 금방 무너지고 작은 수영복이 더 작게 느껴진다. 몸 상태는 금방 어떻게 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니 포기하자 다음엔 수영복이 문제였다. 너무 저렴한 것은 디자인이 별로, 너무 비싼 것은 지갑 사정이 불가능, 적당히 무난한 가격에 몸이 또 적나라하게 보이지 않는 디자인을 찾아야 했다. 또 마음에 드는 디자인도 결국엔 내 몸에 적당히 어울려야 했으므로 인터넷으로 며칠 걸려 배송을 받아도 사이즈 때문에 돌려보내기 일쑤였다.
한 가지 터득한 방법은 인터넷 리뷰가 너무 많거나 적지 않고, 내가 생각한 이상적인 사이즈가 아니라 그보다 한 치수 더 크게 주문하면서, 질리지 않을 만한 디자인으로 고르기까지 시간이 제법 걸렸다. 몸 상태와 수영복을 고르느라 시간을 보낼 때 사실 나는 정작 내가 진짜 수영할 수 있는 몸인지 봐야 했다. 호흡법이라도 연습하고 수영장에 들어가야 했는데 다른 것은 신경 쓰면서 제일 중요한 것은 파악하지 못한 채 입수했다.
한 달이면 대강 배울 수 있을 것 같았다. 한 달 동안 열심히 연습하면 자유형은 금방 떼겠거니 했다. 수영이 진입 장벽 높은 운동인 이유가 영법을 모두 배우는 데 많은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영법을 모두 배우더라도 갖가지 드릴을 연습하면서 물의 저항을 최대한 덜 받고 적은 힘을 쓰면서 수영하는 길까지는 멀고도 멀었는데 시작한 지 한참이 지난 지금도 어렵다.
머리를 물속에 넣고 음파 호흡을 제일 먼저 배웠다. ‘음’ 하면서 몸 안에 남은 숨을 느리게 나눠 뱉고, ‘파’ 순간적으로 입을 벌려 몸 안에 공기를 모두 내보낸 후, ‘흡’ 공기를 가득 담은 후 입과 코를 막아야 한다. 이 호흡법을 알게 되기까지 수많은 수영 유튜버를 검색했고, 수영장 물을 얼마나 마셔야 했는지 모른다. 호흡 하나만 배우는데도 이렇게 시간이 걸리는데, 맨날 호흡만 연습하는 게 아니라 호흡이 딸리는데도 킥판을 잡고 발차기 동작, 팔로 물을 잡아당기는 풀 동작 등을 기본으로 하고 자유형부터 시작해서 배영 발차기, 평영 발차기-팔동작, 접영 웨이브- 팔동작을 시간차를 두고 동시에 진행했다. 자유형만 제대로 하면 좋겠는데, 이것저것 잘 모르는 것까지 동시에 하다 보니 지루할 틈은 없었지만 시선 끝은 항상 시계였다. 머리와 몸이 따로 노는 와중에, 선생님은 계속 몸에 힘을 빼라고 했다. 몸에 힘을 준 적이 없는데 무슨 힘을 빼라고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물속에 풍덩 들어가면서 차가운 수온에 일단 경직되고, 여러 번 숨차게 발차기하면서 레인을 돌다 보면 몸이 풀리는 것이 아니라 긴장과 힘듦이 쌓여 몸이 더 뻣뻣해졌다. 같은 수영장에 있더라도 경력이 쌓인 회원들과 가장 다른 부분이었다. 몇 바퀴를 돌아도 크게 숨을 헐떡이지도 않고, 다시 출발선에 섰을 때 처음 하는 것처럼 가볍게 물을 차고, 당기는 모습에서 어느 한구석 힘이 들어가지 않는 경력자들에 비해, 나는 발을 찰 때도 힘이 잔뜩! 호흡할 때도 힘이 잔뜩, 팔을 잡아당겨 돌릴 때도 기합이 들어가 물 위에 뜨기도 전에 아래로 가라앉았다. 그렇게 힘이 잔뜩 들어가니까 물을 타면서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힘을 준 방향으로 끌려가고 있었다. 어느 정도 경력이 쌓인 지금은 물속에 들어갈 때는 최대한 힘을 빼려고 한다. 물을 거스르려고 하지 않고, 물이 나를 보내줄 수 있도록 살살 뒤로 보내면서 앞으로 나간다. 물을 잡고 씨름하는 것이 아니라 물을 놓아주는 법을 아는 것. 그것을 아는데 무척이나 오래 걸렸다.
육아휴직 기간이 끝나면 얼추 배울 줄 알았던 시간이 길어졌다. 시작한 지 육 개월이 지나갈 때까지도 어린이 수영장이 마음 편했다. 바닥에 발이 닿아야 안심했다. 성인 수영장에서 사람들이 요란할 동안 물방울이 똑똑 떨어지면서 생기는 파문을 온전히 느낄 수 있는 얕디얕은 어린이 수영장을 독차지할 수 있어 좋았다. 물속에 가라앉을 염려 없고, 저항도 적어서 무엇을 하든 가볍게 움직일 수 있어서 제법 수영하는 맛이 났다. 그러다가 새벽 5시 30분 타임으로 시간을 옮기고 얼마 후 성인 수영장으로 들어갔을 때는 그동안 배웠던 것을 다 잊고 다시 처음 시작하는 것처럼 다시 배워야 했다. 깊어진 것은 물뿐만 아니라, 잊은 줄 알았던 공포심도 깊어졌다.
줄줄이 일렬로 서서 선생님의 지도에 따라 연습할 때 나는 맨 꼴찌였다. 누가 거기 서라고 말한 것도 아닌데 자연스럽게 앞서는 것보다 맨 뒤에 서 있는 것이 편했다. 못한다고 나무라는 사람도 없고 더 빨리 돌라고 재촉하는 사람도 없는데도 선생님 말씀도 잘 안 들리는 뒷 순서를 고집했던 이유는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발차기, 팔동작 어느 하나 자신 있는 부분이 없어 누가 나를 보는 것이 부담스러웠다. 맨 뒤에서 아무도 모르게 따라가는 것이 속 편했다. 힘들면 도망쳤다. 벌게진 얼굴로 가쁜 호흡을 씩씩대면서 샤워할 때마다, 하루를 시작하자마자 자괴감에 휩싸이곤 했다. 남들은 두 바퀴를 돌 때 나는 한 바퀴만 돌아도 힘들어서 다른 분들 나가는데 방해 안 되려고 벽에 바짝 붙어 설 땐 몇 번 숨 고르고 있으면 다시 내 차례가 되어 쉬는 것 같지도 않았다.
힘들면 멈추고, 도망치고, 속상하다가도 다시 수영장으로 갔다.
숙제 안 하고 공부 안 하고 집중 안 하는 우리 반 아이들 마음을 이해했다. 새벽 수영 초보-중급-연수반 통틀어 내가 제일 못했다. 잘하든 못하든 아무도 신경 쓰는 사람 없다는 것을 안 것은 그로부터도 한참 뒤였다. 수영할 때 시선은 정면에서 약간 사선 아래쪽 방향, 다른 사람들의 발꿈치가 보이면 맞다. 하지만 보통 보이는 것은 팔의 움직임과 호흡 때문에 생긴 공기 방울들이다. 물속에선 남들의 시선이 보이지 않는다. 강습의 특성상 여럿이 같은 동작을 배우고, 순서대로 움직이기에 너무 느리거나 동작이 서투르면 누가 볼까 싶어 신경 쓰일 수 있지만 그럴 필요가 없다. 오로지 집중해야 하는 것은 자신의 호흡과 힘 조절뿐이다. 그렇게 크게 자신의 숨소리를 들을 수 있는 곳은 수영장 물속뿐이다. 한순간도 쉬지 않는 호흡 속에서 자기만의 호흡을 온전히 알아채는 곳이다. 초급반에서도 제일 못하던 내가, 여전히 초급반이긴 해도 수영을 그만두지 못한 이유는 물속에서만 만날 수 있는 내가 있기 때문이다.
수영하는 몸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았다. 지난밤 최소 10시에는 자야, 5시에 일어날 수 있다. 도파민으로 점철된 핸드폰을 더 잡고 싶고, 애들 다 재우고 몰래 치킨 한 마리 뜯고 싶은 그 마음을 꾹꾹 누르고 잠이 든다. 잠이 들 땐 더 누리지 못한 하루가 아쉽지만 잠이 깰 땐 1분이라도, 30초라도 더 눈을 감고 싶어 시끄러운 알람 소리도 무시하고 이불속으로 들어간다. 짧지만 강렬한 전투 끝, 패배하면 하루를 제대로 시작하지 못했다는 부끄러움 속에 하루를 보낸다. 승리하면 동트는 새벽녘 희미하게 빛나는 별과 인사할 수 있고, 한 시간 후 땀과 함께 달아간 피로감 덕분에 햇살 속으로 당당히 걸어갈 수 있다.
수영은 즐거운 운동은 아니다. 하하 웃으면서 재미있게 할 수 있는 운동이 아닌 학학 숨을 몰아쉬며 이 악물고 하는 운동이다. 한 번의 길게 내뱉는 숨에 지난밤의 피로가 거품이 되어 사라진다. 또다시 길게 내뱉는 숨엔 가장 아래 밑바닥에 깔린 망설임과 게으름이 물속에 흩어져버린다. 그렇게 한숨, 한숨이 호흡으로 길게 이어지고, 비밀스럽게 열렸다 닫히는 나만 느끼는 아가미가 생길 때까지 버틴다면 비로소 그때서야 수영하는 몸이 된다.
수영하는 몸.
육중한 공기에 내리눌렸다가 편안하게 펴지는 어깨
물이 흔들리는 대로 따라 일렁이는 가슴과 팔.
수경 때문에 꽉 조인 머리를 들면 창문으로 들어온 빛이 수영장 밑바닥까지 들어와 새겨지는 빛의 찬란한 무늬를 조우할 수 있는 눈.
앞선 사람의 숨을 따라 물결을 헤치면서 좀 더 견고해진 섬세한 근육.
부르륵, 나만 들을 수 있는 내 숨이 떠오르는 소리를 알아듣는 귀.
수면과 마찰하며 경쾌한 박자를 만드는 두 다리.
이 모든 것들이 가능하게 만드는 쉬지 않는 심장. 평생을 먹고 자고 마시는 몸이었다가 한순간에 수영하는 몸으로 변하지는 않았다.
한 걸음, 한숨, 한 번의 캐치, 한 번의 발차기가 모이고 모여 만들어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