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다시 May 09. 2022

내가 먹방을 보는 이유

먹방 시청 반성문

삼일 동안 집을 비웠다. 아이들과 어버이날을 맞아 할아버지 댁, 외할아버지 댁을 방문했기 때문이다.

두 시간 넘게 운전을 해서 집에 오자마자 가방 정리와 집안 정리를 하느라 힘이 들었다.

삼일 동안 먹었던 음식으로 인해 놀란 뱃속을 달래느라 저녁은 오랜만에 굶었다.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역시나 배고프면 잠이 깊게 들지 않는다. 아니면 오후 늦게 먹은 커피가 효과를 발휘해서였는지 12시가 조금 넘어서 일어났다.


토지 8권을 옆구리에 놓고 소파에 벌러덩 누워 달리 할 것이 뭐있을까 먹방을 봤다.

유튜브에서 자동으로 올라오는 여러 컨텐츠 중에 먹방을 골라본다.

이미 본 것도 있고 아닌 것도 있다.

휙휙 손가락으로 넘겨서 하나를 골라 보고 싶은 부분만 스킵해서 본다.

그리고 같은 유튜버의 다른 먹방도 본다. 그렇게 계속 보다 보면 잠은 어느새 깨고 눈은 피곤하다.

같은 자세로 누워 있다 보니 허리도 아프고 아직은 밤이 썰렁해서 이불도 덮는다.

그리고 다시 알고리즘으로 뜨는 영상을 누르고 본다.

출처 유튜브 화면  캡쳐


매운 떡볶이를 두세개 집어서 한 입에 호로록 오물오물 씹어 넘기는 모습

짭짤하고 고소한 치즈볼을 떡볶이 국물이 찍어 한 입 크게 베어 먹은 후 치즈볼 속을 확인한 후 다시 꿀꺽 먹는 모습

빨갛게 매운 소스의 라면을 휘적휘적 잘 비빈 후 피자에 얹어 먹는 모습, 또는 핫도그에 얹어 먹는 모습

커다란 치킨 조각을 몇 번 베어 먹은 후 뼈만 툭 뱉는 모습

그런 치킨에 하얗고 달콤하며 고소할 것 같은 소스를 듬뿍 찍어 먹는 모습  

이렇게 한 시간 정도 본 것 같다. 이미 깊은 밤중, 현타가 온다.


내가 무엇때문에 이 사람이 음식을 먹는 장면을 계속 보고 있었을까?

단순히 배가 고파서였을까?

걸을 때는 경제 유튜버를 보면서 투자 공부에 대한 의지가 활활 타오르지만 혼자 있을 때까지 그런 영상을 보며 부담감을 느끼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아주 원초적인 먹는 모습을 보는 것이다.

내가 먹고 싶은 음식을 대신 먹어주는 유튜버들의 먹방을 보면서 나는 대리 만족을 하고 있다.

그러면서 그들의 입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음식들을 보며 내가 아는 맛, 익숙한 그 맛을 지금 내가 먹지는 못하지만 먹고 있는 듯한 착각에 빠져든다. 내 입을 대신해서 먹는 저들이 입을 관찰하면서 유체이탈을 경험한다.


실제로 떡볶이를 시키면 4-5번 먹방 유튜버들이 먹는 모습을 기억하며 입이 터지게 먹지만 그다음부터는 배가 불러 더 먹지 못하고 포장 뚜껑을 덮는다. 치킨도 마찬가지다. 남편이랑 같이 치킨을 먹을 때가 한 두 달에 한 번? 정도 있는데 그때도 둘이서 한 마리를 다 먹지 못한다. 그러면서도 먹방을 보면서 나도 다음에 저렇게 먹어봐야지! 꼭 먹어야지 때아닌 전의를 불태운다.

출처 유튜브 살빼조 검색 화면 캡쳐

먹방을 보는 가장 큰 이유는 야식을 끊었기 때문이다.

3월 21일, 야식을 끊은 날이다.

밤에 일어나면 달콤한 레몬차나 복숭아 홍차 또는 과일, 비스킷, 아이스크림 등을 한 두개 먹곤 했다.

많은 양은 아니지만 바삭하고 달콤한 그것들을 먹으면 기분이 좋아진다. 행복한 밤이 되었다.
사람이 이 맛에 사는 구나를 느꼈다.
우리 아이들은 엄마가 밤에 무엇을 먹었는지 다 안다. 휴지통을 열어보면 흔적이 있으니까.

그런데 3월 21일 나는 뭔가 새로운 것을 도전하고 싶었고 야식을 끊기로 한 것이다.

아이들과 남편에게도 공표를 했다. 그 이후 진짜로 야식을 끊었다.(아직까지는)

밤에 일어나 책을 보거나 글을 쓸 때면 심심해서 먹었던 그 음식들이 먹어달라고 서랍장에서 나를 부르지만 먹지 않았다. 그렇게 야식을 끊은 지 한 달이 넘어간다. 분명히 야식은 끊었는데 먹방 시청이 시작되었다.

유튜브 메인 화면에 알고리즘에 먹방이 두세 개 뜬다. 그것만 보면 좋은데 또 다른 영상 영상을 계속 누르게 된다.

이쯤 되면 그냥 야식을 먹는 것이 낫지 않을까?


야식을 끊은 후 신체의 변화?

아직은 잘 모르겠다.

간간이 생기던  뾰루지는 많이 안나는 것 같다. 살이 빠졌다거나 몸에 라인에 생긴 것은 스스로 알아채지 못할 정도니 아직 몸의 변화는 없는 것 같다. 야식 끊기는 5월 28일까지 지속될 예정이다. 그날은 건강검진 예약일이다. 건강검진을 위한 야식 끊기는 아니었으나 아무튼 그날까지는 야식을 먹지 않을 것이다.  

한바탕 휘몰아치듯 관련 영상 먹방을 본 후 그 끝은? 허무다.

왜 봤지? 이것을 이렇게 눈이 빠져라 본 나에게 밀려오는 혐오다.

남의 입 속으로 들어가는 그 음식물을 나는 왜 부러워하는지에 대한 자괴감이다.

먹방 유튜버들에 대한 비방이 아니라 그런 영상을 시청하는 나에 대한 비방이다.


예전에 엄마가 한 말 중 아직까지 뇌리에 남는 말이 있다.

"딸, 네 몸은 쓰레기통이 아니야."

엄마가 왜 그렇게 말했는지 그 상황까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지금보다 더 젊었을 때 먹방이란 표현도 없었던 그 때부터 나는 음식을 매우 사랑하고 먹는 행위를 즐거워했나보다. 그런 딸의 옆구리살을 걱정하며 엄마가 했던 말이다.


내 몸은 소중하다. 어느 부분 하나 소홀할 수 없는 소중한 내 몸이다. 야식을 끊으면서 내 몸을 지키게 되었으니 (무엇으로부터?) 눈도 보호해주자. 음식에 대한 과한 욕심과 상상력을 다른 곳에 돌려야겠다. 지난 밤 과한 영상 시청으로 인한 반성으로 이러한 글을 쓴다.

(내가 제일 사랑하는 햄지님 영상은 그래도 포기할 순 없을 것 같다.)

이전 22화 미니멀리즘 나도 하고 싶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