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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시 May 12. 2022

도서관 덕후

둘째 유치원에 보내고 도서관에 왔다. 작년 가을에 완공된 우리 동네 시립도서관은 언덕 높이 올라가야 갈 수 있다.

동네를 한눈에 내려다보는 곳에 도서관이 있다.

하이고,  다리로 올라가려면 곡소리가 절로 났겠지만 언덕 위까지 쌩쌩 모셔다 주는 자동차 타고 도착했다. 4 도서관 건물은 1-2층은 주민센터, 3-4층은 도서관으로 되어 있다.

익숙하게 계단을 올라 반납할 책을 도우미 분께 드리고 도서관 안으로 들어간다.

나는 도서관 덕후다.

도서관에 있는 책을 사랑하기보다 도서관에 가는 행위와 도서관 장소 자체를 사랑한다.

신간도서 코너를  둘러보고 눈은 높은 서가 가득 꽂혀 있는 책들을 훑으면서 지나간다. 흥미로운 제목의   두권 뽑아 들고 항상 앉는 자리에  앉는다.

그리고 계속 읽는다.

평일 오전 9 , 도서관을 찾는 이는 많지 않다.

월요일 하루   화요일엔 오전이라도 약간 북적거리지만 오늘 같은 목요일 오전에는 거의 아무도 없다. 고요한 도서관 한쪽 구석에서 나는 책을 읽었다가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다가 아니면 조금 멍하게 책들을 바라보곤 한다. 마음의 평화가 찾아온다.


도서관을 사랑한 것은  오래전부터이다.

그땐 그것이 사랑인 줄은 몰랐다. 그저 곁에 있었을 뿐.

시골에서 태어났지만 다행히도 초등학교, 중학교 근처에 공공도서관이 있었다. 여름과 겨울 방학이면 공공도서관에서 하는 독서캠프에 참여했다. 방학 중 일주일 정도 도서관에 가서 책을 읽고 독후감을 쓰거나 만들기 등을 했던 활동이었는데 엄마는 방학이면 나와 동생을 같이 붙여 그곳에 가게 했다.  어릴 적 읽은 책들은 대부분 그때 도서관에서 빌린 책들이다.  겨울밤, 도서관에서 빌린 올리버 트위스트를 뜨끈한 이불 속에 들어가 읽으면서 나는 얼마나 분해하고 얼마나 슬퍼했던지 그 감정이 여전히 남아있다.


중학교는 판타지의 세계였다.

전설로 남은 퇴마록, 가즈 나이트, 성검전설  이런 류의 소설을 읽을  있었던 곳도 도서관이었다.

내용은 이미 희미해졌지만  책을 읽었을  나는 희열에 가득 찼었고  읽고 싶은 갈증에 휩싸였다.

너무 재미있어 그날 빌린 책은 자기 전까지 모두 읽어 치우고 다음날 다시 도서관에 갔다.

읽어 치운다는 말이 맞다. 그저 글자를 읽고 재미에 빠졌던 시기였다.

공지영, 박완서 작가의 책을 그 시절에 접했었다.

중학교 때 도서관에서의 추억은 더 있다.

시험 기간이면 친구와 바로 도서관에 가서 공부를 하는데 책 밑에 과자를 두고 몰래 녹여 먹던 일,
공부는 뒷전이고 휴게실에서 떠들고 놀다가 사서 선생님에게 혼난 일.

그 시절 나에게 도서관은 친구와 놀던 우리들의 아지트였다. (되돌아보니 참 건전했구나.)


고등학교 때는 나름 성실하게 공부를 했었던 모양이다. 동생과 같이 자취를 하던 아파트 근처에 시립 도서관(전주 인후 도서관) 있었는데 주말 아침, 방학이면 가방에 참고서, 교과서를 잔뜩 넣고 도서관에 갔었다.

물론 자리를 맡은  열람실에 가서   바퀴 빙그르르 돌고 재미있는   없나 기웃기웃 대다가 배고프면 매점에 가서 라면을  먹는 일이 제일 좋았지만.

그때 도서관에는 DVD   있는 시청각실이 있었는데 최근에 유행했던 영화를 빨리   있어서 공부하러 갔다가 영화만 보고  적도 많다.

동생은 나보다  심했다.


우연일지 몰라도 항상 근처에 도서관이 있었다.

나는 게임을 하지도 않고 달리 취미도 없었기에 도서관 가는 것이 유일한 휴식이었고 취미였나 보다. 책도 많이 읽었지만 기억에서  내용들은 대부분 사라지고 없다. 책을 읽어서 유익했다기보다 도서관이 주는 편안함과 긴장감, 엄숙함 그런 느낌이 좋아 자주 갔었다.

첫째 아이가 막 걸음마를 뗐을 때, 아장아장 걷는 아이를 데리고 집에서는 꽤 멀었던 시립 도서관에 갔었다. 어린이 도서관에서 읽어 줄 책을 고르면 아이는 혼자 뭐가 좋은지 돌아다니면서 여기 저리 구경을 했다. 나는 그런 아이 뒤꽁무니 쫓아다니며 뒷정리하는 데 바빴지만 그렇게 아이와 가는 도서관은 아직도 선명하다. 자판기에서 시원한 음료수 하나를 뽑고 도서관 벤치에 앉아 아이와 나눠 먹었던 기억. 도서관 유리문에 꽝 부딪쳐 넘어진 아이를 달래주던 일.. 도서관이 아닌 장소에서도 일상처럼 있었던 일이지만 그냥 도서관에 아이와 같이 있을 수 있다는 생각에 더 특별했던 기억들.


도서관에 이제 나 혼자다.

휴직을 하기 전 나는 도서관에 하루 종일 책만 읽었으면 좋겠다고 소원한 적이 여러 번이다.

소원을 이루었다. 그런데 내 참을성과 인내심은 꽤 길지가 않아서 한 권을 책을 다 읽도록 의자에 앉아있는 것은 너무 힘들었다. 그러면 서가 곳곳 누비며 산책을 한다. 구불구불 서가를 돌면서 어디에 어떤 책들이 있는지 눈여겨본다. 요리, 자녀 교육, 경제, 철학, 사회, 역사, 문학 여러 장르의 책들을 볼 때면 이런 책은 다 누가 만들었나 싶어 경이롭다.

혹시 나도 이런 책을 쓸 수 있을까 조심스레 꿈을 가져본다. 그동안 도서관은 나에게 평온과 열정을 주는 곳이었다.
그런 도서관에게 내가 묻는다.
'나도 할 수 있을까? 나도 책을 쓸 수 있을까?'
도서관은 덕후에게 대답한다.
'너도 할 수 있어. 수많은 책 중에서 오직 하나. 너만 쓸 수 있는 이야기가 담긴 책을 내게 줘.'
아무도 모르게 그 꿈을 도서관 한편에 묻어 놓고 내일도 다시 도서관으로 올 것이다.

내 꿈이 얼마만큼 자랐는지 매일 확인하러 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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