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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시 May 14. 2022

남편을 옷방에 재웠다

남편의 회식에 대처하는 아내의 자세

거리두기가 풀린 이후 남편의 회식이 잦다.

이번 주는 월요일엔 검사가 늦게 끝나 9시경 귀가했고 화요일엔 시운전을 나가기 전 생산팀과 저녁 식사를 한다고 10시쯤 들어왔다. 그리고 오늘 11시 반 넘어서 들어왔다.

매일 한 시간씩 늦을 건가 보다. 다음 회식은 새벽에 들어올 예정인가?


몇 주 전부터 밑밥을 깔긴 했다.

- @@이가 울산에 가.

- 오빠가 제일 얘기 많이 한 분 같은데.

- 응. 내가 제일 믿는 앤 데. 얘 말고 제대로 하는 놈이 없는데.

- 그래도 뭐 괜찮은 조건이니까 결정한 거겠지.

- 나도 34살에 이직했는데. 지금 나이가 딱 옮겨서 다른 회사에서 다시 배우기에 좋은 때지만. 너무 아까워

- 진짜 사랑했구나.

- @@이 진짜 괜찮은데.

- 여기서 잘한 분이니까 거기서도 잘하실 거야. 응원해 줘.


회사에서 제일 친한 후배가 다른 회사로 이직을 했다며 무척 아쉬워하길래 그 하소연을 다 들어줬는데 오늘 송별회를 한다고 했다. 회식을 하더라도 9시와 10시 사이에 들어오는터라 그럴 줄 알았는데

어랍쇼? 11시가 넘어도 안 온다.

아이들 재우고 9시 반, 살짝 아이들 방에서 나와서 가볍게 산책을 했다.
집에 10시 반쯤 왔는데 현관에 남편의 운동화가 없다.

꽤 늦네? 싶어 문자를 보낼까 말까 하다가 보냈다.
회식 때 절대 문자를 보내지 않는다. 회식을 가지 말라고 한 적도 기필코 한 번도 없다.

친한 후배라서 송별회가 꽤 길어지나 싶었지만 조금 걱정되는 마음에  문자를 했다.


- 빨리 와

1이 사라지지 않는다. 문자에 응답이 빠른 편인 남편인데 취했구나. 직감했다.


남편 나이 42. 주량이 꽤 센 편이었다. 결혼 전 남편과 술 마실 때면 언제나 업혀 가는 것은 나였다.

나는 임신 이후로 술을 당연하지만 완전히 끊었다.
임신과 출산이 연거푸 있고 수유까지 모두 마치니 4년 가까운 시간이 지났다.
무알콜도 마신 적 없고 그 좋아한 맥주도 끊었었다.

나는 술보단 안주를 더 좋아하는 사람이었지만 술자리를 좋아하고 자주 참석했다. 맥주도 좋아하고 소맥도 어설퍼도 타서 마실 정도였는데.. 그런 나는 알코올 무능력자가 되었다.

복직 이후 회식이 한 두 달에 한 번씩 있어서 간단한 맥주나 와인을 곁들인 식사를 할 때 과하지 않게 잘 마셨다. 그런데 내 몸이 더 이상 술을 원하지 않는구나! 라고 느꼈다.


코로나 이후 간간이 있던 회식자리도 없고 혼자 먹기는 싫고 남편이랑 가끔 치킨 먹을  맥주   정도 하니 알코올 분해 능력이 정말 사라졌을 수도 있다. 아무튼 나는 천천히 술과 멀어졌고 그것은 남편도 마찬가지였다. 남편은 코로나 이전에는 회식이  잦았지만 그래도 이성의 끈을 부여잡고 집에 왔기에 집에 오라문자나, 전화를 하지 않았다. 2 넘게 남편도 회식 없이  살았는데 이제 고삐 풀린 망아지가 되었다.


11시 넘어서 다시 문자를 보냈다.

-집에 빨리 와


3분 뒤

-신호등



그래도 집에 와서 잘 씻고 태연히 안방으로 들어가려고 하기에  옷방에서 자라고 했다.

드레스룸이자 책장이 있는 방으로 남편이 매일 출근 준비하는 방이다.

별말 없이 그러나 긴 한숨을 쉬고 옷방으로 들어간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남편은 숙취가 심해지고 잘 때 코도 크게 곤다.

더 싫은 것은 술냄새가 내가 좋아하는 내 이불과 베개에 잔뜩 배어 있고 방안 공기도 탁하다. 맨 정신인 나는 견디기 힘들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난다고 하던가?
아니다. 절이 싫어도 중은 버티고서 절을 망치는 놈을 따끔하게 혼내줘야 한다.
그래서 남편을 옷방에 재웠다. 자기 베개 하나 들고 처량하게 걸어가는 뒷모습이 꽤나 때려주고 싶게 생겼다.

내일 당직 근무라서 출근한다는데 어쩌려나 싶지만 그것은 남편의 일이고 나는 쾌적한 나의 방에서 잘 자고 주말을 맞이할 거다.


사실은 부러웠는지도 모른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끝난 지금, 산책을 하다 보면 집 근처 맥주집, 치킨집은 북적인다.
나를 부를 사람이 없어 서글펐나? 혼자라도 마시면 되는데 혼자 마시는 맥주는 시원해도 시원하게 넘어가지가 않는다. 역시 옛날의 나도 애주가는 아니고 안주가(안주를 사랑하는 사람)였나 보다. 오늘 내가 저녁에 콩나물국을 끓인 것은 유통기한이 다 되어가서였지 남편의 해장을 위함이 아니었지만 그래도 아침에 한 그릇 내놓긴 해야겠다.
고춧가루 팍팍 뿌려서.


<이미지 출처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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