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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미니 Mar 31. 2022

2세 계획 있는지부터 물어봐야 하는 것 아닌가요?

선을 넘는 불편함

이제 막 결혼하고 신혼여행 다녀온 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은 일명 ‘신혼 꿀’이 뚝뚝 흘러내리던 때. (지금도 여전히 꿀은 생산 중이지만 다른 종류의 꿀ㅎㅎ 더 숙성되고 맛 좋은 꿀이랄까) 신혼의 풋풋함이 꽃향기처럼 폴폴 나던 그때. 주변 사람들이 우리를 보면 습관처럼 물어보던 말이 있다.

레퍼토리는 거의 항상 같다.

 

늘 “어머~~ 세상에 두 사람 좀 봐. 완전 신혼이다~~!! 결혼한 지 한 달밖에 안됐대~ 어머어머! 우리도 저랬었는데~~” 로 시작한다.
그리고 이어지는 말.
“그래서 아기는 언제 낳을 거야?”
“우리도 애 낳기 전엔 저렇게 달달했지~ OO씨네도 얼른 아기 낳아”


처음 몇 번 정도는 그냥 웃으면서 적당히 흘려 들었었는데 자꾸 이런 레퍼토리가 반복되니, ‘뭐야, 아기 낳고 신혼 분위기 얼른 바사삭해버리고 싶다는 거야 뭐야~~?!’ 하고 씩씩대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아기가 생기면 신혼의 달달함이 없어진다는 것이 나는 모르는 그들 사이의 팩트일 수도 있고, 정말 아무런 의도 없이 이야기했을 텐데 나는 저 말이 듣기가 싫었는지 나중에는 그들의 말 한마디 한마디를 꼬아서 생각하게 됐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최악 중의 악. 가장 듣기 싫었던 말이 있다.

알게 된 지 몇 달 안된 같은 아파트 사는 가족이 우리 집에 처음 놀러 온 적이 있었다.

“우와~ 집 너무 예쁘다. 딱 신혼부부가 사는 집이네.”

칭찬에 기분 좋아 입꼬리가 올라가기 무섭게 바로 그 뒤에 이어지는 말.

“그런데 OO아, 너 그거 알아? 이거 아기 낳으면 다 못 쓰는 물건들이다? 식탁 다리 있잖아. 저거 나무 소재이거나 둥근 모양이어야지~~ 아니면 아기가 기어 다니면서 다친다? 그리고 이런 아기자기한 물건들 애 낳으면 다 치워야 돼. 왜냐하면 애가 다 씹고 던지고 호호호.”


아기가 태어나면 위험한 물건들은 치워야 하고 뾰족한 모서리나 가구는 보완을 해줘야 한다는 건 당연히 나도 알고 있다.

아는데도 불편한 이 느낌… 왜 그럴까? 내 마음속을 한번 거슬러 올라가 봤다.

첫째는 칭찬인지 재 뿌리는 건지 알 수 없는 오묘한 말 때문일 수 있고,

둘째는 실제로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벌써부터 ‘가정’까지 하며 부정적인 말을 한 것 때문이거나,

마지막 세 번째는 우리가 아기 가질 생각이 있다는 말은 일언반구도 하지 않았는데 너무 당연하게 아기 이야기를 했기 때문인 것 같다.


그렇다. 나는 우리가 2세 계획이 있다는 말을 하지도 않았는데, 두 남녀가 결혼했으니 당연히 아이를 가질 것이라 짐작하고 아무렇지 않게 내뱉는 말들이 불편했던 것이다.

마치 내일까지 꼭 해야만 하는, 아니면 선생님에게 호명돼 혼쭐이 날 것만 같은 학창 시절의 ‘숙제’처럼 내 목을 턱 막히게 했다.

한 사람이 한 번만 말해도 그 한 사람이 곧 열 명이 되고, 그 열 명이 또 만나서 또다시 그 레퍼토리를 반복하고.

신혼 때부터 결혼 4주년 기념일을 앞둔 지금까지도 “아기 얼른 낳아~ 더 늦으면 힘들어. 내가 경험해봐서 하는 말이야. 한 살이라도 젊을 때 얼른 낳아.”와 같은 말은 끊임없이 듣고 있다. 심지어 얼마 전엔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서도 같은 말을 들었으니 이제는 정말 귀에 딱지가 앉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다면 당신은 딩크족이오?


우리는 딩크족은 아니다.

결혼 전에는 딱히 아이를 낳고 안 낳고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없었고, 결혼 직후에는 당장 몇 년 동안은 아이를 갖고 싶지 않았고, 놀랍게도 지금은 아이를 갖고 싶어 노력 중이다.

혹자는 ‘아이 가질 생각이 없는 것도 아니면서 그냥 웃어넘기면 될 일을 뭐 저렇게 고깝게 생각하고 인생 피곤하게 사나’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각자에게는 다 사정이 있고 개개인의 생각은 저마다 다르다. 그런데 마치 자신의 신념과 가치관이 정답인 것처럼 타인을 재단하려 하는 그 행동이 나는 불편하다.

결혼을 했어도 아이를 갖지 않고 살고 싶어 하는 부부도 있고, 아이를 갖고 싶어도 갖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고 스토리는 정말 다양하다.

남녀 두 사람이 만나 연애를 하면 그다음 절차는 결혼, 그리고 결혼을 하면 자녀를 낳는 것이 더 이상 당연한 수순인 것처럼 생각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더 나아가 엄마와 아빠, 그리고 그 둘 사이에 아이가 있는 모습만이 이상적인 가정이고 전형적인 가정의 모습인 것처럼 여겨지지 않길 바란다.


아이를 둘 이상 낳으면 애국자로 여겨지는 인구 절벽에 있는 게 우리 사회의 현실이기는 하지만, 그 책임을 개인에게 돌리는 건 너무 잔인하지 않은가…?


아이를 낳는 것이 의무가 아닌 개인의 선택으로 인정받는 사회, 다양성이 존중받는 사회가 되길 바라며…

앞으로는 “아이 언제 낳을 거예요?” 보다는 “아이 낳을 계획 있으세요?”라고 물어봐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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