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네가 행복하면 됐지
진심일수록 커다란 리액션이 더 커지는 탓에 언제나 주변에는 나를 놀리는 사람들이 많았다. 놀리는 재미가 있다나 뭐라나... 전부 관심의 표현이라는 것을 알지만은, 가끔 너무 짓궂은 장난에는 넓지 그릇이 아주 콩알만 해져서 별안간 울컥하고 화를 내곤 했던 나의 어린 시절이 기억난다. 그렇게 자라오며 장난을 받아치는 경험치도 점점 쌓여 갔고, 나쁘지 않게 대응하는 스킬 또한 터득해 버렸다. 그렇게 어느 순간부턴가 친구들이 짓궂은 장난을 치면 이렇게 말했다.
"그래, 네가 행복하면 됐지"
이 문장은 그런 순간들에 아주 적당해서 짓궂은 장난을 기분 좋게 마무리 지을 수도 있고, 넉넉한 크기의 마음을 만들 수도 있는 마법의 문장으로 자리 잡았다. 사람은 말하는 대로 이루어진다고 했던가. 그렇게 자동 응답기처럼 주변의 행복을 빌다 보니 주변 이들에게 좋은 일이 생기면 마치 내 일인 양 아주 기뻤다. 그렇게 내 행복은 주변인들의 행복과 방향을 나란히 하게 되었는데, 자연스레 그들은 어디에서 행복을 얻는지 관찰하는 것이 버릇이 되었다. 지금까지 확실히 알게 된 것은 조금 더 긍정적인 시선을 가진 사람이 '행복'이라는 감정을 더 많이 찾아 누릴 수 있다는 것이다.
어린이 치고는 모든 일에 꽤 시큰둥했던 나의 어린 시절, 엄마가 '행복'이라는 것의 사전적 의미 찾아 읽어주었던 날을 기억한다.
'생활에서 충분한 만족과 기쁨을 느끼어 흐뭇함'
아마 내가 인지하는 최초의 행복은 엄마가 읽어준 이 문장을 기점으로 시작되었을 것이다. 그녀의 목소리로 들은 행복의 사전적 정의는 뇌리에 아주 길게 남아 내가 인생의 태도를 결정하는 데에도 영향을 끼쳤다. 그래서 내가 정한 인생의 태도는 '내가 선택한 것에 최대한 후회하지 않으며, 지나간 것에 미련 갖지 않고, 현재까지 흘러온 삶에 만족할 것'이다. 현재에 만족하고, 흘러온 삶이 후회스럽지 않기 위해서는 함께하는 이들의 행복이 아주 중요하기에 어찌 보면 가까운 이의 행복을 나의 행복으로 삼게 된 것이 내게 필연적인 일일지도 모른다.
바쁘지 않은 저녁에는 종종 최근에 연락이 뜸했던 친구에게 안부를 묻는다. "요즘은 어때?"라고 묻는 내 질문에 돌아온 그들의 일상을 찬찬히 듣는 것도 소소한 기쁨이다. 오늘 저녁 누구의 하루를 물을지 고민해 보는 늦은 오후, 이 글을 마무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