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인_호치민

내 여행 생활

by 아츠브로

레홍퐁 고등학교 앞에서 그가 생각났다. 그는 짝 달라붙는 청바지를 잘 입고 다니던 친구. 얼굴에 하얀 화장을 해서 여드름을 가리던 친구. 여자 목소리를 내어서 선생님도 친구들도 잘 놀렸는데 씩씩하게 그런 목소리를 더 잘 내려고 노력하던 친구. 내가 교실에서 시집을 읽고 있을 때 내 이름을 두 번 부르며 뭐하고 있니 귀에 속삭였던 친구.

어느 날 야간 자습을 하고 있는데 그가 사라졌다 나타났다. 사라진 시간 동안 그는 ‘연인’을 보고 왔다. 미성년자 관람불가라서 볼 엄두도 내지 못했는데 그는 어디에서 용기가 샘솟았는지. 우리는 볼펜을 놓고 담임선생님 몰래 한참이나 영화 이야기를 들었다. 그때도 그는 여전히 쫙 달라붙는 청바지를 입었고 얼굴에 화장을 했고 가려진 여드름은 겨우 터지지 못하고 있었다.


언젠가 고향에 가 버스를 탔다가 그를 만났다. 덜컹거리는 버스 속에서 그는 내게 미국에 다녀온 이야기를 했다. 그곳에서 한 사랑이야기도. 그가 그를 사랑할 수 있다는 사실에 놀랐는데 그는 진지했다. 얼굴은 편안해보였지만 짙은 우수가 느껴졌다. 그리고 이어진 이야기. 아버지가 그를 진짜 그로 만들기 위해 헬스장에 보내고 무술을 가르쳤지만 오히려 힘 센 그녀가 될 수밖에 없었다는 이야기. 그래서 몸매가 이 모양이라는 이야기.


레홍퐁 고등학교는 ‘연인’의 여자 주인공이 다녔던 고등학교. 가난한 프랑스 여자였던 그녀는 열두 살이나 많은 중국 남자와 사랑을 했다. 그때 내가 그에게 이야기를 들으며 던졌던 질문은 어떻게 그럴 수 있지? 불가능하다고 생각해? 그가 되물었다. 그를 마지막으로 본 것은 텔레비전에서였다. 어느 대학교에서 개최된 소수자들을 위한 모임에서 그는 기자와 인터뷰를 했다. 여전히 화장을 했고 여전히 쫙 달라붙은 청바지를 입었던 그. 달라진 것이 있다면 여드름이 사라져 버렸다는 것.


소설 연인은 이렇게 끝이 난다. - 전쟁이 끝나고 몇 해가 흘렀다. 몇 번의 결혼과 몇 번의 이혼에서 아이들을 낳고 몇 권의 책을 펴냈을 즈음이었다. 그가 부인과 함께 파리에 왔다. 그는 그녀에게 전화를 걸었다. 나요. 그녀는 목소리에서 이미 그인줄 알았다. … 그는 겁을 먹고 있었다. 예전처럼 두려워하고 있었다. 갑자기 그의 목소리가 떨렸다. 그 떨리는 음성 속에서, 갑자기, 그녀는 잊고 있던 중국 억양을 기억해 냈다. … 그는 잠깐 뜸을 들인 후 이렇게 말했다. 그의 사랑은 예전과 똑같다고. 그는 아직도 그녀를 사랑하고 있으며 결코 이 사랑을 멈출 수 없을 거라고. 죽는 순간까지 그녀만을 사랑할 거라고.*

* 『연인』, 마르그리트 뒤라스,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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